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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여자의 여행9 - 멕시코, 산크리스토발
게시물ID : travel_79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캥순이
추천 : 7
조회수 : 1127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4/07/23 21:34:50
 
 
오랜만에 여행기 쓰네요! 그동안 나름 바빴나봐요ㅜㅜ 집에서 빈둥거리던 시간이 없었어...요....
그사이에 댓글도 달려있고 추천도 달려있고 기분 짱짱 좋네요 ^______________^
 
이름도 예쁜 멕시코의 산크리스토발 이야기 시작합니다!
 
 
 
 
 
 
12시간동안의 야간버스를 탔다. 지금 생각하면 겨우 12시간이지만 그땐 어떻게 12시간을 타지?ㅜㅜ 했었다.
영국언니덕분에 엄청 낑겨서 고역이었던게.. 아직도 생생하다.
 
 
산크리스토발에 도착하기 한시간쯤 전, 피터는 다른곳에서 황급히 내렸다.
그곳에 친척이 있다면서 친척집에 가야겠다고. 참 즉흥적인 아이다 피터는. 피터야 잘가!
 
 
버스에서 내려선, 나와 흑언니는 예약해둔 숙소가 달라 헤어질시간이 되었다.
그땐 마치 좀있다 볼것처럼 헤어졌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연락처도 없었다.
 
나와 귀요미는 미리 예약해두었던, 엄청나게 싼, 단돈 9000원짜리 호스텔로 향했다.
후기에 악평이 많았는데도 예약한건, 이때가 멕시코의 휴가기간이어서 다른곳엔 자리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
 
 
아침 8시쯤 도착한 숙소는 왠지 원주민집 느낌이 났다.
벽에는 온통 그래피티로 이상한 그림이 그려져있었고 영어는 전혀 못하지만 엄청 친절한, 머리가 아주 길어서 원주민같은 멕시코 남자가 우릴 맞아줬다.
 
체크인하기 전까지 아침도 공짜로 먹게 해줬고 샤워도 하게 해줬다. 엄청엄청 친절한 원주민오라버님!
아침은 바게트빵에 커피뿐, 게다가 바게트빵도 작게 잘라서 후라이팬에 직접 구워주는데 한쪽이 새까맣게 타있었지만 이것도 황송하다며 맛있게 먹었다.
 
 
이 숙소엔 거의 멕시코사람들뿐이었다. 몇명 있는 외국인들은 레게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히피들.
이 숙소사람들은 밖에도 잘 안나가고 거의 숙소에서 밍기적거렸는데 뭐에 취했는지 항상 눈이 반쯤 풀려서 쇼파에 널부러져있었다.
 
한 남자가 쿠키를 만들었다며 먹으라고 줘서 땡큐! 하고 집었더니 안에 마리화나가 많이 들어있다며 싱긋 웃었다.
고맙지만 사양할게. 난 아직 무서워.
 
이 숙소엔 테라스가 있었는데 히피들은 테라스에도 널부러져 있었다.
내가 담배피러 테라스에 나가면 친절하게 자기가 피던 마리화나를 권하기도 했다.
난 웃으며 괜찮다고 사양했다.
 
 
알고보니 이곳엔 마리화나소굴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순진한 동양여자 두명이 들어온거였다.
 
 
귀요미와 나는 숙소에 짐을 풀고 예쁜 산크리스토발을 보러 여기저기 쏘다녔다.
멕시코시티, 와하까와는 다르게 여긴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었다.
길거리도 깨끗했고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거지도 잘 보이지가 않았다.
 
 
우린 길거리에서 파는 팔찌도 사고, 생필품도 사고, 마트에가서 장도 보며. 산크리스토발을 누비고 돌아다녔다.
그러다 들어간 한 레스토랑.
 
허름한곳은 아니고, 나름 크기도 있고 분위기도 좋은 곳이었는데 또 뭐 시켜야될지 몰라 옆테이블 사람이 주문한것 이름을 물어보고 똑같은걸로 시켰다.
 
맛있게 밥을 먹고 있는데 외국인 3명이 쭈뼛쭈뼛 가게에 들어와서 직원에게 뭐라뭐라 얘기를 했다.
그들은 각자 악기를 하나씩 들고 있었는데 보아하니 연주하며 돈을 벌어, 그 돈으로 여행을 하는 사람들 같았다.
 
종업원이 승낙했고 그들은 가게 한쪽에 자리를 잡고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느꼈던 쭈뼛쭈뼛함은 온데간데 없고, 연주가 시작되자 그들의 눈은 초롱초롱 빛났다.
 
바이올린, 플룻, 기타. 안어울릴것같은 이 세 악기의 조합이 이렇게 아름다울수가.
 
그들의 연주를 듣고 있자니 이유도 모른채 눈물이 났다.
아직도 왜인지는 모르겠다. 연주에 감명받을만큼 내가 음악을 이해하는 사람도 아닌데.
 
암튼 눈물이 났으니 팁을 줘야했다.
그 후로 다른곳에서도 연주듣고 눈물흘리기는 한동안 계속되었는데 그럴때마다 팁을 줘야했다.
 
 
 
 
어느 밤엔, 산크리스토발 야경이 잘 보인다는 언덕에 올라가기로했다.
 
은은한 노란 조명을 받으며 계단이 쫙 있는, 약간 외진곳인데다가 사람도 별로 없어서 긴장하며 올라가는데 초딩으로 보이는 두 남자애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학교 숙제라면서 어디나라에서 여행온건지, 나라 이름과 우리 이름을 종이에 써달라고 했다.
 
조금있으면 찢겨질정도로 너덜너덜해진 종이에는 다른 여행객들의 이름으로 채워져있었다. 별 의심없이 korea와 내 이름을 적고 나니 기부를 해야 한단다.
 
어린애들이 벌써 이런 거짓말이나 해야되는 현실이 참 안타까웠다.
너네 이거 학교숙제 아니지? 거짓말이지? 라고 말해도 아니라고 잡아떼는 아이들.
 
아이들이 귀요미의 가방에 달린 뱃지를 탐내서 그걸 선물로 주고, 난 동전 한개를 쥐어줬다.
 
아이들에게 낚여서가 아니라 이런 상황이 왠지 씁쓸했다.
 
 
 
언덕에서 내려와서는 노점상들이 늘어서있는 공원에 저녁을 때우러 갔다.
귀요미는 코코아를 한잔 마시고, 나는 감자칩을 먹으며 공원 구석에 앉아있었는데 우린 옆에 몇명의 거지 아이들이 있었다.
 
그중 덩치 큰 남자아이가 작은 여자아이 둘을 계속 때렸다.
보다보다 안되겠어서 여자아이들 앞을 막아섰다. 말은 안통하니 눈빛으로 그 남자아이를 째려봤다.
그런데도 여자애들을 때리길래 더 화난 표정으로 그 남자아이를 째려봤더니 그제서야 다른곳으로 갔다.
 
때리던 남자아이도 불쌍하고 맞던 여자아이도 불쌍하고.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면 남자애도 저렇게 누군가를 때리고 있지는 않았을텐데.
 
 
 
어느덧 귀요미와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우린 이제 서로 가는 방향이 달랐다.
 
나는 그대로 쭈욱 직진해서 과테말라로 올라가고, 귀요미는 멕시코의 다른 도시로 가야했다.
마지막으로 귀요미와 칵테일을 마시며 수다를 떨고, 바이바이 잘가. 인사를 했다.
 
IMG_7004.JPG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난 히피천국의 숙소로 돌아갈게 걱정이 되었다.
사실 전날 밤, 귀요미와 같은방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잠을 몇시간도 자지 못했었다.
침대도 찝찝했고 사람들도 무서웠고, 너무 무섭고 잠이 안와 거실로 나왔더니 벽에 있는 그래피티마저도 무서웠다.
 
그 방에서 다시 잘 용기가 없었다. 게다가 이젠 귀요미도 없이 나 혼자니.
원주민 오라버님께 일인실은 얼마냐고 물었더니 5000원만 더 내면 된단다.
지금 5000원이 중요한게 아니니 바로 1인실로 방을 옮겼다.
 
 
난 아침 6시에 산크리스토발에서 과테말라로 가는 승합차를 예약해뒀었는데, 그 덕에 잠은 제대로 자지도 못했지만 방에 혼자있다는 사실에 마음은 참 편안했다.
 
 
 
 
비몽사몽으로 올라탄 승합차엔 말도안되게 한국사람이 한명 있었다.
처음엔 일본남자인줄 알고 말을 걸었는데 둘이 영어로 몇마디 나누다가 어디나라사람이냐, 물었더니 코리아란다.
응? 나도 코리안데ㅋㅋㅋㅋ 이렇게 또 친구가 한명 생겼다.
 
 
내 옆엔 멕시코 게이남이 한명 앉았는데 너무너무 착했다.
영어도 잘해서 운전기사가 하는말을 내가 못알아들으면 옆에서 친절히 설명해줬다.
 
우리 셋은 중간에 세워준 휴게소에서 같이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차에서도 수다를 떨었다.
 
게이남은 귀여웠던게 나랑 얘기할땐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다가 한국남자와 얘기할때만 되면 목소리 톤이 올라가고 수줍어했다.
 
 
 
넌 스페인이 싫지 않아? 너희나라를 침략하고 문화유산들도 파괴했잖아. 하고 게이남에게 물었다.
 
게이남은 오래전일이라 괜찮다고 했다. 스페인덕에 경제도 좋아지고 스페인어도 쓸 수 있게되었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여행 중 만난 사람들중,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었다.
 
 
 
차는 어느덧 과테말라 국경에 도착했다.
이미그레이션에 가서 출입국 도장을 직접 받아야 했는데, 육로로 나라를 지난건 난생 처음이라 두근두근 거렸다.
 
내가 과테말라에 왔다니. 이름도 생소한 과테말라에 왔다니.
과테말라 하면 아는거라곤 커피밖에 없었는데 내가 여기에 있다니.
 
 
관심없던 과테말라에 간 가장 큰 이유는 스페인어를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멕시코에서 말이 안통하니 너무너무 답답했던걸 경험하고는, 남미로 넘어가기 전 꼭 스페인어를 배워야 했는데.
멕시코는 상대적으로 물가가 비싸니 싼 과테말라에서 배울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별 생각없이 오게된 과테말라.
아직도 표지판에 과테말라라고 써있던걸 보고 눈을 떼지 못했던게 생각이 난다.
 
IMG_6958.JPG
 
 
 
과테말라 국경을 지나 조금 더 달려, 승합차는 어딘가에 섰고, 거기서 우린 가는 도시가 달라 다른차로 나눠서 타게 되었다.
 
나는 아티틀란호수로 가고 한국남과 게이남은 안티구아라는곳으로 갔다.
나도 아티틀란 다음 갈 곳이 안티구아였기 때문에 그곳에가면 보자며 한국남과 연락처를 교환했다.
 
 
다시 승합차를 타고 두시간쯤 더 달려 아티틀란 호수에 도착했다.
 
세계 3대호수라 불리우는 아티틀란호수는 정말이지 너무너무너무너무 컸다.
이게 호수인지 바다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로.
 
아티틀란 호수에는 여러개의 마을이 있는데 그중 내가 갈 곳은 조용하기로 소문난 산페드로라는 마을.
 
산페드로에 가기 위해선 작은 모터보트를 타고 40분정도 더 가야했다.
이미 깜깜한 밤이었는데 모터보트엔 나 포함 여자 셋만 타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과 나는 갈 마을이 다른지.. 20분쯤 지나 한 마을에 들러 그 여자들을 내려줬다.
 
이제 이 깜깜한 바다같은 호수에는 나와 모터보터선장 단 둘뿐.
무섭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언제 이런기회가 있겠나 싶기도 했다.
 
저 멀리 보이는 노란 불빛들이 너무 예뻐보였다.
그 불빛들을 의지하며 난 산페드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산페드로는 정말 조용하고 작은 마을이었다.
선착장에서 숙소까지.. 지도한장보고 찾기에는 이미 시간이 너무 늦었고 위험해보이기도 했다.
 
선착장 근처에 있던 노숙자 아저씨가 자기가 데려다준다고 했지만 그게 더 무서워서 못들은척했다.
노숙자 아저씨는 나를 졸졸 따라오며 데려다준다고 이상한 소리를 해대서 무서워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건장한 외국인이 노숙자 아저씨를 쫓아주었다.
 
차라리 나 혼자 가는게 낫지. 하고 지도 열심히 보며 가고 있는데 이번엔 말쑥한 아저씨가 어디가냐고 물었다.
숙소 이름을 얘기했더니 혼자 찾기 힘들거라고 같이 가자며 앞장서 주었다.
 
그 아저씨는 여행사를 하는 아저씨였는데 나에게 호의를 베푼 이유는 영업이었다.
이 투어 할래? 이거할래? 저거할래? 이거할거면 나한테 말해 등등.
 
그래도 위험한것보다는 영업이 낫다고 생각하며 걸었는데 숙소 앞에 도착하니 아저씨가 팁을 요구했다.
그래. 이것도 위험한것보단 팁이 낫지.
 
 
그렇게 난 과테말라 아티틀란호수의 작은 마을, 산페드로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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