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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규장각 도서를 돌아오게 하신 박병선 박사님.
게시물ID : humordata_79135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사무사
추천 : 2
조회수 : 32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1/05/20 18:01:43
얼마전에 외규장각 도서 일부가 대여형식으로 병인양요 때 약탈된 이후 겨우 조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런 사실은 익히 알고 계실건데요.

그 외규장각 도서의 존재를 처음 알고 발굴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분이 '박병선' 박사님이십니다.

박병선 박사님은 일제강점기때 독립운동가에게 자금을 조달하던 애국자 집안 출신으로
1950년 서울대 사범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55년 민간 여성 최초로 홀로 프랑스로 역사학과
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프랑스 대학에서 한국에 대해 알리려고 많이 노력하셨고 더 많은 정보를 알고자 매일같이 출입하던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매일같이 출입하셔서 나중엔 직원사이에 회자되어 특별연구원으로 채용되셨는데요. 이게 
참 한국으로썬 고마운 일입니다.
 
1975년 그곳에서 우연찮에 동료직원의 제보로 외규장각 도서의 소재를 알게됐고, 그때까지
외규장각은 프랑스나 한국에 별다른 관심도 못받은체 별관 창고에서 방치되고 있었습니다. 
박사님은 프랑스국립도서관에 근무하면서 3천만종이 넘는 장서를 뒤져 '직지'와 '외규장각'도서 
297권을 찾아내 주불 한국대사관에 알리고 10년이 넘게 매일 외규장각의 도서 목차를 베끼고 내용을 
요약했습니다.
1979년에는 한국에 외규장각을 알렸다는 이유로 질책을 받아 도서관 일을 그만두기도 했었답니다.

특히,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의 존재를 처음 알려준 분인데요.
단순히 직지를 찾아낸 사람에서 그치지 않고 서양 사람들이 세계최고의 금속활자본이 구텐베르크 성서
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을 그보다 78년이나 앞서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자가 
바로 직지라는 사실을 증명해내신 분이기도 합니다.
한국에 발표했을때 한국학자들 반응은 냉담했고 되려 서지학자도 아니면서 고증을 어떻게 했냐면서 따졌
다네요. 이후에 직접 고증을 해서 발표하니깐 박병선 박사가 가지고온 사진을 한국서지학자들이 고증해서 인정했다고 인용문에 쓰기로 했다고...(뭐 이런 파렴치한) 마치 박병선 박사님을 심부름 취급하는거 같아서 
한국서지학자들도 인정했다라고 바꿔달라니깐 안바꿔줬다네요.

만약 이분이 안계셨다면 우린 직지가 뭔지도 살았을테고, 세계최고의 금속활자본을 가지고 있는 민족적
자긍심도 못가지고 있었겠죠.
몇년전 병인양요의 대한 사료를 모으러 한국에 오셨다 격렬한 복통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직장암
판정을 받고 현재는 투병중이시랍니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 여전히 묻혀있는 한국역사를 발굴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계시구요. 
끼니도 제대로 못챙겨먹을만큼 열악한 생활을 하시는것으로 압니다. 
저두 방금전까지 모르던 사실이였고 외규장각이고 직지고 그저 안내놓는 프랑스만 생각했지 그것을 
발견하고 공론화까지 시키는 사람에 대해선 전혀 생각도 못했습니다.
인생에서 30여년을 이 연구에 받쳐오신 박병선 박사님이 참으로 존경스럽고 모르고 있었다는데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우연히 뉴스에서 보도하는 것을 보고 알게됐는데 보다 더 많은 분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조잡한 글이라도 적어봤습니다.
딱히 올릴곳을 못찾다가 이곳에 올리는게 가장 좋을거 같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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