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라도 재발할까봐 두려운 암 투병 환자 마음, 조금만 헤아렸으면[오마이뉴스 안태호 기자]
'암 유발 웹툰', '암 걸리겠다'최근 인터넷이나 게임 상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표현입니다. '스트레스 받는다', '짜증난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난 2012년 추석 즈음, 림프종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았습니다. 때문에 저러한 표현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아마 주변에 가까운 이가 암으로 생사를 달리하셨거나 혹은 암 치료를 받고 계시다면 저와 같은 반응을 하실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표현을 쓴다고 발끈하기도 머쓱합니다. 쿨해보이지 않거든요. 요즘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겠습니까. 특히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라는 대한민국에서 말이죠.
또한 이런 반론이 뒤따라옵니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사용하는 '미쳤다', '병신' 같은 표현도 쓰면 안 되는 것 아니냐", "우리 모두 죽게 마련이니 '힘들어 죽겠다' 같은 표현도 쓰면 안 되는 것 아니냐" 일면 수긍이 가는 이야기들입니다.
암 치료를 받았던 제가 그 말을 들을 때면... |
▲ 영화 <국화꽃향기>의 한 장면. 영화배우 고 장진영은 이 영화에게 암투병 여주인공 희재역을 연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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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우선 제 경험을 바탕으로 저러한 표현이 암환자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오는지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본인이 암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굉장한 충격을 받습니다. 모든 중증 질환 앞에서 같은 반응을 보일 테지만 특히 암은 '암=죽음'이란 연상이 직접적이기에 암 진단을 받으면 '나 죽는 건가?' '도대체 왜 내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듭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치료 가능성이 있거든요.
암 치료에는 크게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수술, 항암 그리고 방사선 치료입니다. 저는 수술은 받지 않았고 방사선 치료는 그리 힘든 과정이 아니니 항암치료 위주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수술만 하셔도 될 분들도 예방 차원에서 항암치료를 많이 받기 때문에 대부분의 암환자들이 항암을 경험한다고 생각하셔도 될 겁니다. 일반적으로도 암 치료라고 하면 항암치료를 많이 떠올리기도 하구요.
항암제는 암을 죽입니다. 암세포가 정상세포보다 빨리 자라는 특성을 보고 공격합니다. 그런데 우리 몸에는 암세포 말고도 빨리 자라는 세포가 많습니다. 머리카락, 손발톱, 위 점막세포, 생식세포 등등 입니다. 항암제는 이 세포들 모두를 공격합니다. 그래서 머리가 빠지고 손발톱이 검게 변하거나 빠지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이건 그리 큰 문제가 안 됩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항암제가 면역세포를 공격한다는 겁니다. 항암치료의 무서움은 구토를 하고 잘 못 먹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몸의 면역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데에 있는 겁니다. 단순 감기로도 생사를 달리할 수 있습니다. 항암 기간 중 가장 중요한 목표는 감염이 되지 않는 겁니다. 물론 주기적인 피검사로 면역수치를 확인하고 면역 주사를 맞지만 불안한 건 사실입니다. 죽음에서 멀어지기 위해 죽음을 가까이 두는 셈이지요. 저도 이 부분이 가장 겁이 나는 점이었습니다.
치료를 받은 후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하면, 이제 재발의 위험성이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암마다 재발 확률이 다 다르지만 사실 확률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본인에겐 1/2입니다. 재발하거나 안 하거나. 만약 재발을 한다면 동일한 과정 혹은 그보다 더 혹독한 치료과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혹은 더 이상 방법이 없을 수도 있구요.
'잊어야지' 하면서도 잊을 수 없는 투병 생활 저는 무덤덤한 성격이라 아팠다는 사실을 자주 잊습니다. 그러나 그게 잘 안 되는 분들이 많이 계신 것 같습니다. 잊어야지 하면서도 잘 안 되는 겁니다.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이 문득문득 떠오르고 불안에 떨게 되고 그럼 스트레스 받고 이렇게 스트레스 받으면 재발할지도 모르는데? 이런 악순환에 빠지는 겁니다.
그래서 '암 걸릴 것 같다', '암 유발 웹툰'과 같은 표현을 보면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암이란 놈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을 겪었고 앞으로 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사는 사람에겐, 잊고 있던 죽음에 가까이 다가갔던 감정과 나에겐 엄청 무거운 단어를 너무 쉽고 가볍게 말한다는 서운함 같은 것들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물론 제겐 타인에게 그런 표현을 쓰지 말라고 요구할 권리는 없습니다. 다만 '나에게 저 표현이 이런 감정을 불러온다, 그래서 불편하다'라는 말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이 받아들이면 좋은 것이고 아니면 어쩔 수 없습니다.
저도 많은 말들을 내뱉으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을 겁니다. 앞으로 조심한다고 해도 아마 계속 같은 실수를 반복할지도 모릅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 저와 같이 불편한 감정을 제게 토로한다면 반성할 때도 있을 것이고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래?'라고 반응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 경계는 아직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지금 우리 사회에는 전자의 태도가 조금 더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타인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마음에 써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