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프랑스의 68운동은 결과적으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 게다가 전쟁영웅이었던 드골 정부를 코너로 몰고간 시민혁명(?)이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그렇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도출시키지 못했지만 (마치 87 민주항쟁 끝에 노태우 들어온 것처럼) 일단 그 전개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1. 처음에는 학생운동으로 시작했습니다. 규모는 수만명. 이들은 거리행진, 학교 점거, 바리케이드 쌓기 등으로 저항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의 진압과정이 잔혹했고, 시민들은 정부에 등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예술인, 방송인 등 유명인사들이 학생들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면서 결국에는 파리 시내에 100만명이 운집해서 대규모 평화시위를 벌였습니다.
2. 그런데 학생회 지도부가 TV방송에 출연하면서 시위대에 대한 지지는 점차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방송에 나온 학생회장들은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었고 급진적이었기 때문이죠. 전혀 책임감이 없는 사람들처럼 비춰지기 시작했습니다.
3. 그런데 노동자들이 학생들의 시위행렬에 동참하게 됩니다. 프랑스 역사상 최대규모의 파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20만명이 동참했다가, 나중에는 총 200만 명의 노동자가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더욱 놀랍게는 가장 열기가 고조되었을 때 총 1000 만명 (백만 명 아님..천만명...덜덜덜) 이 파업에 동참해서 프랑스 총 노동인구의 2/3가 파업에 돌입한 것입니다.
4. 이때부터 정부는 초긴장. 파리 시내에서의 시위도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되고, 드골은 심지어 파리를 버리고 독일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정국을 수습하기 위해 시위 지도부와 계속 협상을 벌였고요.
5. 어찌어찌 해서 드골은 파리에 돌아왔고 총리는 드골에게 하야를 건의합니다. 하지만 드골은 이를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대신 시위대가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으면 '비상계엄령'을 발동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내놓았고, 또 언론에는 군대가 이미 파리 외각에 배치되어 있다고 정보를 흘렸습니다. 아울러 규모 80만명에 달하는 친정부(?) 시위를 조직해서 드골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알렸고요.
그렇다고 해서 드골이 아예 전승장군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그는 개헌에 합의했고, 권력을 평화적으로 이양하는 데 동의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시위대는 동력을 상실했고 말이죠.
우리나라도 참고해야 하는 중요한 사례라고 봅니다.
어..왠지 결론이 버티다보면 정부가 성공한다...인거 같은데.. 어쨌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