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조문을 다녀왔다. 모레의 시험이 있어 도피인지 진심인줄은 무의식만이 알겠으나 어쨋든 조문을 하러갔다. 아버지의 차 뒷자석에 편히 앉아 이끌려가고 있었다.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자 도착지의 근처로 다다랐는지 검은글자로 "무사생환과 명복을 바란다."라고 써진 흰 플랜카드들이 한두개씩 있다가 나중에는 즐비해져 갔고 그 흰줄에는 사람들의 염원이 적힌 노란리본들이 희망처럼 매달려 있었다. 사람들은 관용적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끝이 보이지 않을정도로 많이 찾아왔다. 나도 차에서 내려져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 가족과 함께 그 줄에 함께 섰다. 참으로 신기한것은 그렇게 사람은 많았는데 누구도 떠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줄은 의외로 빨리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거의 다다르고 분향소건물이 내앞까지 다가왔다. 그러다 어느 새 입구까지 도착했는데 엄숙히 인사를 해주시는 관계자분들을 보자 갑자기 가슴 한구석에서 뭔가 바람이 일었다. 건물안 강당으로 한발자국 한발자국 조심히 발을 디뎠고 찬찬히 아주 찬찬히 강당안 모습이 드러났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쓰러질 뻔했다. 그 넓디 넓은 강당의 한면이 영정사진과 꽃들로 빼곡히 채워진 것이다. 그 모습을 본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이러했다. 얼굴이 굳어지거나 눈시울이 붉어지거나. 그로인해 여기저기서 귀촉도 훌쩍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 소리이외엔 숨소리조차 차마 들리지 않았다. 건물 한켠엔 대형스크린이 있었는데 그 화면엔 사망자 학생의 생전 사진과 이름이 있었다. 오늘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었다. 어떤 앳된 학생은 곱게 화장했었고 어떤 학생은 보일듯말듯한 실웃음을 담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남아있었다. 그들의 영정사진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볼 수가 없었다. 헌화를 다 같이한 후 그대로 나갔다. 어떤 말도, 어떤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걸어 차에 탄후에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 일 이후 죽음은 추상적이지도 의외로 멀리있지않고 나에게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 시간사용에 대한 반성과 삶의 소중함을 체감할 수 있게 되었다. 세월호 사망자에 대하여 그 유람선에는 학생뿐아니라 일반인도 다수 섞여있다고 하니 그들 또한 명복을 빌며 더 이상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었으니 편히 쉬고 내세가 있다면 꼭 좋은 곳에서 행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