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19금) 단편 '사람의 악의'
게시물ID : panic_786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istinguish
추천 : 27
조회수 : 6070회
댓글수 : 26개
등록시간 : 2015/03/29 00:14:27
오늘도 남편에게 싸움을 '당했다.'
 
시댁에 말했다.
시아버지는 '난 그렇게 안키웠다.'며 밖으로 나갔고
시어머니는 성격알고 다 했으면 맞추면서 살라고 했다.
 
친정에도 말했다. 너무 힘들다고.
 
친정부모님은 말하셨다.
부부싸움을 안 할 수가 없다. 너도 알지 않냐고.
우리도 다 그렇게 싸우고 살지 않았냐고.
너도 보고 자라지 않았냐고.
다 그렇게 사는 거다.
 
 
오늘도 남편은 억울하고 감당하기 힘든 모욕을 느끼며 말하고 울부짖는 나의 옷을 찢고
뺨을 때리고 이불로 얼굴을 막아 숨을 못쉬게 했다.
그리고 칼을 들이냈다.
버릇없이 기어오른다면서.
오늘은 진짜 널 죽여버릴꺼다.라며
내 얼굴에 침을 뱉었다.
 
시댁에도 친정에도 하소연하며 말했던 모습 그대로
또 그대로
나는 남편에게 짓밟혔고
배에 느껴지는 금방이라도 내 배를 뚫고 들어올 것 같은 칼날.   
 
그래도 할 말 있으면 하라는 남편의 말.
 
알고있다.
 
남편을 멈추는 말.
 
'"미안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안그럴께 미안해"
 
"무릎꿇어"
 
나는 무릎을 꿇는다.
비굴함을 느낀다. 나는 지금 쓰레기다.
 
일주일 전 내 하소연을 들으며 무표정한 표정을 지었던 엄마가 '왜 무릎을 꿇어?"라며 화를 내며
' 무릎은 꿇지 마라' 라고 충고했는데...
 
나는 또 무릎을 꿇었다.
 
[칼에 찔려 죽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목이 졸려 죽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이제 나는 안다.
저 문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죽기 전에 느꼈을 공포, 그 고통을
그래서 더이상 범죄영화를 보지 못한다.
어지럽고 토가 나올 것 같다.
 
남편은 더러운 기분을 풀어야겠다며
기분 좋게 해달라고 한다.
 
빨라고 한다.
 
나는 싫다고 말했다.
 
"또 당하고 싶냐? 나 내일 출근해야 돼. 지금 12시 다 되가는 거 알지?
나 미치는거 또 보고 싶냐? 다 니 탓이다. 빨리 빨아."
 
부부사이에 강간죄를 성립하게 하려면 증거가 없어도 내 진술만으로도 가능한 걸까?
....나는... 진술을 할 수 나 있을까....
 
내 몸에는 상처 하나 없다.  
뺨을 맞았지만 자국이 남지 않았다.
질식사 할 뻔 했지만 이불에 얼굴이 막혔기에 목에 자국도 없다.
칼에 찔려 죽을 뻔 했지만 칼 끝이 내 배에 닿았을 뿐이다.
 
내가 죽은 모습은 남편의 머리 속에 있고 내 머리 속에 있을 뿐. 그저 상상의 모습일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라는 대로 하게 되는... 
 
" 나는 널 때린 적이 없어. 내가 널 맘먹고 때렸으면 니 턱뼈는 날아갔고 니 얼굴은 다 뭉개져."
그 말을 하며 남편이 지은 나를 한심하게 보던 그 표정.
 
내 목숨이란 게 이렇게 구걸해서 지켜낼 가치가 있는 걸까...
나는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야.
찔려죽던 질식해죽던 죽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그 찌르는 고통, 숨 못쉬는 고통이 싫어싫어.
그건 내 정신을 날려버린다.....
 
남편은 코를 골며 자고 있고
 
나는 옷 방으로 갔다. 
 
그리고 장롱에 들어가 112에 전화를 했다.
 
"남편에게 맞았어요."
" 그거 습관이니까 경찰올 때 까지 기다리세요."
무관심한 경찰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경찰에게 자세한 주소를 알려주고 옷방 문을 잠갔다.
기다리는 시간동안 온 몸에 피가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머리에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옷을 챙겨입고 가방에 소지품을 담았다.
 
'띵동 띵동.' 초인종 울리는 소리에 이어
'탕탕탕' 현관문을 치는 소리, 무전기 울리는 소리가 들리고
도착했다는 보고를 하는 소리도 들렸다.
'경찰입니다. 문여세요.'
 
남편이 현관으로 걸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일이세요?'
 
'경찰신고가 들어왔습니다. 문여세요.'
 
'네? 무슨신고요? 신고 안했는데'
 
복도형 아파트라 옷방 창문이 복도와 연결되어 있고 나는 다급하게 창을 열고
문앞에 서있는 경찰에게 내가 신고했다고 말했다.
 
남편이 옷방 문을 열려고 하다 잠겨있는 걸 알고는 문을 두드리며 나에게 말했다.
" 문열어라."   
 
경찰도 계속 현관을 두드리며 남편에게 문을 열라고 재촉했다.
 
나는 옷방 문을 열지 않았다.
 
남편은 결국 현관문을 열었고 경찰이 집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제서야 옷방에서 나왔고
 
경찰과 함께 남편과 경찰서로 가게 되었다.
 
경찰차에 타면서 내가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머리 속에는 여전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무슨 감정을 느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경찰서에서 무릎을 꿇고 나에게 빌었다.
 
"제발 집에 가자." "친정에는 전화하지마"
 
그 모습에 경찰은 실소를 했다.
 
그러나 그 뿐 경찰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 전 경찰서에 들어갔을 때 남편과 나에게 주민번호를 물었고
그 뒤 나를 따로 불러 앉혔고
내 전화번호를 물었고
나는 내가 뭘 할 수 있는 지 물었고
경찰은 고소하는 게 있는데 라며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지 알 수 없는 나는
남편과는 더이상 같이 못있으니 우선 친청으로 가겠다고 경찰에게 말하는 게 전부였다.
 
경찰서에서 나는 부끄러움과 당혹감과 보호받지 못함과 그런 나 자신에 대한 무기력함을 느꼈다.
 
나는 경찰서를 나왔고 남편은 뒤따라 나왔다. 경찰은 그런 남편을 말리는 시늉을 하였고
나는 택시를 잡아 뒷좌석에 타고 친정집이 있는 지역을 말하고 빨리 출발하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남편이 앞좌석에 따라 탔다.
나는 그런 남편의 행동에 놀랐고 그런 남편을 막지 못한 경찰에 화가났고 택시에서 내리려 했을 때
택시가 출발했다.
 
경찰과 떨어져 다시 남편과 둘이 있게 된 상황에서 두려움이 내 머리, 내 몸에 몰려 들어와 내 입에서는 아무말도 나오지 않았고
나는 몸을 돌려 뒷좌석 유리로 경찰들을 볼 뿐이었다.
그런데 그 어떤 경찰도 택시를 세울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저 떠나는 택시 뒤만 쳐다보고 있었다.
 
"택시 기사 아저씨, 경찰서로 다시 가주세요" 나는 말했다.
택시기사는 아무말이 없었다.
 
"아저씨, 경찰서로 가주세요!"
나는 겁이 났고 미칠 것 같았다.
 
택시기사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남편이 말했다. 
" 아저씨 이 길에서 벗어나서 저 쪽 골목에서 세워주세요" 
택시가 그 쪽으로 움직였다.
 
"아저씨, 경찰서로 가달라니까요!" 나는 소리쳤다.
택시기사가 백미러로 나를 흘끔보았다.
나는 그 눈을 잊지 못한다.
 
남편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 조용히해"  
 
" 아저씨, 경찰서로 가달라고요!"
 
택시는 달렸고 남편이 말 한 곳에 섰다...
남편은 공포에 얼어붙어버린 나에게 택시비를 요구했다.
 
나는 이 택시 안에 계속 있을 수도 없었다.
이 택시기사의 무얼 믿고 돈을 줄테니 친정으로 가달라고 할 수 있을까.
이 택시기사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나는 택시비를 냈다.
 
내가 택시에 내려 문을 닫자마자 택시는 떠나버렸다.
 
남편은 나의 팔을 잡고 어딘가로 끌고 가려했다.
나는 뿌리치려고 했지만 남편은 내 뒷덜미를 잡았다.
 
그렇게 끌려가고 있을 때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남녀를 보았다.
나는 그들에게 도와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도와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소리칠 뿐이었다.
" 악! 이거 놔! 싫어! 이거 놔!"
나는 그 남녀를 보았고 남편도 그 남녀를 보았다.
 
그 남녀는 그런 우리를 보더니 발길을 돌려 다른 길로 들어갔다....
내가 도와달라고 했다면... 나는..그냥 절망감을 더 느낄 뿐이었을까...
 
남편은 나를 그 길 근처 건물지하로 끌고 갔다.
남편이 나에게 욕을 쏟아냈다.
"이 씨발년이 어디서 이 지랄을 하고 있어! 이 개같은 년아/
씨발 집에 돌아가기만 해봐. 이 개같은 년"
손을 들어 때리려했다.
나는 나는...그 손을 피하려고 움찔거릴 뿐...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도 아무도 나를 도와 주지 않았다.
아무도 아무도... 아무도...
나는.. 나는 뭘까...
 
그 때 내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나는 휴대폰을 꺼냈고 전화를 받았다.
남편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여보세요?"
" 네 경찰인데요. 괜찮으신가요?"
나는 남편을 쳐다보았다.
남편이 나를 계속 보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괜찮다는 말인가.
도와달라고 하면 여기까지 경찰이 올 수 있을까?
남편이 손가락으로 내 머리를 찌르며 입모양을 낸다.' 대답해'
남편에게도 들렸나... 경찰이 한 전화라는 걸.
 
나는 말했다."괜찮습니다."
이 순간이 내 마음 속에서 다른 사람에게서 그 어떠한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절망이 머리에 박힌 순간이었다.
 
" 아, 네.알겠습니다." 경찰은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그래. 경찰은 그렇게 내 머리 속에서 사라졌다.
나를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공권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남편과 나. 그저 둘 뿐이었다.
이 세상에
그저 단 둘 뿐이었다.
 
아니다..나는 그저 나 혼자 였다.
 
남편은 자신의 뜻대로 하기까지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남편은 좋겠다....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그런 것 같았다.
 
남편은 기분이 좋아보였다.
 
나를 보더니 웃으며 '어휴'하며 한숨을 쉬더니
내 손을 잡고 나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갔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화장실로 들어가 씻고 다시 잠을 잤다.
욕도 하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남편이 잠을 잘 때까지 거실에 앉아 남편의 행동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남편이 내는 작은 소음들에 흠칫흠칫 놀래며 그렇게 계속 앉아있었다.
 
나는 잘못했고 남편은 내일 출근해야하는데 밤새 나 때문에 조금 밖에 자지 못했다.
나는 죄책감을 느꼈고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다음 날 아침 남편은 출근했고
문자로 '사랑해'라고 보내왔다.
 
나는 안도의 마음을 느꼈고 아무말 하지 않는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꼈고
그런 평온함에 "나도"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리곤 집청소를 깨끗이 했고
미안한 마음에 남편에게 맛있는 저녁을 만들어주기 위해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다.
 
살 것이 적힌 종이를 보며 물건을 고르고 있을 때 내 옆 쪽으로 남녀가 물건을 보고 있다.
내 자신이 왜 이렇게 수치스러운 걸까....
내 자신이 왜 이렇게 부끄러운 걸까...
그 때 그 남녀일까? 날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그러니. 남 따위 이제 알게 뭐냐.....
 
사람들이 나를 보고 속삭이는 것 같다............
 
' 저 여자 맞고도 그냥 살지?'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