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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 과거] 작은 천사의 사진
게시물ID : readers_79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진격의꼬츄
추천 : 7
조회수 : 25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6/28 21:03:13
그녀의 시선이 사진 한 장에 멈췄다.
그녀가 항상 행운의 징표로 지니고 있는 작은 사진엔
그녀와 꼭 닮은 어린 아이가 환한 웃음을 머금은 모습이 담겨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았다. 그 어떤 위로도 해주지 못하는 나에겐 오직
그것만이 조금이라도 그녀를 위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밝은 달빛처럼 빛나는 그녀의 눈에 서서히 물방울이 번지는 것을 보고서야 그녀 옆으로 다가설 수 있었다.
 
미안해, 못난 모습을 보여 버렸네.”
아무 말 말고 눈물이나 닦으십시오. 못난 얼굴 더 망가트려지기 전에 말입니다.”
고마워. 역시 머글은 친절한 것 같아.”
 
건네준 위장색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내 속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제대로 좀 닦으십시오. 엘라인이 엄마 얼굴도 못 알아보게 할 작정이십니까?”
 
울음기 때문에 갈라진 목소리를 감추고자 화를 내며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이미 내 눈에서도 눈물이 방울져 떨어져 내리고 있었으니까.
그런 내 모습을 조용히 쳐다보던 그녀가 나직이 나를 불렀다.
 
후우, 머글. 부탁이 하나 있는데 들어줄 거지?”
싫습니다.”
단호하네. 단호박인줄.”
, 그게 무슨! 지금 상황에서 그런 허접한 저질개그가 나오십니까?”
내가 아무리 싫어도 무슨 부탁인지는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니야? 머글 그렇게 안 봤는데 말이야.”
듣기도 싫고 그 어떤 것도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저에게 맡기지 말고 소대장님이 직접 하십시오.”
에이. 그건 너무한다. 지금 내 상태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제가 책임지고 야전 막사까지 데려다 놓을 겁니다. 그곳이라면 실력 있는 군의관이 많으니 이깟 총탄 몇 개 박힌 것 쯤 금방 회복될 수 있을, 소대장님! 소대장님!”
 
나는 갑자기 옆으로 풀썩 쓰러진 그녀를 보고 황급히 일어나 몸을 흔들었다.
다행이 정신을 잃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고통으로 얼룩져 있었다.
 
부탁해아무래도 한계인가 보네. 다음에 쓰러지면 아마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
 
격하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떨리는 손으로 내 전투조끼의 주머니에 자신이 항상 바라보던 사진을 넣어주고서야 만족했다는 듯 환하게 웃어보였다.
 
, 엘라인의 사진은 정말 신통하다니까. 아무것도 모르던 철없는 나도 지금까지 살아남은걸 보면 알 수 있어. 머글은벤슬럼 최고의 전투영웅 이니까 분명히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을 거야.”
 
말을 마친 그녀의 안색은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퍼렇게 변한 입술은 계속해서 경련을 일으켰고 탐스럽던 금발은 땀에 젖어 축 늘어졌다.
 
소대장님, 아니 아르비오네! 그만 말해! 더 이상 말하다간 쓰러지겠어!”
, 이제야 이름을 불러주네. 그런데 살짝 기분 나쁜걸? 이건 확실히 하극상이잖아?
, 부탁하는 입장이니 봐줄 수밖에 없는 건가. 후웃.“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내가 날뛰면 날뛸수록 오히려 그녀만 더욱 힘들게 하는 일이 되어버리는걸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입을 다물자 그녀, 내가 따르던 벤슬럼 대대의 소대장이자 동시에 어렸을 때부터 날 끔찍이도 아껴주던 방앗간 집 둘째 누나. 아르비오네는 생긋 웃어주었다. 고통으로 인해 일그러진 웃음이었지만 내게는 성모 마리아의 미소보다 더욱 환하게 빛나 보였다.
 
비록 수많은 대원이 산화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의 임무는 성공적이야. 이 데이터 칩만 가지고 야전 사령부가 있는 곳까지 도착만 할 수 있다면 머글, 넌 곧바로 전역할 수 있을 테지?
내가 바라는 건 단 하나뿐이야.
내 딸, 엘라인. 그 아이를 네가 맡아줬으면 해.
결혼도 안한 너한테 너무너무 미안한데막상 엘라인이 혼자 남겨진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두려워,
사과농장을 하던 프란키 영감님에게 엘라인을 맡겨두었는데 아무래도 잘 지내지 못하는 것 같아. 2소대에 있던 마크렌 알지? 그 녀석이 알려줬어. 프란키영감이 도박에 손을 댓다가 집이고 농장이고 전부 날려먹고 떠돌이 생활을 한다고 말이야.
엘라인은 착하고 얌전한 아이라 특별히 귀찮게 하지는 않을 거야.
먹는것도 가리지 않고, , 버섯 종류는 알레르기가 있어서 그것만은 조심해야 돼.
뭐하는 거야. 버섯조심. 수첩에 적어 둬. 그리고 또…….”
 
아르비오네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엘라인 생각을 하는지 살짝 웃는 모습 그대로 그녀는 말이 없는 인형이 되었다. 그 어떤 것 보다 고귀한 인형이.
 
……
아빠! 또 다른 생각해?!”
, 뭐라고 했니 엘라인?”
어휴! 오늘 루크가 집에 인사 온다니까 얼른 가서 옷부터 입으시라구요!
아무리 집이라도 다 큰 딸래미 앞에서 맨날 트렁크팬티만 걸치고 있지 말구!”
알았다, 알았어. 거참 녀석. 어찌 그리고 제 엄마랑 성격이 똑 닮았는지.”
 
나는 회상을 멈추고 방으로 쫓겨나듯 들어갔다. 방 안에 작은 금발의 천사가 환하게 웃음 짓는 사진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저 사진을 내릴 때가 온 것 같아. 아르비오네.엘라인의 행운도 이제 루크라는 도둑놈에게 빼앗겨 버렸지 뭐야. 하하, 그래도 그 도둑놈 옆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는 엘라인의 모습은 정말 예전의 당신을 쏙 빼닮았는걸. 당신이 있었다 해도 빼앗겼을 테니 나에게 너무 화를 내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액자 속에 끼워진 사진을 꺼내들었다.
아르비오네를 화장했던 루켄강 상류에 떠내려 보낼 참이다. 항상 엘라인을 그리워하던 그녀에게 이 작은 사진 한 장이 닿을 수 있도록, 나는 그렇게 한참을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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