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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항공사의 스튜어디스 유니폼은 세련되고 동시에 단아한 매력이 있었다.
맞은편의 남자가 내민 사진 속에 미소를 짓고 있는 여자의 증명사진에서 드러난 칼라와, 스카프만으로도 나는 그 유니폼을 입은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멍하니 그 사진을 보고 있는데, 마디가 굵고 손톱손질이 되지 않은 손가락이 정신 차리라는 듯 사진을 톡톡 두드렸다.
“박 에스더.”
꺼끌거리는 입술을 혓바닥으로 적시고, 나는 남자가 했던 질문을 되짚으며 오래된 기억 같으면서도 도드라지는 그 이름을 입 밖으로 냈다. 낯선 이름을 내뱉자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비어버린 물잔 속에서 얼음들이 무너져 내렸다.
아내는 일찍 부모를 여읜 아가씨였고, 나는 그녀에게 좋은 가정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녀도 좋은 가정을 만들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고, 우리는 TV에서 언제나 볼 수 있는 완벽하고 단란한 가족을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내의 49제는 삼일 전이었고, 나는 열흘 전 빗길에서 가드레일을 받아 입원했다가 간신히 아내의 49제를 치러줄 수 있었다. 잔 안에서 무너진 얼음들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려니 그 마디가 굵고 정리가 되지 않은 손톱으로 남자는 종업원을 불렀고, 잔에 다시 물이 채워졌다.
“A씨. 다른 날 할까요?”
약간 쇳소리가 나는 목소리로 남자가 물었고 나는 다시 채워진 잔을 보며 느리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니까, 박 에스더씨? 그 분이랑은 무슨 관계입니까?”
“그녀는….”
‘그녀는’이라는 말이 몇 번이고 반복 됐지만 남자는 진득하게 기다려줬고, 나는 작게 숨을 헐떡이며 내뱉었다.
“간통녀….입니다.”
“…A씨의?”
“…….”
나는 침묵했고, 맞은편의 앉은 남자의 눈에서 작은 혐오와 의아함, 흥분감을 나는 찾아냈다. 나를 응시하는 남자에게 나는 ‘처음부터 하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아내의 이름은 혜지였다. 국외 출장이 잦았던 탓에 자주 이용하던 항공사의 스튜어디스였고, 그 다음은 모두가 예상 할 수 있듯이 흘렀다. 연애도 무난했고 결혼에도 아내의 부모님이 일찍 떠나셨다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아서, 결혼까지 순조롭게 진행됐다.
아내는 자신의 일에 충실하면서 가정을 유지하는데도 충실했고, 나 역시 일하는 아내를 최대한 배려했었다. 생각했던 단란한 가정을 유지하는데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박 에스더가 나타났다. 아내의 오랜 친구라고 했던 박 에스더는 종종 부부의 외식에 끼기도 했고, 집에서 어울리기도 했던 여자였다.
혜지가 단아하면서 상냥한 여성상이라면 에스더는 세련됐다는 이미지가 더 강한 여자였고, 나는 우리 부부와 에스더가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기념일이 있을 때면 나는 아내의 선물을 에스더에게 골라달라 부탁하기도 했고, 더러는 에스더가 미리 기념일 선물을 골라 나에게 일러주기도 했다.
고마운 그녀에게 다른 시선이 생긴 건, 그녀의 목에 걸려있던 목걸이가 아내에게 선물했던 그것과 비슷하다고 느꼈을 때였다. 목걸이에서 시작된 그 균열은 귀걸이에서 반지로 이어졌고, 나는 그것이 불편해졌다.
아내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을 때 아내는 그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취향이 나랑 비슷해.’라고 대답했던 것이 전부였다.
기념일이 낀 출장 일정을 무리하게 정리하고 나는 아내에게 줄 구두를 옆구리에 낀 채 현관으로 들어섰다. 집에서 신는 슬리퍼와 운동화들이 밀려있고 어지럽게 두 켤레의 구두가 뒤엉켜있었다. 에스더가 집에 찾아왔다는 것을 깨달았고, 불편했지만 ‘아내의 친구’임을 스스로에게 상기 시키며 신을 벗었다.
집이 조용했다.
그 순간에 심장이 목에 걸린 것처럼 온몸으로 쿵쾅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싸늘하게 손끝이 식었다. 앉아서 차를 마시거나 와인을 마시며 두 사람이 앉아있어야 할 거실은 비어있었고, 꽉 닫힌 침실 문을 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문고리를 잡아 밀었다.
매끈한 아내의 다리와, 약간 마르고 흰 다리가 눈에 들어왔고, 동시에 코로 밀려들어온 정욕의 냄새가 모든 것을 산산조각 냈다.
아내와는 별거에 들어갔다. 당장 필요한 것들만을 들고 호텔에서 머문 지 한 달하고 반이 지났을 때, 아내와 박 에스더가 항공사에서 무기한 정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아내의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또 다시 한 달하고 반이 지났을 때 아내는 목을 매 죽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갔고, 아내의 모든 것을 정리했다. 그리고 다시 박 에스더를 만났다.
“누군가 회사에 고발을 했어요.”
고발이라는 단어에 기도 안찬다는 듯 에스더가 가벼운 코웃음을 쳤고, 나는 웃음을 거두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었다.
“49제 다음날, 혜지 일하던 곳으로 오실 수 있나요?”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는 내게 에스더는 덧붙였다.
“그날, 다 마무리 하죠. 당신도 나도.”
에스더를 만난 날 빗길에 차가 미끄러졌고 나는 열흘간 입원했다가 아내의 49제를 치렀다.
시간 약속을 하지는 않았지만 에스더는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릴 것이고, 나는 오래도록 침실의 문간에 기대어 서 있다가 아내와 에스더가 일하던 공항으로 차를 몰았다.
공항에 도착하자 에스더의 모습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무기한 정직 당했다던 그녀는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 가까워질수록 나는 역한 가솔린의 냄새를 맡았다. 둘러싼 사람들과 우왕좌왕 하는 안전요원들 사이에서 그녀는 나를 찾아냈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손에 쥐고 있는 라이터에 불을 당겼다.
그 찰나의 순간 마주쳤던 눈빛과 그 세련된 몸을 감싸는 불길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는가, 고통에 세련된 그 몸이 몸부림치면서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고 공항은 일대 혼란에 휩싸였다.
모든 것이 불길 같았다.
그 불길에 결국 내 영혼까지 불살라졌고, 그녀 말대로 모든 것이 마무리 된지 삼일이 지났다. 그리고 당신이 나에게 찾아왔다.
남자는 그저 마른 침만 꿀꺽, 삼켰다. 얼음은 물에서 녹아 이제는 손톱보다도 작았다.
“…계산은 제가 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나는 그가 기대했던 이야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카페에서 나와 차에 올라탄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와 함께 대시보드에 넣어놨던 촌스러운 명함을 꺼내들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써 넣은 계좌번호를 확인하면서 나는 안타깝게도 하나의 목숨에 대한 값만을 지불했다. 완전히 만족스럽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결국에는 에스더의 말대로, 나의 몫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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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 한달 전 쯤 써놨던 것을 븅신사바 2회때 내놓는 행운을 얻었군요.
부족하기 짝이 없는 솜씨지만 븅신사바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참가합니다:)
[우리는 세월호를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꿈과 공포가 넘치는 공포게시판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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