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사람들의 이마에 작은 숫자가 새겨졌다.
이 의문의 숫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체가 밝혀졌는데, 그것은 바로 수명시계였다.
어떤 단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숫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었고
카운트 다운이 다되어 이마에 0이 새겨진 사람은 반드시 죽었다.
삶에 미련이 없었던 노인들은 숫자를 신경쓰지 않았다.
자신이 기대하던 수명과 수명시계에 남은 시간이 일치하는 사람들 또한 숫자에 영향받지 않았다.
문제는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어있지만, 죽음을 눈 앞에 둔 이들이었다.
그들중 몇몇은 조용히 죽음을 준비했고,
몇몇은 우울증에 시달리다 수명이 채 다되기도 전에 자살했으며
몇몇은 폭동을 일으켰다.
눈앞에 둔 죽음 아래 하나로 뭉친 그들은 무서울 것이 없었고,
약탈, 강간, 살인을 일삼았으며 이전까지 유지되던 대부분의 사회구조는 붕괴되었다.
하지만 혼돈도 잠시, 곧 죽음을 앞두었지만 평화롭게 살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수명이 많이 남은 사람들에 의해 폭동은 제압되었다.
수명이 많이 남은 자들로만 구성된 신정부가 수립되었고,
수명이 1년이하로 남은 사람들은 언제나 감시받을 수 있다는 법안또한 통과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로 평화는 다시 찾아오는 듯 했으나 수명시계에 대해 밝혀진 또하나의 사실이
인류를 파국으로 몰아넣었다.
이것이 알려지면 다시 폭동이 일어날 것을 우려한 신정부는 폭동진압 이래 사실을 은폐해왔으나,
정부인사는 최소한 10년이상의 수명을 가져야한다는 조항의 의해 퇴임된 한 의원이 이 사실을 폭로했다.
그것은 바로 수명이 남은 사람을 죽이면 수명이 1개월 가량 늘어난다는 사실이었다.
정부는 처음엔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주장했으나, 곧 그것이 사실임이 드러났고,
죽고 죽이는 살육의 시대가 열리는 것을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빙하기에서도, 전염병의 공격에서도, 피튀기는 전쟁속에서도 굳건했던 인류는
어쩌면 태초부터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수명시계의 가시화에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한 이래 가장 가파른 인구변화그래프를 그리며 자멸해갔다.
수명시계의 등장 100년 후 살아남은 인간은 만명이 채 되지 않았고, 공교롭게도 그들의 이마에 새겨진 숫자는 모두 같았다.
그리고 카운트 다운 일년전 사람들의 이마에 새겨진 숫자는 그것이 나타날때처럼 홀연히 사라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년후 그들이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는. 그대들의 상상에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