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너무 굶다가 밥을 먹어서 배가 아플 정도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주 맛있게 잘 먹고 있답니다.”
13일 서울 성북구 장위3동 W뷔페에서 점심을 먹던 박모(14)군은 마냥 즐거운 표정이었다. 이곳에는 찰밥과 잡곡밥을 비롯해 각종 찌개와 열 가지가 넘는 반찬이 준비돼 있다. 후식으로 식혜와 수정과도 나온다.
최근 부실도시락 파문이 확산되는 가운데 서울 장위동 한 뷔페에서 인근 결식아동을 위해 질 좋은 식사를 제공해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이 뷔페는 지난해 9월부터 한끼당 재료값에도 못 미치는 2500원을 받고 관내 초·중·고등학교 결식 아동들에게 점심, 저녁을 제공하고 있다.
당초 구청과 동사무소에서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와 편부모 가정 아이들에게 상품권 등으로 주던 식사비를 쌀 등 현물로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장위3동 사무소는 현물을 지급하더라도 제대로 식사준비를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은 것을 감안해 이 뷔페와 계약을 맺었다. 아이들이 밥먹고 가면 동사무소에서 차후 정산하는 방식이다.
매일 이곳을 찾는 아이들은 미취학 아동 1명과 초등학생 26명 등 모두 49명. 대부분 결손가정이거나 소년소녀 가장이다. 박군은 부모가 이혼하고 아버지가 지방에서 막노동하고 있어 거의 식사를 못하는 처지다. 초등학교 6학년인 김모군과 누나(14)는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이고 어머니는 가출했다. 최모(15)양은 동생(8)과 아버지와 같이 살지만 아버지가 사회복지 담당직원에게 “지들이 알아서 밥 먹어야지”라고 말할 정도로 버려지다시피 한 경우다.
이 식당 사장 이정남(59·여)씨는 지난 연말 구청에서 표창을 주려고 했지만 본인이 극구 사양했다. 그는 아이들을 위한 봉사 자체에만 의미를 두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이들이 식당 유리창으로 들여다 볼 뿐 들어오지 않았을 정도로 낯설어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씨를 엄마처럼 따른다. 이씨 역시 한국전쟁 때 아버지를 잃고 어렵게 자란 상처가 있어 이들의 배고픔을 십분 이해한다. 그는 매일 식단을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짠다. 하지만 요즘은 워낙 경기가 안 좋아 적자이고 월세도 제때 내지 못할 만큼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이씨는 “봉사는 습관”이라며 “특별히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봉사는 내 마음도 편하고 그 기쁨에 생활이 즐겁다”고 말했다. 장위3동사무소 가정복지담당 신정미(42·여)씨는 “원래 음식도 맛있고 뷔페라서 아이들이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어렵게 부탁했지만 사장님이 흔쾌히 승낙했다”며 “서귀포시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실 2500원은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고 말했다.
나기천·신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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