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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게시물ID : sisa_786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작업기술자
추천 : 10
조회수 : 68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0/02/03 23:50:50



청계(이 대통령 아호) 받아 보시게나.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가 내 치세 때와 비슷해 붓을 들었네. 내 시대에는 누르하치가 1616년 후금을 세운 뒤 30년도 안 돼 명나라를 말발굽으로 짓밟았네. 중원의 패자가 바뀌던 격동기였지. 지난해 중국이 천하쌍웅(G2)으로 등극한 이후,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도 30년 뒤라니 심상찮은 기운이 느껴지네. 미국에선 부시가 키운 네오콘이 몰락하고, 오바마식 외교정책이 틀을 갖추어가고 있으니, 이 또한 패권 교체기라고 할 수 있지. 

요즘 입길에 오르는 남북 정상회담도 이런 외부 조건의 변화가 불러온 것으로 짐작해보네. 청계의 신료들은 남쪽이 물밑에서 활발하게 대화를 주도하는 것처럼 분위기를 띄우고 있지만, 곧이들리질 않네. 서로 해안포와 벌컨포를 쏘아대면서 정상회담이라니…. 오히려 오바마가 북쪽과 긴밀히 얘기를 나누고 있고, 그 결실이 맺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되네. ‘핵무기 없는 세상’을 외치며 노벨평화상을 탔으나 아직 그 값을 못한 오바마로서는, 4월 핵 안보정상회담 전에 성과물을 내놓고 싶어 몸이 달았을 터. 오바마가 청계에게도 회담 내용을 귀띔하면서 “한반도 평화 열차가 곧 출발하니 어서 타라”고 권한 것이 아니던가? “김정일을 연내에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관측성 화법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거라 넘겨짚어보네. 

고민이 되겠지. 가만있자니 외톨이요, 올라타자니 보수층의 눈총이 따갑겠지. 하지만 보수층, 아니 본질적으로 사대주의자들인 이들이야말로 정녕코 문제일세. 400년 전 이들은 재조지은(조선을 다시 일으켜준 은혜)이니 내복(중국과 한 집안)이니 하면서, 골병들어 망해가는 명나라를 조선의 백성과 강토보다 더 아끼고 애틋해하더군. 요즘으로 치면 작전통제권 이양을 놓고 한-미 동맹이 균열되느니 어쩌니 하며 금방이라도 난리가 날 듯 호들갑을 떠는 꼴이나, 걸핏하면 “먼저 칠 수 있다”고 떠벌리는 국방장관 같은 부류들이겠지. 

마침 청계가 2월 국회에서 아프가니스탄 파병동의안을 처리하려 한다니, 명의 파병요청에 사대주의자들이 보인 패악질을 얘기해줌세. 

2품 이상의 신료들에게 파병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니 200명 가운데 오직 7명만이 부정적이더군. 이마저도 나중에는 다들 돌아서버려, 나 홀로 외롭게 싸워야만 했네. 보아하니 청계 주변에는 반대론자가 단 한 명도 없더군. 오히려 한 비서관은 “미국이 파병을 요청하기 전에 우리가 ‘선제적’으로 파병을 제안하겠다”고 했다던데, 어쩌면 내 신하들하고 그리도 똑같은가. 그때도 “미리 압록강에 군대를 배치해 놓고 황제의 명령이 떨어지면 즉각 출동해야 한다”고 했거든. 내가 파병에 완강히 저항하니, 명이 식민지 총독 같은 관리를 보내 직접 조선을 통치하게 될 거(조선감호론)라고 없는 말을 지어내 나를 겁박했었네. 한 20년 전에는 노태우 대통령의 대북유화책에 불만을 품고 대통령 훈령을 조작한 경우도 있잖은가. 

난 사대주의자들이 결국 두 차례의 호란을 자초한 것처럼, 이번에 주어지는 한반도 평화의 기회에조차 재를 뿌리지 않을까 지극히 저어되네. 병자호란 때 인조가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찧는 치욕을 당할 무렵, 나도 제주 유배지에서 계집종한테까지 구박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네. 하지만 백성이 당한 고통에 비하면 우리 둘의 수치야 대수겠는가. 그러니 부디 마음 단단히 부여잡고 이들 사대주의자들을 멀리하게. 

오늘이 벌써 입춘이군. 부디, 가족과 나라 모두 ‘입춘대길 건양다경’하길 비네. 


(이 글은 한겨레 김의겸 편집장이 고려대 계승범, 명지대 한명기 교수의 저서에 기대서 썼습니다.) 

- 한겨레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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