너무나도 피곤했던 어느 날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던 것인지 퇴근 길에
이유 없이 빵을 한가득 사고 마트에 가서 부전부리를 사고
중고책 서점에 가서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와 그 후속작인 '햇빛사냥'을 샀다.
(사실 전편보다 나은 후속작이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터라 햇빛사냥은 일부러 읽지 않았는데
누군가 후속작도 전편 못지 않다는 얘기를 하는 것을 들어서 계속 벼르고 있었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는 중학교 때였나, 초등학교 6학년 때였나,
읽으면서 그렇게 펑펑 운 적도 없었던 책이었다.
너무나도 외로운 제제에 대한 깊은 공감과
그가 철이 들어 어른이 되어가는 고통을 함께 느꼈다.
특이한 것은 내가 제제가 아닌 제제의 라임오렌지 나무에 굉장히 감정이입을 했다는 것인데
소중한 이의 죽음으로 어른이 된 제제가 더이상 라임오렌지나무와 대화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나는 혼자가 된 라임오렌지나무가 그렇게도 불쌍했던 것이다.
그리고 난 또 한 번 펑펑 울 준비를 하고 그리 길지 않은 책을 읽어나갔는데
책을 끝까지 읽을 때까지 난 전혀 울고 싶지 않았다
더이상 그때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인지
이미 나도 어른이 되어 제제라는 어린 소년의 외로움에 공감할 수 없는 것인지..
책의 줄거리는 전보다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진 몰라도 그때처럼 깊게 책을 읽지는 못 하였다.
난 나에 대해 적잖이 당황하고 실망했는데 또한 왜 그런지도 알고 싶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제제와 같은 또래라고는 못 하여도 분명 어렸었고 외로웠다.
가족은 있었지만 가정의 따뜻함은 알지 못 했고, 그렇기 때문에 친구든 장난이든 상관없이 난 어느 한 부분이 텅 비어있는 마음을 가졌었다고 생각한다.
곧 제제=나 였고, 제제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가 어른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 분명 나는 제대로 된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내지 못한 제제를 그때의 나와 동일시했고, 그러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버린 제제가 너무나 안타깝고 서글펐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가정은 여전히 불편하고 불안한 공간이지만 나의 능력으로 어느정도 거리를 둘 수 있고 자신의 외로움을 어느정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나이가 되었다.(이 세상에 결국 혼자다,,뭐 그런 느낌.)
이제는 충분히 회피할 수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현실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또 그래야만 하고,,,)
더이상 제제와 나를 동일시 할 수 없는 것이다.
왜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어야 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오히려 가장 좋았던 책이 그저 그런 책으로 변해버렸지만 또 모른다.
더 나이가 들면 또 다른 이유로 펑펑 울게 될지.
그때까지 이 책은 책장 안에 고이 모셔두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