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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노동자
게시물ID : phil_883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얍테
추천 : 1
조회수 : 32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4/28 22:13:32
  언제부터인지 노동, 혹은 노동자라는 말이 마치 블루칼라 계층을 상징하는 듯한 말이 되어버렸다. '노동' 이라는 말이 , 생각하는 것 없이 힘만 가지고 하는 일이라는 느낌을 주게 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노동이라는 것이 마치 마르크스주의를 상징하는듯한 단어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지금 우리네 사회에서 마음데로 사용하기가 참 버거운 언어가 되어 버린 것이 현실이다. 노동이라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을 표현하는 것일 뿐인데도, '노동'이라는 단어는 어느샌가 '운동'이나, '시위'와 연관되고는 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라는말은 곧, 머리속에는 든 거 없이 육체노동 하는 사람들이, 사회에 불평불만만 많아서 시위나 하고 돌아다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결국 지금 '노동자'라는 단어는, 생각없고 든거없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사회 질서나 망가뜨리려고 하는 사람이라는 전혀 관련없는 의미를 어거지로 갖게 된 것이다.

  실제로 노동, 그리고 노동자라는 것은, 일하는 사람 전반을 가리킨다. 아무것도 없이 자기 자신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시간과 노동력을 돈으로 파는 사람들을 노동자라고 부른다. 땅도, 건물도,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팔아서 생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 계층이 바로 이 '노동자'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 '노동자'처럼 처절한 계층이 또 어디 있을까. 흔히 말하기를 '그래도 중세 농노보다는 낫지.' 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과연 우리네 노동자는 중세 농노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중세 농노들은, 어감상으로는 '노동자'보다는 훨씬 강압적으로 주인에게 귀속되어 강제노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지만, 실제로는 지금 노동자들보다 처우가 나으면 나았지 못한 것은 없다. 우선 그들은 자신의 땅을 가지고 있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자신의 '땅'이다. 물론 일주일의 몇일은 영주의 땅에서 경작을 해 주어야 했지만, 어쨋거나 최우선적인 것은 윗세대로부터 관습적으로 물려받아온 자신 집안의 땅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땅을 가지고 있었고, 그 땅에서 경작을 하면서 자기 자신과 가족의 생계유지를 해 나갔다. 그 뿐인가, 지금은 노동자들이 평생 일해도 살 수 있을까 말까 한 집도 거진 가지고 있었다. 중세 농노는 집도 있고 땅도있는, 지금시점에서 바라보면 꿈과같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물론 그 시대의 과학기술과 경작기술, 농경기술을 비교해 보면, 지금보다 풍족하게 먹을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어쨋거나 그들은 그들의 집과 땅을 가지고,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생계를 충분히 꾸려나갈 수 있는, 그런 계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관습적으로 농노들에게 대대로 전해져왔던 이 땅은, 단지 문서 하나 없다는 이유로, 소유권을 인정받지 못했고, 그대로 그들의 땅과 집을 빼앗긴 채로 길거리로 나앉게 되었다. 자본주의적 경영에 눈뜬 자본가들은 농노들에게 그들의 땅이라는 문서로된 증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모두 몰아내고 양떼를 대량으로 기르기 시작했다. 이것을 인클로저 운동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자신의 땅과 집을 모두 잃게 된 농노는 결국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몸이라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고, 자본가들에게 자신의 노동을 팔아서 생계를 꾸려나갈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길거리로 나앉게된 사람들은 거의 강제적으로 자본가에게 소속되어 노동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들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산업혁명의 '주인공'이 된다.

  이렇게 자신의 땅과 집을 빼앗기고, 자본가에게 노동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게 된 사람들을 일컬어 '노동자'라고 한다.  이 노동자들은, '농노'보다 열악하면 열악했지, 결코 수준이 올라가지는 않았다. 하루에 12시간을 넘게 노동하면서도, 제대로 임금도 받지 못하고 일만하다가 폐병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였으며, 제대로 식사도 하지 못해 영양실조로 굶어 죽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이전같았다면 적어도 자신의 집에서 살면서, 자신의 땅에서 경작을 해 먹고 살아야할 사람들이, 좁고 지저분한 기숙사에서, 자본가에게 노동을 팔아 겨우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비참해 진 것이다.

  사람들은 그 짧은 기간사이에, 너무 비참한 삶을 살게 되었다. 계층상승은 꿈에도 꿀 수 없었으며,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임금만 주고는, 점점 자신의 부만 채워갔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들이 그것에 대해서 항의할 수 조차 없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본가들은 자신을 쓰지 않으며, 자신을 대체할 사람은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살아가기 위해서 자본가들의 뱃속을 채워가는데 톱니바퀴가 되었다.

  그 이후에 노동자들의 권익을 찾기 위해, 적어도 사람이 사람으로써 살 수 있기 위해 많은 움직임이 있었다. 사회주의도 그 맥락에 속한다. 마르크스가 말했던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이런 취지에서 했던 말일지도 모른다. 마르크스가 규정한 노동자는, 단순히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일컬치 않았다. 노동자라는 것은, 일을 하는 사람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며, 그렇기에 마르크스는 지식인의 역할을 매우 중요시했다. 마르크스가 주는 이미지가 워낙 소련과 중국, 거기에 말도 안되는 북한과 관련되어서 꺼려지지만,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사람처럼 대접받고 살 수 있는 사회를 주장했던 사람이다. 적어도 노동자들이 과거 농노들처럼, 자신의 집과 삶의 터전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사회를 말이다.

  지금 우리네 노동자들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물론 노동자계층이 생겨날 당시에 비교하면 많은 권리를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정이 달라지진 않았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집을 갖기 위해서는 평생 일해도 가질 수 있을까 말까이며, 그들의 임금으로는 먹고 사는 것 이외의 다른 것들을 생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적어도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의 터전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는 것은, 아직 이 사회에서는 꿈과 같은 이야기 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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