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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븅신사마]실화괴담 - 빨간구두
게시물ID : panic_793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hzzz
추천 : 23
조회수 : 250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4/29 14:4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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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외할머니 집에서 잠시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곳은 도심과는 거리가 먼 아주 외진 동네였고 할머니의 집은 아주 오래되고 낡았었다.
 
그 동네는 터가 세다고 유명하기도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지금은 할머니의 집이 있던 그 자리와 주변엔 사찰이 들어서 있었다.
 
나는 가끔 그곳에서 일어났던 몇몇 가지 일화들을 떠올려 보곤 한다.
어쩌면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면 가장 실제와 근접할 것 같은 그 느낌...그 공기... 그 스산함...
 
그 일들은 한 번씩 내게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음산한 공포를 불러 오게도 하고 한편 아련한 향수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리고 오늘처럼 비가 내리고 하늘이 어두운 봄날에는 그 날들 중 유난히 그 일이 생각난다.
 
 
 
 
덜컹- 덜컹 덜컹-
 
그날은 누운 지 한참이 지났지만 나는 쉽게 잠이 들 수 없었다.
해 질 무렵 옅게 흩날리던 비가 밤이 되어서는 거칠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앞마당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 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어두운 적막 속에서 더 또렷하게 귀를 괴롭혔다.
맞은편 벽면 커다랗게 난 낡은 창문은 쉴 새 없이 덜컹거렸고 가끔 섬광 같은 빛이 번뜩이기도 했다.
번개가 칠 때마다 나는 언니의 두 손은 힘주어 움켜잡았다.
 
“언니야... 나보다 먼저 잠들면 안 된다”
 
나는 언니에게 며칠째 못한 말이 있었다.
입 밖으로 꺼내면 더 무서워질 것 같은 두려움에 목구멍 속으로 여러 번 삼켰던 말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졌고 더 이상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찬 공포라는 것을 깨달았다.
 
“저 소리 들리나?”
“무슨 소리?”
 
누가 듣기라도 할까 언니는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내게 되물었다.
 
“저 소리 말이야.... 또각... 또각... 또각...”
“무...무슨 소리 말하노?”
 
언니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고 그 속에는 작은 신음이 섞여 있었다.
 
“난 저 소리가 너무 무섭다 언니야... 자꾸 왔다 갔다 한다.”
 
언니는 내 곁에 바짝 붙어 누웠다.
 
“저 소리가 왔다 갔다 한다. 왔다...갔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 ”
 
“....하지마라”
 
“뚝.”
 
“...?”
 
“저 봐봐...멈췄다.”
 
“야!...하지말라고...”
 
언니의 목소리는 조금 전 보다 더 떨렸고 약간의 짜증이 섞여 있었다.
 
“저렇게 구두소리가 멈추면... 꼭 저 창문에서... 누가 우리를 보고 있을 거 같다...”
 
언니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고 나도 그 속으로 함께 들어가 숨을 죽였던 밤이었다.
 
 
 
 
다음날 언제 그랬냐는 듯 볕이 쨍쨍한 하루가 시작되었고 밤샌 두려움은 하룻밤 꿈처럼 아련하게 느껴졌다.
언니와 나는 밤새 우리를 괴롭혔던 낡은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리고 비에 젖어 청초한 빛을 띤 잡초와 그 뒤로 보이는 대나무 숲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았다.
 
“어쩌면 저거 때문인지도 모른다...”
 
“뭐가?”
 
“그 소리 말이야...”
 
나는 손가락으로 그것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거 보이나? 우리가 버린 거”
 
그곳에는 빗물에 쓸려내려 온 흙탕물과 빨간색 구두 한 짝이 대나무 사이에 걸려 있었다.
 
“누가 저 구두를 신고 여기에서 노는갑다. 우리처럼"
 
"누가?“
 
“모르지...누군지 나도”
 
“무섭다...”
 
“더 멀리 던졌어야 했다. 아무도 못 가지고 놀게”
 
 
 
 
 
------
 
해가 좋은 툇마루에 앉아 엄마와 할머니는 잘 마른빨래를 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참말로 이상하제... 꿈자리가 뒤숭숭 한기... 예삿일이 아니다 싶다.”
 
“와? 무슨 꿈인데?”
 
엄마는 자칫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 우물 있제... 저기서 자꾸 어떤 여자가 보이는기라...”
 
“우물에서?”
 
“그래. 우물에서”
 
“별일이구만은...”
 
“머리는 산발을 해서는 팥죽색 치마저고리를 차려 입고... 저 우물에서 자꾸 여자가 올라오는기라...”
 
“아이고 섬뜩다 야야”
 
“딱 보니 산 사람은 아니데.... 피부는 꼭 썩은 시체 마냥 시퍼렇고 얼굴은 피범벅이고... 눈알도 허옇게 뒤집혀가... 내사 마 소름이 끼치가...”
 
“와 그런기 보이노. 생전 안보이든기... 희안하다이...”
 
“그러다 오늘 새벽꿈에는 딸아 둘이서 우물 앞에서 놀고 있는데 그 섬뜩한 여자가 우물에서 슬금 슬금 올라와가
현선이 머리채를 확 잡아 끄는기라... 아 데리고 우물 속에 들어갈라고...“
 
“아이고 야...”
 
“내가 현선이 손 잡을기라고 얼마나 악을 썼는지...  지금도 온몸이 다 뻐근하다...“
 
“뭐가 들러 붙었는갑다... 굿이라도 해야 안 되나?”
 
그 대화를 엿듣던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아 한동안 움직일 수도 없이 얼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문득 그날 일을 상기해냈다.
 
 
 
“어? 이게 뭐고?“
“어? 이거 구두 아이가... 진짜 예쁘다.”
 
쓰레기통 옆에 작은 상자에 든 빨간 구두 한 켤래...
하굣길  집 근처 우리의 눈에 든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한때 엄마를 흉내 내는 것에 무척 흥미를 쏟곤 한다.
 
“저것만 있으면 엄마구두 훔쳐 신고 놀다가 혼 안 나도 되고”
“맞다. 한 번씩 신고 아가씨놀이 하다가 몰래 숨겨놓으면 아무도 모를 거다.”
 
우리는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그 구두를 집으로 가지고 와 다락방에 몰래 숨겨 놓았다.
그리고 이따금씩 엄마가 장을 보러 간 날에는 엄마 화장품을 몰래 찍어 바르고는 구두를 꺼내 앞마당을 신나게 누볐다.
 
하지만 우리의 재미는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곧 엄마를 속이고 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혔고 결국 우리는 엄마에게 들키기 전에 구두를 갖다 버리자는 합의를 보았다.
그리고 증거 인멸을 위해서 고심하다 구두를 뒷산 대나무 숲 너머로 힘껏 던져버리기로 했다.
그것으로 모든 것은 없던 일이 되었다고 생각했고 마음은 다시 평화로워졌다.
 
 
그날의 기억을 더듬던 나는 조심스럽게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 할 말이 있는데...”
 
“무슨 말?”
 
막 갠 빨래를 한쪽으로 치우고 엄마는 다리를 비비 꼬며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또 무슨 잘못을 했는데 이리 풀이 죽었노? 말해봐라 얼른“
 
엄마는 나를 무릎 위에 앉히며 간밤에 꿈 때문이었는지 평소보다는 더 따뜻한 눈으로 재촉하듯 물었다.
할머니도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셨다.
 
“밤마다... 구두 소리가 난다.”
 
“뭐? 구두 소리?”
 
“응... 밤마다.”
 
“어데서?”
 
“창 밖에서 ....똑...또....똑.... 구두 소리가 난다 엄마....”
 
“... ...”
 
 
참으려고 했지만, 엄마의 이어지는 침묵이 불안해서 난 결국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어쩌면 나는 알고 있었는지도 몰른다.
구두소리를 말해버리면 나와 언니의 잘못이 들통 날 거라는 것을,
그리고 나와 언니가 함께 주워 와서 함께 버렸던 그 빨간색 구두는
밤마다 나를 괴롭히는 구두 소리와, 엄마의 꿈에서 내 머리채를 낚아챘던 그 여자와 무관하지 않을 거란 것을.
 
 
“야가 와이라노...? 구두소리? 무슨 구두소리? 이게 다 무슨 소리고? ”
 
“엄마... 사실은 내가... 내가...흐흑...얼마전에 학교 마치고 오다가... 흑...흐흐
어떤 집 쓰레기통 옆에 있는 구두를 주웠는데.......”
 
 
 
 
 
 
-----------
 
 
 
엄마는 대나무 사이에 걸려있던 구두 한 짝과 조금 더 떨어진 곳에 실려 내려온 다른 한 짝을 찾아 짝을 맞춰 주었다.
빨간색 구두는 앞마당에 나란히 놓여졌다.
그리고 엄마는 곧 그 구두에 불을 붙이고 빨간 비닐 가죽이 다 녹아 없어질 때까지 그것을 태웠다.
언니와 나는 담벼락 뒤에 숨어 타들어 가는 불과 녹아가는 구두를 지켜보았다,
엄마는 다 탄 구두의 재를 쓸어 모으며 나지막이 우리를 향해 말했다.
 
“남의 물건은 함부로 주워오는 게 아니다. 산사람 것이든지 죽은 사람 것이든지... 물건에는 그 사람의 혼이 깃들어 있는기라."
 
개미 소리로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호...혼이?”
 
“그래. 앞으로는 이런 거 절대 주워오지 마라... 알았나?“
 
 
노려보는 엄마를 향해 나와 언니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뒷짐을 지고 지켜보시던 할머니는 안쓰럽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씀하셨다.
 
“그 집 여자 얼마 전에 병 앓다 죽었다 하더니만...  저승길 가는데 신발이 없어서 못 갔는갑다. 쯧쯧쯧...”
 
그날 나는 두 손을 모아 마음을 다해 기도했다
 
‘미안합니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그러니까 화 풀고 이제 하늘나라로 편히 가세요 제발.’
 
 
 
 
 
기분 탓일까... 그날 이후부터 나는 또각 또각 나는 구두 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게 되었고
엄마도 더 이상 꿈속에서 내 머리카락을 낚아채던 우물 속 여자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작가의 한마디 :
보이는 것 보다 가끔은... 어떤 공기 어떤 소리 어떤 냄새 분위기... 그런게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요.
보이지는 않지만  무언가가 내 가까이에... 아주 가까이에 있다는 확신이 들때 다가오는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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