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 손등과 손가락들에는 세 종류의 흉터가 있다. (중략) 그런데 나는 시골에서 광주로 중학교 진학을 나오면서부터 한동안 그 흉터들이 큰 부끄러움거리가 되고 있었다. 도회지 아이들의 희고 깨끗하고 부드러운 손에 비해 일로 거칠어지도 흉터까지 낭자한 그 남루하고 못생긴 내 손꼴새라니. 그러나 그 후 세월이 흘러 직장일을 다니는 청년기가 되었을 때 그 흉터들과 볼품없는 손꼴이 거꾸로 아름답고 떳떳한 사랑과 은근한 자랑거리로 변해 갔다. "@@씨도 무척 어려운 시절을 힘차게 살아냈구만. 나는 그 흉터들이 어떻게 생긴 것인 줄 알지." 직장의 한 나이 든 선배님이 어떤 자리에서 내 손등의 흉터를 보고, 그의 소중스런 마음 속 비밀을 건네주듯 자신의 손을 내게 가만히 내밀어 보였을 때, 그리고 손등에 나보다도 더 많은 상처자국들이 수놓여 있는 것을 보았을 때부터였다. 그렇다. 그 흉터나 흉터 많은 손꼴은 내 어려웠던 시절의 모습이요, 그것을 힘들게 참고 이겨낸 떳떳하고 자랑스런 내 삶의 한 기록일 수 있었다. 그 나이든 선배님의 경우처럼 우리 누구나가 눈에 보이게든 안 보이게든 삶의 쓰라린 상처들을 겪어가며 그 흉터를 지니고 살아가게 마련이요, 어떤 뜻에선 그 상처의 흔적이야말로 우리 삶의 매우 단단한 마디요 숨은 값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오직 나만의 자랑이나 내세움거리로 삼을 수는 없으리라. 그것은 오히려 우리 누구나가 자신의 삶을 늘 겸손하게 되돌아보고, 참 삶의 뜻과 값이 무엇인가를 새롭게 비춰보는 거울로 삼음이 더 뜻있는 일일 것이다. 이런 생각 속에서도 때로 아쉽게 여겨지는 일은 요즘 사람들 가운데엔 작은 상처나 흉터 하나 지니지 않으려 함은 물론, 남의 아픈 상처 또한 거기 숨은 뜻이나 값을 한 대목도 읽어주지 못하는 이들이 흔해빠진 현상이다. 아무쪼록, 자기 흉터엔 겸손한 긍지를, 남의 흉터엔 위로와 경의를, 그리고 흉터 많은 우리 삶엔 사랑의 찬가를 함께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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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입니다. 문제는 직장선배와 나의 관계? 상황?을 사자성어로 표현한다면? 이었습니다.
응시자분들과 시험 후 기억나는 문제들을 이것저것 이야기 나누다 이 문제에서 의견이 나뉘었습니다. 답은 타산지석 이심전심 이 둘로 대립되고 있네용.
저는 아무리 읽어 보아도 타산지석 같은데, 오유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ㅠ 이 문제때문에 kbs에 전화라도 해야하나 싶고 ㅠㅜㅜㅜ 도와주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