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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열사가 무려 5차례에 걸쳐서 박정희를 도모하려고 했었군요.
게시물ID : sisa_7898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원조잡초
추천 : 22
조회수 : 2125회
댓글수 : 49개
등록시간 : 2016/11/16 17:28:21
24년만에 공개된 김재규열사의 옥중 수양록에 따르면 독재적인 행보를 보이는 박정희를 제거하여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리려고 했습니다.
7년간 무려 5차례에 걸쳐 저격결심을 하지만 그간의 박대통령과의 인정과 정리 때문에 번번히 실패합니다.

1972년 10월, 유신 직후에 김재규는 제3군단장으로 재직하고 있었고 당시 당선되고 전방 순시 온 박정희를 납치, 하야시킬 계획을 세웠으나
차마 실행하지 못합니다.(1차시도 실패)

1년후인 1973년 3월 유정회 국회의원을 하라는 통보를 받고 예편, 또 10개월 후 중정 차장으로 발령, 또 10개월후 건설부 장관으로 전보했는데
장관 사령장을 받는 자리에서 대통령을 죽이고 자결하기로 합니다(2차 저격시도) 하지만 마음이 아파서 못합니다.

다음해인 75년 2월, 연두순시때 건설부로 박정희가 방문. 완전한 준비를 했으나 포기 (3차시도 실패)

그 후 대통령을 변화시켜보려 무던히도 애를 썼으나 실패

79년 4월에 저격하려 했으나 또 포기 (4차시도 실패)

마침내 그 해 10월26일 5차시도만에  박정희 저격에 성공합니다.

권력욕이나 이런 사사로운 동기가 아닌 오로지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한 거사를 결행한 김재규. 

재평가가 시급해 보입니다.

다음글을 꼼꼼히 읽어 보시면 김재규의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보실 수가 있을것입니다.

바쁘시면 굵은 글씨라도 읽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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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1일** 

제2심 고등군재(군사재판)이 내일로 다가왔다. 제1심에서의 기록이 정확히 남아야 한다. 역사의 귀중한 자료이며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사가 되기 때문이다. 항소 이유서가 제출되기 전에 고등 군재 일자 통보를 받고 이미 이 군재는 기대할 것 못 된다고 생각, 단념한다.

불도에 귀의하여 마음에 평온을 차젔다(찾았다). 육신을 어떻게 다루던 알 바 아니다. 마음의 본성은 공(空)이다. 본성만 확고히 잊지 않으면 세상에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 강(신옥)변호사가 최종적으로 면담 마치고 갔다. 보안사 요원들이 항소 포기 시키기 위해 공작하고 있다는 것 전달하고, 국방부 기무 정승화 대장 기소를 위한 심문에 응함.

***1월21일 오후** 

고등군재는 보나마나이고 대법원은 어떨는지 문제는 밑에 친구들인데 무슨 방법으로든지 살리고 싶다. 법도 정상 참작이 있을 법한데 급히 서두르는 꼴이 기대할 것 못되는 것 같아.

혁명 이념에 완전히 동조한 사람이면 저 세상에 데리고 가도 좋지만 아무것도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죽는다는 것 누가 책임져야 하나. 관세음보살님. 저 젊은 사람들 살려주소서. 합장. 

***1월22일** 

고등군재를 대기하면서 어젯밤 꿈에 상(想)자에서 심(心)자를 떼라는 계시를 받고 아침에 깊이 생각에 잠김. 무심하라는 계시다. 불심은 사람이 무심하면 곧 볼 수 있다.

매사에 무심하면 마음이 평안하고 무슨 일에도 동요되지 않는다.
사생관의 초월도 무심에서만 얻을 수 있다. 이제 나는 천지가 뒤집어져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 다시 말해 무심하다. 

소장이 나의 군재없다는 통지받고. 보시 나는 나의 육신을 보시하기로 한다.
*나의 육신을 요구하는 누구에게나 보시하고만다. 
*변호사 다섯명이 다녀가시다. 군재전망에 대해서 청취함. 서면심리로 하는 경우도 있고 함.

***1월 23일** 

출정준비하고 기다린다. 
고등군재가 열려 출두했다. 생각보다 부드러운 분위기여다. 내일 1월24일 14.00 개정선언하고 폐정했다. 

박흥주 대령 살릴 길 없겠는가. 한량없이 마음에 아프고다.
박선호군 선량한 얼굴, 경비원들 저 무심한 표정들 살리고 싶다. 나는 이제야 죄의식이 든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정당성 주장으로 죄책감 못 느꼈다. 그러나 이제 저 얼굴들 보니 죽고 싶다. 하루빨리. 

***1월24일** 

음력 12월22일 8시반. 영원한 평화를 찾는 날 꿈의 계시?
고등군재 제2일째 14.00 출정. 

고등 군재 심리로 이제 언도 공판이 남았다. 매사는 끝났다. 재판장 윤흥정 장군, 성의껏 해주었다. 법무사 검찰관 성명은 부지나 예의도 지켰다. 유한이 없다. 부처님께 서원한다. 박선호, 박흥주 외 경비원 일동, 김계원, 정승화 장군 극형만은 면제되게 해 주십시오.

***1월25일** 

군법회의도 끝나고 이제 최종최후의 준비를 해야겠다. 불심에 귀의해서 평화로운 최후가 되도록 계속 노력한다. 이미 마음의 안정은 찾았다. 금일부터 더욱 불법에 정진한다.

성불만이 최고의 희망이다. 나는 기필코 이룰 것이다. 변호사 3인 다녀가다. 잠시 졸았다. 꿈을 꾸었다. 마음의 자성을 관리하라고 했다. 성불성아 가까어지는 듯. 조용한 하루를 지냈다. 마음은 평온하다. 모든 잡념 사라지고 이제는 아무것도 없다.

***1월26일** 

토요일 오후다. 국방부 검찰관 심문 있었다. 정대장에 대한 것이다. 극구 관계없음을 이야기 했으나 별로 받아들이는 기색없다. 

우리나라의 한심한 점이다. 대장의 취급이 이등병과 별로 다르지 않구나. 1일 일등병보다도 못하다. 국가의 장래나 군의 장래를 생각하는 사람이 이렇게도 없느냐.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감정이 몹시 앞서있다. 모르긴 해도 틀림없이 한번 문제가 일어나리라. 제2심 판결 통보 아직 없다. 

***1월27일** 

자유. 우리는 일제로부터 1945.8.15 해방되고 자유를 찾았다. 그리하여 1948. 건국이념을 자유인주주의 건설에 두고 이를 국시로 건국이 되었다. 그러나 1950.6.25 북괴의 남침으로 우리는 전국민이 전란의 심각한 고초를 겪어 생명과 재산을 잃고 전국토는 폐허가 되면서도 기어이 자유를 지켜왔다. 

그동안 여러정당이 집권을 했으나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지켜왔다. 그러나 1972.10 유신과 더불어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는 아무 까닭없이 박정희 대통령 각하 영구집권을 위해서 말살되고 말았다. 

그로부터 어언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우리의 자유는 그 근본을 알아야 한다. 일제로부터 자유 독립을 위해 3.1 운동을 위시해서 수많은 투쟁과 희생의 결과로 찾아진 것이다. 그리고 2차 대전의 고귀한 희생이 우리 자유 쟁취를 도왔다. 그리고 6.25, 4.19 등 엄청난 희생의 소산으로 지켜진 것이다. 이런 자유를 집권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말살한다는 것은 천인이 공노할 중대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혁명. 나는 1972.10 유신 직후 제3군단장으로 복무하면서 헌법을 보았다. 몇차례고 보았다. 그러나 이 헌법이 아무리 보아도 민주 헌법이 아니고 그 목적이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영구 집권을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간단히 파악할 수 있었읍니다. 그 순간 나는 격분했고, 박 대통령이 한없이 미워졌읍니다. 당장 옆에 있으면 주먹질을 할 정도로 미워졌읍니다. 이 때 나는 생각했읍니다. 이 목숨 하나 바쳐서라도 이 자유를 회복해야 하겠구나 하고. 그 해 신체제에 의해 당선된 대통령은 전방 군단 연말시찰을 했다. 

나는 이 기회에 대통령을 납치, 하야시킬 생각을 하고 준비를 했다. 군 영내에 깊숙이 들어 온 이상 얼마든지 가능했읍니다. 모든 준비를 완료하고 대통령을 맞았으나 차마 결행할 생각이 우리들의 정리 때문에 일어났다 사그러지고 일어났다 사그러지곤 했읍니다. 결국 못하고 말았읍니다. 자신을 졸장부로 생각, 비웃었읍니다. 

그 후 다음 해인 1973. 3 생각지도 않던 유정회 국회의원으로 본인 의사도 물음이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알려 왔읍니다. 본인은 군인으로 좀 더 봉사하겠다고 했으나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리하여 30년 군생활의 종지부를 찍고 49세에 예편했다. 생각하면 고생도 되었으나 보람도 있었다. 서운한 감 금할 길이 없었다. 

국회의원 생활 10개월쯤 되어 중정 차장으로 발령되어 국회의원을 그만두고 중정 근무를 했다. 

중정 근무 당시 민청학련 사건을 위시하여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본인은 민주화 운동과 통제에 도전하는 정당한 주장자들을 처벌하는데 나의 양심과 직책의 틈바구니에서 고민했다. 나는 항상 주장했다. 소수로 처벌대상을 추리라고, 그러나 사건은 꼬리를 물었다. 때로는 혼자서 격분도 해 보았다. 

긴급조치로 옴짝달싹도 못하게 만들었다. 이런 놈의 정치가 어디에 있나. 주인은 국민인데. 국민을 우매하게 보아도 분수가 있지 나는 생각했다. 국민은 우매하게 보일는지 몰라도 결코 우매하지 않다. 민심이 천심이라고 했다. 국민이 우매하다면 하늘이 우매하다는 것이다. 하늘이 우매한가. 하늘을 우매하다고 보는 사람이 우매하지. 

국민은 정부에 대해서 백번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백한번 용서해야 한다. 이러한 형안과 아량을 못가진 자는 나라를 맡을 수 없다. 우리 정부는 국민을 적을 대하듯 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집권 있고 나서 국민도 정치도 있다는 생각과 태도는 이미 지도자로서의 자격은 상실된 것이다. 우리 정부에는 고위관리도 많고 유능한 자도 많으나 단 한 명도 똑똑히 나라의 장래나 국민의 권리를 대변해 주는 이는 없었다. 

나는 그후 10개월 후에 건설부 장관으로 전보되었다. 나를 전보한 것은 영전을 시켜려는 목적이 아니라 신 만만치 않으니 좋게 해서 내보내 준 것이다.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는 밉고 미운 유신독재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여하히 해야 하겠는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유신독재는 박 대통령 각하 혼자서 지키고 있으며 나머지는 그저 따라 하기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우리 국민들 전체도 자유를 갈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누가 여하한 방법으로 유신독재 체제를 물리칠 수 있겠는가 하고 사방을 돌아 보았으나 그러나 아무도 용기를 낼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하는 수 없구나 내가 하는 방법 이외에는.

이리하여 1974. 9. 14일 건설부 장관으로 사령장을 받는 자리, 청와대 접견실에서 대통령을 희생시키고 본인도 그 자리에서 자결하는 방법을 결심하고 당일 나는 권총을 몸에 품고 입장했다. 

그러나 막상 결행하려고 하니 또 인정이 나를 가로막았다. 불발로 마치고 서글펐다. 자신의 못남을 뉘우쳤다. 그러다가 해는 바뀌어 다음 해인 1975. 2 연두순시 때 건설부에 대통령 각하께서 오셨다. 나는 그 날도 완전한 준비를 해 놓았다. 또 마찬가지로 용기부족과 인정이 나를 막았다. 그리고 나는 이제 단념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유서와 태극기를 모두 불태우고 말았다. 

그 후 1976. 12. 4 돌연 대통령께서 집무실로 부르셔서 집무실로 갔더니 중정부장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순간 기분은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본인은 좋다 그러면 이제는 순리적 방법으로 대통령을 설득하여 유신체제를 고쳐보자, 절호의 찬스다. 이렇게 생각하고 처음에는 대통령의 의중을 탐색하는 데 노력했다.

그러나 조금도 틈이 없다. 하는 수 없이 미련스럽게 틈만 있으면 슬슬 완화해보시도록 이야기해 보았으나 어림도 없었다. 국내 여론은 물론 혈맹의 우방 미국이 우리나라 체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 세계의 자유 우방이 우리에 대해서 인상이 좋지 않다는 것 등. 

그러나 누가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조금도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아 나는 이제 다 틀렸다, 마지막 방법으로 혁명을 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 1979. 4 혁명을 결행하려고 했다. 그러나 여건이 좋지 않아 미루다가 10. 26 드디어 결행하고 말았다.

혁명의 목적은 
1. 자유 민주주의 회복 
2. 국민의 희생을 더 이상 없애고, 예상되는 불행을 예방한다.
3. 적화를 예방한다. 
4.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여 국방 안보를 튼튼히 하고 경제 외교면에서 호혜의 이익을 도모한다. 
5. 국제적으로 독재국가라는 낡은 이미지를 씻고 한국민의 명예를 회복한다.
이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여는 유신 체제로 지탱하고 있는 핵인 박 대통령 각하만 제거하면 다른 것은 손댈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최소의 희생으로 목적을 달성했다.

***혁명의 성공** 

10.26 혁명으로 자유민주주의는 회복되었다. 이는 마치 자유가 흐르는 강을 가로막고 있는 보를 절개해서 물을 흘려 보내는 것과 같다. 이제는 천하 누구도 이 자유의 물결을 가로막을 자는 없다. "이는 천명이요. 대자연으로의 섭리이다." 

혁명 결행해서 죽지 않고 살아났다. 이는 기적이다. 나는 죽을 가능성을 90%로 보았다. 경호요원들의 권총실력으로 보아 우리 동지 몇 명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천우신조로 살았다. 혁명 결행이 중요하지만은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혁명 과업수행이다. 근 20년 동안에 어지러진 쓰레기가 산적해 있지 않은가. 

혁명적 방법이 아니고 무엇으로 시정할 것인가. 지금도 천하를 활보하고 있는 김종필, 이후락, 박종규, 김정렴, 오정건, 장동운, 길재호 등 수많은 부정치부자의 재산을 혁명적 방법이 아니고 무슨 방법으로 환수하겠는가. 

유신 헌법을 기초하여 국민을 우롱한 자 무슨 방법으로 다루겠는가. 긴급 조치 9호를 기초한 자, 무슨 방법으로 다루겠는가. 그후의 각종 의혹 사건 무슨 방법으로 다루겠는가.

권력과 결탁하여 집중 융자로 특혜를 받은 대기업들, 중소 기업들의 파산을 외면한 처사는 누가 책임지겠는가 등 설거지꺼리가 수업이 많이 있다. 이대로 두고도 이 사회에 정의가 살아 있다고 하겠는가. 

나는 진로방해로 중도에서 아무 것도 손대지 못하고 말았다. 원컨대 개인은 여하히 되어도 좋으나 나라의 근기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지금 과도기에 요직에 있는 자들이여 나라 장래에 대한 책임을 느끼라. 눈을 뜨고 똑바로 세상을 보라. 이 나라 국민은 3.1 운동과 4.19를 치른 슬기로운 국민이다. 솥뚜껑으로 자라를 잡아보아라. 누르는 힘이 다하면 살아서 다시 기어 나온다. 
이 원리를 모르면 바보다. 1개 군인 소장의 정치 경험으로 국사를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최 대통령은 이런 소인배에 국가의 중대사를 맡겨도 좋은가. 최 대통령께서는 감정을 떠나 허심탄회한 생각으로 국사를 다루고 계시는가. 나는 당신을 높이 평가했으나 아무런 실수 없길 바란다. 

<혁명과 희생> 

박 대통령께서는 유신체제를 방어함에 있어서 지나치게 완벽을 기했다. 따라서 자신과 체제개혁을 숙명의 관계로 만들어 놓았다. 한쪽의 희생 없이는 한족을 얻을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민주주의 사회는 항상 필요하고 국민의 여망이 있으면 고칠 수도 있어야지 완전폐쇄를 시켜서는 혁명 이외 방법이 없게 된다. 
대통령의 희생은 원통한 일이나 민주회복을 위해서는 방법이 없었다.


<우리나라의 앞으로의 전망> 

자유민주주의는 누구도 못막는다. 이제 과도기를 거쳐 신정부는 완전한 자유민주주의를 할 것이다. 이는 오로지 10.26 혁명의 성과이다. 

민주회복을 최대통령은 인위적으로 혼란이라는 이유를 들어 천연시키길 것이다. 이는 큰 어폐이다. 계엄이 해제되거나 장기화되면 촉진투쟁이 일어날 것이다. 2, 3월 개학기가 위기가 될 것이다. 언론 보도 통제를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절대 현명한 방법이 못된다. 

일시에 대폭발이 되어 그동안의 불만이 터진다. 생활급이 못되는 노동자가 대정부 투쟁을 할 것이고 종교계, 기독교 중심으로 자유화 투쟁이 거세게 일 것이다. 국회가 개원되면 정국은 흔들릴 것이고 물가고를 못잡으면 국민들의 대 정부 불신임이 고조되어 막기 어려울 것이다. 

중세금정책도 문제가 될 것이다. 정부 정책발표가 조령모개하고 경제부처 장관들의 보조 불일치로 국민들의 정부신뢰도는 더욱 하락할 것이다. 

앞서서 대책을 강구하는 것만이 불행을 막을 수 있다. 모든 투쟁 요인을 사전에 없애야 한다. 두고볼일. 

북괴는 평화공세로 나올 것이다. 그러면서 국론분열을 부채질 할 것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착실히 대처해야 한다. 국민이 민주통일이념을 확고히 하게 지도해야 한다. 국민에게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과연 여하히 찾을지? 
미국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한정책이 나올 것이다. 물론 자유호가 제일 먼저 주장될 것이다. 이런 제문제들에 대해서 과연 대책이 연구검토되고 있는지. 우선 복수 토의라도 있는지 알고 싶다. 

누가 토의를 할 것이이며 구상을 할 것인가.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고물가 대책> 

국민의 생활안정을 보장하느냐는 것이 정부의 책무다. 생필품 중 절대적 품목을 골라서 무한정 생산하게 해야 한다. 정부는 지원해서 물량 확보가 되어야 한다. 대만을 보라. 물가 조정을 잘 하고 있다. 봉급자들의 생활급이 보장되도록 정부는 개입 조정해야 한다.

국민들의 협조를 호소해서 지지와 동조를 받아야 한다. 재벌 대기업들의 애국심 발휘를 유도해야 한다. 

<혁명 성공 후의 나의 계획 복안> 

3,5개월 이내에 완전한 민주회복을 해서 속히 정국을 안정시킨다. 밝고 명랑한 분위기가 국내에 충만하게 한다. 못살아도 불행한 것이 아니다. 정부를 신뢰하고 협조하며 같이 노력하는 우애에 넘치는 사회를 만든다. 그리하여 국민과 정부가 남이 아니라는 국토를 만든다.

신정권을 보위하여 5.16과 같은 사태를 미연에 방지한다. 정부의 행정기능이 집권당에 위해서 좌우되지 않게 해서, 여하한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행정기능은 일사불란하게 대민봉사를 한다. 여당 우위의 사고방식을 제거한다. 

선거에 대한 과열을 방지하고 행정부의 절대중립을 보장한다. 정권의 교체나 지도자의 교체는 정당한 민의로서만 이뤄지게 하고 인위적 방식으로 장기집권은 절대 못하게 한다. 사회의 부조리는 근절시킨다. (사회정의를 구현한다). 

집권자의 여하한 횡포도 용서하지 않는다. 대대적 국민운동으로 민주국민 교육을 통해서 국가관.사회관.생활관을 함양한다. 

건국후 한번도 못해본 진정한 민주사회를 만들고 명랑한 복지사회를 만든다. 본인은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국민운동회를 맡아서 사회발전에 기여함이 목적이다.

<국회의 처사> 

국회가 정말로 존재했는지. 스스로 민의를 대변하는 자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지 의심스럽기 그지 없다. 이 나라 민주주의가 완전히 회복되는 날 지금의 국회의원들을 무엇을 했다고 하겠는지. 정말 민의의 소재를 알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는지 한심할 지경이로다.

걸핏하면 국회조사단 운운하던 친구들이 10.26 혁명에 대해서는 한마디 조사단 운운 말이 없으니 이런 중대하고 심각한 문제가 국회의 관심 밖이라니.
정말 진정으로 국정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유권자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한번이라도 좋으니 똑바로 민의를 반영해서 정부가 국민의 민의에 따라서 방향을 정하고 국민을 위해 정치를 하게 하시는 여러분이 이러니 이 나라 민주주의는 자주 병드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되지 않는 책임은 비단 행정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입법부에도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 앞으로 국회에 대해서 양심있는 정치인으로서 민주발전에 기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민들에게> 

자유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값비싼 대가를 치러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의 자유가 병들었던 것도 우리의 노력부족과 무관심에서 빚어졌습니다.

우리는 자유가 없어지고 나서 그 귀중함을 알게 되기 쉽습니다. 자유는 우리 대한민군의 기본입니다. 이게 없으면 공산주의도 못막고 국토방위도 못하고 사회발전도, 경제발전도 복지사회도 다 못합니다. 일시적으로 무엇이 되는 것 같아도 궁극적으로 아니되고 맙니다.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암흑의 사회로 곧 지옥입니다. 자유는 남의 것이 아니고 나의 것입니다. 국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지킵시다. 

"오늘은 나를 위하고 내일은 후손들을 위하여" 
출처
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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