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 시위 170 vs 경찰 900명
http://news.donga.com/Main/3/all/20140420/62911767/3 '420 장애인차별공동투쟁단' 장애인 170여명과 일반인 30여명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활동지원 24시간 보장 등을 요구하는 버스탑승 시위를 벌이다 최루액이 사용됐다.
이들이 '장애인 차별철폐 투쟁 결의대회'를 개최한 뒤 고속버스에 휠체어 이용 장애인을 위한 장비가 없다고 항의하며 버스 탑승을 시도하자 현장에 배치된 경찰 12개 중대 900여명은 이들이 버스터미널 내에서 단체로 이동하는 과정이 불법 집회라고 보고 해산을 명령하는 과정에서 시위대와 몸싸움이 일어났다.
세월호 실종자 학부모 청와대 접견시도 - 경찰 400명
"우리애 살려내라…청와대 가자" 경찰에 막혀 주저앉아 눈물
- 수십 명 실신해 응급차 후송
- 경찰 400여 명, 같이 울며 저지
"우리 애를 살려내라."
더딘 구조 작업과 선내 시신 수습 소식에 격앙된 실종자 가족 150여 명은 20일 오전 8시께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며 진도대교 인근에서 가두행진을 벌였다. 정부는 경찰 병력 400여 명을 투입해 실종자 가족들의 행진을 저지했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에 '채증' 논란…경찰 "검거 목적 아냐"
[세월호 침몰 5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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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대응체계 총체적 난국…‘신뢰 잃었다’
정부의 부실한 재난대응체계가 온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부실한 초동대처는 물론 시시각각 변하는 피해집계, 오락가락하는 구조상황 파악까지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다.
21년전 292명 사망자를 낸 '서해훼리호' 사고와 불과 4년전 46명의 장병이 순직한 '천안함 사건' 이후에도 국가재난대응시스템은 전혀 달라진 게 없음이 확인된 셈이다.
지난 16일 세월호가 침몰한 직후 승객들의 생사를 가르는 30분동안의 '골든타임'을 허비하다가 끝내 최악의 참사로 치닫고 말았다.
당시 해경과 해군이 현장에 출동했지만 세월호의 선내 진입은 하지 못했다. 바다에 뛰어든 승선원 구출에만 급급했기 때문이다.
정확한 승선인원과 구조된 숫자 파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280명에 가까운 승선원이 선체에 갇혀 물속에 가라앉고 있었지만 손도 못 쓴채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지난 1993년 292명의 사망자를 낸 '서해훼리호' 침몰 당시 해경은 이 배에 140여명이 타고 있다고 발표했다가, 다시 221명으로 번복했다. 그런데 실제 승선인원은 무려 362명이었다. 기본적인 승선인원 파악조차 되지 않아 대형 참사를 불러오고 만 것이다.
세월호 참사 역시 정부는 첫날 승선인원을 477명으로 발표했다가 459명, 462명, 475명에서 다시 476명으로 5차례나 집계를 번복했다. 중앙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승선인원 관리가 다소 부실했다"고 인정했다.
당국의 조치가 전형적인 후진국형 대응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는 대목이다.
지휘통제 기능도 제역할을 하지 못하고 허우적 거렸다.
중대본은 세월호 참사 사흘째인 지난 18일에도 "잠수요원들이 오전 10시5분에 선내 식당까지 진입했다"고 침몰 사고 가족들을 안심시켰다가, 오후 1시쯤 "다시 확인해보니 공기주입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발표를 뒤집었다. 오후 3시30분에는 "내부 진입을 성공하지 못했다"고 번복, 구조에 희망을 걸었던 피해자 가족들은 절망했다.
(이하 본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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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브리핑 창구는 해경" 급기야 발뺌까지
이 사고는 인재人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