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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수림이를 아십니까? (BGM)
게시물ID : panic_7878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숏다리코뿔소
추천 : 13
조회수 : 4801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5/04/02 21:36:41





어이없네요. 수림이를 아세요? 좀 잘 모르게 생기셨는데.”

어설픈 칼솜씨로 손질 된 머리가 그에게 물었다.
그는 세면대에 올려놓은 머릴 돌아보며 담배를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담배 필터에 살금살금 핏물이 베이고 있었다.
피 비린내의 아득함에 눈이 질끈하고, 절로 감겼다.

고약한 냄새였다.

시야가 이따금 하얗고 멀게 느껴지며 현기증이 일었다.
숨을 쉴 때마다 뜨끈한 콧바람에 떠밀려 코피가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경찰에 잡히면 어떨까요? 스읍……. 수림이가. 그럴까요?
전부 제가 한 일이에요! 저 남자는 잘못 한 게 암시롱 없어요! 훌쩍훌쩍.

제가 나쁜 년이에요. 제 잘못이에요. . 그럴까요?

글쎄요.

손가락으로 그쪽을 가리키지 않을까요? 그지 않아요?
본인도 그럴 거 같죠? 저 사람이 그랬어요! 저 새끼가 사람 죽여서 토막 냈어요!

소리 막 지르고. 그리고 훌쩍거리는 건 물론 기본 옵션이겠죠?
수림이가 또눈물은 또 기가 막히잖아요.

, 생각만 해도 신난다. 그죠?

경찰들이 수림이란 황홀경에 허우적거리는 동안
그쪽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그러면 완전 신날 거 같아요.

이봐요. 그러지 말고 경찰에 자수하죠.
저 가족들 품에서 안락이, 평화로이 장례 치루고 싶어요.
살인마가 되지 말아요.”

잠자코 머리가 말하는 것을 듣고만 있던 그는 담배를 욕실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성격만 같아선 꽁초를 머리만 남은 놈의 입에 쑤셔 넣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이상의 구역질나는 광경은 사양하고 싶었기에 참았다.

이제 그만 징그러워도 충분했다.
열두 번도 속을 뒤집었다 놓고 이제 겨우 진정한 참이었다.

목만 남은 게 말이 많아.”

그는 분을 삭이며 욕조 구석에 있는 실한 비누를 집어 들었다.
시끄럽게 떠드는 놈의 입에 담배꽁초를 대신하여 쑤셔 넣으리라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담배꽁초보다 입막음 훨씬 성능이 좋아보였다.

……
목만 남으면 말도 하면 안 되는 것처럼 그렇게 하대하세요.

저 하대하지 마세요.
그러는 본인은 얼마나 잘나셨다고 저 그렇게 막대하시는 거예요.
잘 처 드려야 수림이 심부름꾼 정도 아니세요?

야밤에 수림이가 도와달라고 전화해서 기분 좋으셨죠?
헐레벌떡 뛰어왔어요? 뛰어오면서 그런 생각은 해보셨어요?
나는 몇 번째로 호출됐을까? 헤헤.

그런 생각은 못해보신 거 아니에요?
당연히 수림이가 본인에게 첫 번째로 전화했을 줄 알았죠?

아아. 설마 그랬다면, 너무 가엽네요.
뭐에요, 그 표정은?

다른 사람한테는 거절당하고, 몇 번째로 본인한테 전화했고,
그런 건 아주 상정도 안 하고 오신 건 아니죠?

에이호구도 아니고 그랬을 리는 없죠.
왜 그래요.

수림이가 전화하면 달려올 남자가 그쪽 한 사람 밖에 없다고 착각하신 건 아니죠?”

머리가 깐죽거리며 말하자 그의 관자노리 혈관이 울컥하고 핏대를 세웠다.
그는 이를 악 물었다. 으드득하는 소리가 고요하던 욕실을 뾰족하게 관통했다.
그는 손에 들려있던 비누를 집어 던져버렸다.

머리의 눈언저리를 강타한 비누가 욕실의 벽에 맹렬히 반사됐다.

아가리 터졌다고 아무 말이나 던지나 본데, 그러는 너는 수림이를 잘 알아?
나보다? 모가지만 남은 새끼가. 나랑 수림이가 어떤 사이인지, 니가 뭘 알아.”

비누를 얻어맞고 세면대 가운데로 미끄러져 내린 머리가 샐쭉 웃었다.

, 진짜 수림이 잘 아시나보네요? 되게 의외다. 수림이가
세 번째로 전화한 남자치고는 위엄이 넘치시네요.
제가 몰라봤어요. 끽해야 예쁨 받는 따까리정도인 줄 알았죠.”

그의 손이 머리의 머리끄덩이를 잡아채더니
욕실 천정에 닿을 듯 높이 치솟았다.

그의 눈에 광기가 차올랐다.

욕실 바닥을 부숴버릴 듯,
그의 팔이 허무한 바람소릴 내며 욕실 바닥을 향해 큰 원을 그렸다.

그 동안에도 머리는 애써 담담히 물었다.

정말 진심으로, 수림이를 아십니까. 진짜로요.”

그는 속으로 뭐가 세 번째로 전화한 사람이야, 라며 부득부득 이를 갈았다.

사람 죽이면 연락할 사람, 살인도 도와줄 사람,
수림이에게 자신은 그런 사람이라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


-29, 친구

수림이와 내가 몇 년 지기였는지.
중학교 3학년 이었으니까, 13?

그 정도인가.

수림이 같은 애는 내게 말 걸지 않을 줄 알았다.
스치고 지날 아이, 나랑은 솔직히 섞이지 않을 아이.

그래서일까, 처음 내게 했던 말 잊질 않는다.

중학교 3학년, 지망 고등학교 방문일이었다.
다른 중학교는 100명 가까이 온 곳도 있는 듯 했다.

그에 비교하자면 우리 중학교는 끽해야 12, 13? 그즈음 됐을까.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설상가상 우린 인솔교사조차 없었다.

방황하던 하루 일과.

타 학교 무리지어 다니는 색색의 교복이 벌떼처럼 움직이면
우리 중학교 아이들은 의지를 갖지 못한 체 이리저리로 인파에 휩쓸렸다.

나는 그저 앞사람을 따라 걷는 일에 급급했었다.

열 몇 명 되는 우리 중학교 아이들이 분산되는 동안
우리라도 뭉쳐야 된다고 생각했을까, 수림이는 내내 내 뒤에 있었다.

학교 도서실을 관람하던 중에
수림이가 조용히 고백했다.
그게 첫 말이었다.

나 가는 길 몰라.”

같이 돌아가 줘야할 필요까진 없었는데, 멍청했는지 생각이 짧았는지 나는

엄마가 할머니네 집에 들리라고 했는데. 학교 바로 앞이라.”

그렇게 말해버렸다.

아아라던가.
그럼 됐어 라던가.
정류장까지만 가르쳐줘 라던가.

수림이는 그런 대답대신

잘 됐네. 나 쫌 배고파.” 라고 했다.

할머니가 나보다 수림이를 더 반가워했던 것 같은 기묘함.
처음 봤으면서. 손주보다 생판 남을 예뻐하던 광경이 아직 생생하다.

어영부영이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13.

무슨 인연이었을까.
아니, 악연이었을까.


**********


유 진환 23, 고등학교 동창

수림이?
무슨 그런 질문이 있냐.

물어보기까지 해야 돼?
나보다 네가 더 잘 알잖아?

.

수림이라.
수림이 고등학교 때.

너도 너지만 수림이는 좀 뭐라고 그러냐.
이상했지. 괴짜로 치면 수림이가 1, 네가 2등이었잖아.

하하하, 너도 이상했어.
수림이나 너나.

말도 없고.
친구도 없고.

둘이서만 놀고.

결벽증 같았다고 해야 하나.
맨날 새 교복 입고 있는 느낌이 좀 있었지.

수림이 교복만 색 안 바라는 거 몰랐어?
신입생 교복 보는 느낌이었다니까?

과장은.
아무튼 그랬다고.

글쎄. 그냥 깔끔하기만 했으면 모르겠는데,
몰라 항상 깨끗했다는 말이 더 잘 어울렸지.

수림이 하면 왠지 표백제 느낌?
약품 냄새 풍기는 듯 하면서 새하얀.

칭찬?
아니, 칭찬도 욕도 아니야.

감상이야.

화났어?
아니지?

지가 물어봐놓고.

동창회에서 다시 봤을 때도, 여전하다 싶더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티끌하나 용납 못하는 것처럼.

, 다른 여자애들 거진 염색하고 머리 꼬불꼬불 난리였잖아.
걔는 머리도 새까만 게 좋게 말하면 샴푸광고 같고,
솔직히 말하면 약간 머리 잘 빗은 사다코 같더라.

깔끔? 아니야, 좀 지나쳐.

동창회 때 너 나왔으면,
아마 진짜 귀신처럼 구석에서 잠자코 섰다가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너랑 같이.
너네는 붙었다 하면 둘이서만 놀았잖아.

하하.

뭐가?
아아.

고등학교 때처럼 너랑 껌딱지마냥 붙어있는 게 아니니까
남자애들이 좀 달라붙었었지.

내가 볼 땐, 분풀이 같았다고 해야 하나.
한풀이? 분풀이? 거기서 거긴가?

그래도 수림이가 고등학교 때 인기는 좋았잖아.

말 한 마디도 없이, 필요할 때만 조용조용 이야기하고.
이상하게 남심 울리는 구석 있지 않았어?

연약해 보인다고 해? 가녀려 보인다고 해?

약간 8,90 년대 현모양처 스타일이었지.
아닌가?

나도 그때는 솔직히 꽤 힐끔 거렸었어.

지금이니까 말하지.
고등학교 때 같으면 너 때문에라도 말 못하지.

어차피 상대도 안 해줬겠지만.
그래도 나이 들어서 그런지 동창회 땐 상대해주더라.

네가 없어서 그런 건지.
그 전까진 평생 말 한 번 못 붙여볼 줄 알았어.

?
너도 왔었어?

언제?
나도 봤었다고?

나는 너 못 봤는데.


**********


문 차명 41, 직장 상사

수림 양.
잘 알죠. 알다마다요.

제 직속이었어요.

성실하고, 책임감 있고.
사교성이 좀 그랬지만.

사교성 때문에 신입 시절부터 제 손이 좀 탔죠.
, 제 얘기 들어 보셨다구요?

우리 구면이던가요?

본론만?
…….

업무는 깔끔했어요.
약간 지나친 결벽?
그런 부분이 일할 때는 득이 되기도 하잖아요.

믿음직했죠.

업무 외에는 회사 동료보다는 남자친구랑 통화하거나,
문자하거나 그런 모습밖엔 못 봤던 거 같네요.

저는 나름 친해지려고 애 많이 썼습니다.
말도 많이 붙여보고.

다 수림 양을 생각해서.

?
아 그거요?

수림 양 집에서 식사 얻어 먹어본 적 있었죠.
다 친해지려고 했던 거라니까요.

수림 양도 언제까지 그렇게 외톨이처럼 지낼 수는 없잖아요.

, 우리가 언제 봤었죠?


**********


최 정표 30, 전 남편

나보다 당신이 더 잘 아는 거 아니야?
이제라도 속 시원히 말 좀 해봅시다.

당신 나 몰래 수림이랑 바람 폈었지?
아니긴 뭐가 아니야…….

당신 수림이랑 보통 사이는 아닌 거 내가 결혼 전부터 알고는 있었어.
이상하게 나대하는 것 보다 당신한테 하는 게 더 친근한 게.

호구 취급이나 하고.

차라리 둘이 결혼하지 그랬어.
괜한 사람 끼어들게 만들어서는.

이제 와서 그런 사람이,
수림이를 아느냐고?

당신도 모르면, 누가 알아.
, 그러니까 당신이 왜 모르냐고.

이제는 일일이 물어볼 수 있다는 게 무슨 소리야?
동창, 직장상사, 그리고 나?

내가 수림이 속을 어떻게 알아.

이제 와 물어보면 뭐해.
수림이 손에 죽은 사람들은 수림이를 잘 알아?

그 동창이란 작자나 직장 상사가 수림이한테 당하니까, 수림이를 좀 알겠다고 합디까?
근데 나한테는 뭐 하러 물어, 나도 수림이가 왜 날 죽이고 싶었는지 몰라.

현모양처인줄 속은 내가 병신이지.
얌전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싸이코 같은 년.

당신이 매번 뒤처리해줬지?
나 어떻게 했어. 토막 냈어?

어떻게 알긴, 정신 가물가물 할 때
수림이가 전화 거는 거 내가 들어서 알지.

내가 수림이 입에서 당신 이름 톡톡히 들었어.
당신도 한패잖아.

일 터지자마자 당신한테 곧장 전화하더만.

………….

눈탱이는 왜 그러우?
비누에 맞아?

꼴좋네.

투수는?
누구였을라나.

이번엔 누구한테 전화했는지 아쇼?

?

이번에도 당신한테 전화했어?
두 번이나?

웃기지도 않는 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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