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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 학생이 봤던 세월호 사건
게시물ID : sewol_189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신흥무관학교
추천 : 13
조회수 : 3900회
댓글수 : 14개
등록시간 : 2014/04/26 01:45:32
안녕하세요. 안양의 a여고에 재학 중인 2학년 학생입니다.
사고 날짜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4월 16일, 제 생일이었거든요..(그래서인지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뒤에도 이 사건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제 17번째 생일날 누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사건에 대해서 알게 된건 사건이 발생한지 몇 시간 지난 후인 오후 2-3시쯤. 같은 반 친구가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는 고등학생들을 태운 배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그래서 지금 구조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라면서 스마트폰으로 본 기사를 말해주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저와 제 친구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단순한 해프닝 정도로 생각했어요. 뭐.. 타이타닉처럼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침몰했다면 모를까, 이건 우리나라 해역에서 일어났으니까, 늦어도 한두시간 정도면 해경이 도착할테고.. 배도 한번에 완전히 가라앉지는 않을테니까 갑판 쪽으로 나와있으면 무사하지 않을까.
그 뉴스를 처음 들었을때 떠오른 이미지는 딱 그거였거든요. 기운 선체에 애들이 여러명 붙어 있거나 바다에서 구명조끼 입고 둥둥 떠다니고 해경이 하나하나 구조하는.. 그런 이미지요.
 
수요일엔 야자가 없었기 때문에 평소보다 일찍 하교했습니다.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단골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먹고 있는데 주인 아저씨가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틀어 두신 겁니다.
원래 일하시면서 단골 손님들이랑 수다를 떠시는 편이지, 티비를 시청하시는 분은 아니었는데, 그날따라 뉴스를 뚫어져라 쳐다보시길래 한번 힐끗 봤더니 완전히 뒤집어진 커다란 배가 나오더군요. 
그리고 화면 한쪽에 있는 사망자/실종자/구조자 수.. 그 때는 사망자가 4명이었던 시점이었는데, 사망자가 4명이나 나왔다는 것도 놀라웠는데 더욱 충격이었던건 세자리 수가 넘어가는 실종자..
제가 처음 뉴스를 접한 시간도 몇시간 전이었는데.. 그럼 그때 동안 물에서 구조하지 못한 사람이 100명이 넘어간다는게.. 보자마자 헉, 하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집에 가서 좀더 자세한 뉴스를 찾아볼 수 있었고요. 물론.. 희망을 가져야 하는거겠지만... 그때는 천안함 사건도 생각이 나면서.. 과연 저 많은 실종자 중에 몇 명이나 추가로 구조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뉴스도 찾아보고 오유도 들어가 보고 하면서 새벽 까지 잠을 못 잤어요. 
중간고사가 2주도 안 남은 시점이었는데, 도저히 공부가 손에 안 잡히더라고요.
그리고 그 다음날 학교에 갔는데, 저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뒤숭숭한 분위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나라에 뭔 일 크게 터질 때마다, 자연재해가 있을 때마다, 거기에 대해 여기저기서 이야기하는 건 봤어도... 그 분위기는... 정말 직접 보지 않으면 모르실거에요... 서로 말은 없는데, 그 사이로 흐르는 으스스하고 불안한 기류.
반에 들어갔는데, 애들이 모여서 세월호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런.. 격앙된 모습은 처음 봤어요. 
배의 총책임자인 선장이 개x신 같은 안내방송을 하고 가장 먼저 토낀 거에 대해 화내는 친구도 있었고, 기사 보면서 우는 친구도 있었어요.
공부 잘하는, 감정이나 컨디션 컨트롤 잘 되는 애들조차도, 어제는 도저히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더랍니다.. 저 혼자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들 그랬어요.
조례 시간에 선생님이 들어오셨어요.
1년 전에 첫 아들을 보시고, 지금 둘째 아이의 탄생을 앞두고 있으신 선생님이셨습니다.
선생님도 애들 사이의 분위기를 아시는지.. 조심스럽게 사건에 대해 말문을 여셨습니다.
 
"너희들도 알겠지만...
어제 너희 또래의 아이들이 수학여행 가서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안산이면 여기서 크게 멀지도 않은데다 너희랑 연배도 같잖아..?
그래서 선생님도 남일 같지 않게 생각되고..
.......그냥 오늘 하루 죽은 애들을 위해서 경건한 마음을 갖도록 하고.. 아직 미처 구조되지 못한 아이들이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빌어줘.."
 
그 말 끝내시고 반을 나가시는데, 선생님의 침통했던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음... 여고 애들이 원래 되게 활기차요. 생각하시는거 이상으로.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가지고 숨이 넘어가도록 웃는 애들입니다. 특히 고등학교 2학년 애들요, 학교에 적응도 했겠다 3학년보다는 수능에 대한 부담감도 덜하니까 정말 잘 웃고 대답도 시원스럽게 잘하고 맞장구도 많이 쳐줍니다.
근데 그날은 수업하면서, 말 그대로 수업만 쭉쭉 나갔어요. 평소 같으면 선생님한테 농담도 걸고.. 수업하면서 정말 말도 안되는 딴소리, 잡담도 많이 하고, 선생님 말에 맞장구도 쳐주고 그러는데... 그냥 그날은 선생님이 얘기하시는 것만 잠자코 듣고 있더라고요....
슬프고 화가나고.. 그걸 넘어서 뭔가 무기력하고 우울해 보이기까지 했어요.
 
그리고 며칠이 지나도 구조 작업은 순조롭지 못하고.. 정부의 재해 및 사고 대책 미흡이 계속 지적되니까, 저랑 같은 동아리인(신문 동아리입니다. 그래서 시사 같은 거에도 관심이 많아요.) 친구 중 한 명이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화내면서 말하더라고요. 자기가 지금까지 광우병 시위니 부정선거 시위니 하면서 시끄러워도 직접 시위에 가 본 적은 없는데.. 만약 이번에 일이 제대로 안 된다면 일인시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평소에 연예인 뉴스만 찾아보던 애들도 세월호 관련 기사만 들여다보고...
솔직히 저는 우리나라가 사람의 죽음에 대해 무감각해졌다고 생각했거든요.
노동자가 몇명이 산재로 죽던, 자살을 하던, 이번 수능에 학생들이 몇명이 투신을 하건, 사실 요즘엔 기삿거리도 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이번 일 겪고 나니까, 그래도 사람들은 누군가의 불행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마음을 두게 되는 것 같아요.
적어도 대한민국에 사는 학생들이라면, 다들 그렇게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저도 왠만한 사건사고에는 감정적으로 충격을 받거나 그러지는 않지만.. 이번 일은 정말 남 일 같지가 않아요..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서 아래칸으로 내려갔다 결국 돌아오지 못한 선생님
친구들을 먼저 대피 시키려다 결국 자기는 미처 대피하지 못한 학생들
자식을 먼저 보내게 된 부모님들
 
가장 슬펐던게,
그 애들은 자기가 그렇게 죽을줄 몰랐을거 아니에요.
지금 살아있는 저처럼, 당연히 인생은 내일도 모레도 1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계속 지속될 거라는 전제를 당연히 깔고 생각하고 행동했을거 아닙니까...
수학여행 가기 직전에,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면 볼 신간 애니들이 너무 많다고 글을 올린, 결국 살아서는 돌아오지 못한 루리웹 유저 한 분의 글을 보고, 울었습니다.
워낙에 감수성이 무뎌서, 저도 생판 남의 일로 울거라고는 생각을 못 해 봤는데, 그냥 너무 슬펐어요.
만약에 제가 그 학생들 중 한 명이었으면... 저도 똑같이 그랬을거 아니에요.... 아, 수학여행 가면 뭐뭐 해야지, 돌아오면 뭐뭐 해야지. 플래너에 다음 주 계획 미리 세워둘거고, 그럴텐데...
그리고 그.. 애들 시신이 학생증을 쥐고 죽었다면서요.
저도 중학생 고등학생 거쳐봐서 아는데, 요즘 애들 학생증 일일히 패용 안 하고 다녀요.. 특히 수학여행 다닐 때는 가방에 다 넣고 다니지 들고 다니지는 않거든요.
그럼 걔네들은 자기가 죽게 될 거란걸 알고.. 최악의 가정을 하면서, 시체라도 찾아달라고 학생증을 쥐고 죽은걸텐데.. 어떻게.. 그 때의 그 애들 심정이 어땠을지는 정말 짐작도 안 가요. 저랑 동갑인 애들이 자기가 죽을거라고 생각해서, 그래도, 시체라도 찾아달라고 그런 생각을 했다는게.
 
 
 
모든 국민들이 다 그렇겠지만,
이 사건으로 가장 크게 상처를 입고 슬퍼하고 분노하는 사람들은 같은 학생들일거라고 생각해요.
학생들은 아직 죽음에 익숙해지지 않았거든요.
몇몇 애들은 이 나라가 너무 싫다고... 돈만 있으면 외국으로 가고 싶다고. 돈 많으면 가장 살기 좋은 나라가 한국이라지만 자기는 이렇게 어리고 힘없는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나라라면 자기 혼자 잘먹고 잘살아도 행복할것 같지가 않다고 그러네요.
사실 저는 반반입니다. 저도 진짜.. 이번 사건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보면서(우리나라 기업 썩었다 썩었다 했는데, 진짜 부도덕한 한국 기업보다 더 썩은게 정부였다는걸 새삼스레 깨닫는 중입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우직스럽게 정부 쉴드 쳐주는 어른들을 보면서 정말 이 정도로 한국을 떠나고 싶고 한국 시민인걸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자포자기 해버리면, 결국 언젠가는 또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아요. 아이들을 포함한 수많은 승객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선장과 승조원에게만 물리기에는 너무 커요. 그런 쓰레기 같은 인간들을 고용한 회사, 불량한 선박과 회사를 용인해온 수많은 부처 관계자들, 최종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대통령...(아니 무능한건 둘째치고 왜 사과를 안하는거예요? 패션쇼한거 의전 끌고 혼란한 사고현장 간거 다 그렇다고 칩시다. 근데 왜 사과를 단 한마디도 안 하는 거죠?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이거 한 마디 하는건 너무 당연한거 아닙니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도 아니고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는 도대체 뭔 말인가요.) 
이 인간들이 죄다 책임지고 옷 벗어서 물갈이 되지 않는 이상, 포기할 수가 없네요...
 
 
 
생각을 그대로 이어 쓴거라 이해하기에 좀 어려우실 수도 있겠네요..
음...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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