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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으로 간 김기춘, 1989년 우지파동 당시 검찰총장
게시물ID : sisa_79598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카디아
추천 : 22
조회수 : 1676회
댓글수 : 36개
등록시간 : 2016/11/24 12: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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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파동

1989년 11월 익명의 제보로 일부 라면회사에서 공업용쇠고기 기름(공업용우지)를 사용.
당시 공업용 우지를 사용했던 삼양은 3개월 영업정지, 경영자 구속, 1000억이 넘는 벌금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와 대국민 홍보로 삼양은 파산 직전까지 갔으나 8년 뒤인 1997년 대법원 무죄 확정

최대 수혜 회사는 팜유를 사용했던 농심(롯데의 형제기업)
당시 근본을 알 수 없는 익명의 제보를 받고 삼양을 타겟으로 한 기소와 여론 몰이를 했던 검찰..
당시 검찰 총장이 바로 김기춘(1988~1990년 검찰 총장)
전두환 시절 한직에서 육영재단 최태민 사건 봐준다고 드나들다 노태우가 들어서며 중용됨.


참고

1. 공업용 우지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고기를 제외한 소뼈, 내장 등 부산물은 먹지 않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공업용"으로 이름만 달아서 폐기.
삼양은 이 소의 부산물을 외국에서 수입해서 우지를 추출해서 라면을 튀겼고, 식용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음.
즉, 소의 식용 문화의 차이에 따른 분류 문제였지만, 검찰에서 "공업용"이란 이름을 달고 수입된 것을 빌미로 삼양을 탈탈 텀.
결국 1997년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판결이 났지만, 이미 삼양은 맛이 간 상태.

2. 라면 시장
당시 익명의 제보에 의했다고 해서, 농심이 의심을 받았지만.. 워낙 "공업용" 언플이 강해서 금방 사라짐.
일부에서는 당시 시장 점유율 순위가 삼양, 농심순이었고 우지 파동으로 뒤집어 졌다고 하나,
사실 농심은 한참 전에 안성탕면, 신라면으로 삼양에 앞서 있던 상태.  

3. 김기춘
70년대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5국)으로 수많은 용공사건을 기획하여 수많은 사람들 인생 날려먹음.  
경력: 5.16 장학생, 유신헌법 초안작성, 신직수 밑에서 중정 대공수사국장, 민청학련, 2차인혁당, 우지파동, 강기훈 유서대필, 초원복집사건, 노무현 탁핵주도, 통진당해산, 최순실게이트...
 
우지 파동 당시 검찰 총장, 이 인간이 관여하면 무슨 사건이 반드시 터짐. 우지 파동에서의 검찰 책임은 분명함.
공직에서 물러날 때마다 우지 파동의 최대 수혜자 "농심"의 법률 고문으로 고액의 급료를 받고 편안하게 사는 중.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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