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수학여행 출발일, 이군은 밤 8시쯤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이미 배가 떠났어야 할 시간, 이군은 '안개가 너무 끼었어요. 배가 뜰 지 안 뜰지 몰라요'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안개가 너무 꼈음 가지 말고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하라'고 일렀다. 결국 밤 9시쯤 배에 오른 이군은 신나서 아버지에게 배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날이 흐려서 잘 안 보인다. 사진도 많이 흔들렸네. 다운아 지갑 잘 챙겨." "네."
할머니는 그날 밤 꿈을 꿨다. "세탁기가 물속에 잠겨 있는데 세탁기에 다운이가 빠져있는 거야. 놀라서 내가 포데기에 막 업고 나왔어." 할머니는 놀라서 새벽 4시쯤 잠에서 깼다. 할머니의 꿈 얘기를 들은 아버지는 불길한 마음에 애써 '그런 말씀 마시라'고 했다. 할머니가 본 세탁기는 '배'였다. 5시간 후 아버지는 아들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 배가 50도 기울었어요. 배가 가라앉아요." 이게 마지막이었다. 어떤 메시지에도 답이 없었다. 5분 뒤 뉴스속보가 나왔다. 가슴이 멎었다.
이군은 사고 다음날인 17일 시신으로 발견됐다. 평소 이군이 존경했던 故남윤철 선생님과 꼭 붙은 채였다. 가족들은 사인이 저체온증이라고 했다. 당연히 살아올 것이라 굳게 믿었던 가족들은 팽목항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받고 가슴이 무너졌다. "상처도 거의 없고 추워서 웅크린 채 자는 모습이었어요. 추워서 제대로 눈 감지도 못하고 얼어 죽은 거죠…."
이군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아버지가 사준 새 지갑이 깨끗한 채로 발견됐다. 이군의 신원을 밝혀준 지갑 속 주민등록증도 제주도로 떠나기 이틀 전에 발급된 '새것'이었다. 아직 성인이 되기도 전에, 주민등록증을 써보기도 전에, 이군은 하늘나라로 갔다.
"정말 곱게 기른 아이인데 너무 마음이 걸리고.. 내 가슴에서 언제 벗어날까 걱정이에요…" 할머니는 눈물을 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