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zine.media.daum.net/h21/view.html?cateid=100000&cpid=18&newsid=20110527181041352&p=hani21 한국 남성으로부터의 탈퇴 [한겨레21] [표지이야기] 애국으로 포장된 남성성과 불화하는 병역거부자들… 성별분업 극복한 여성 리더십이 탈군사주의 문화 이끌어 2006년 6월 말이었다. 한 국제학회에서 민주주의와 남성화된 정치에 관한 논문 발표를 부탁받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만나면 소잿거리가 있을 것 같아 서울 서대문에 있는 사무실로 찾아갔다. 병역거부가 큰 사회적 이슈가 되고 오태양씨의 최초 선언이 있던 2001년에는 미국에 있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동시대적 기억이 없는 상태였다. 어떤 사람들일까에 대한 사전 인상도 지식도 없었다. 두 평도 안 돼 보이는 조그마한 사무실에 앉을 자리도 변변치 않아 쪼그려 둘러앉았다. 예비자를 포함한 양심적 병역거부자 4명과 활동가 2명이 동석했다. 다들 편안하고 차분하게 늘 하던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내용의 신선함에 귀를 쫑긋대고 있었다. 기대했던 양심적 병역거부나 대체복무 등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남성성, 여성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내가 꺼낸 화두가 아니었다). "남성성을 죽이려고 노력했어요" A: "남성성이 사라지는 것이 두렵다기보다는 남성성이 발현되는 것이 두렵죠. 병역거부를 하기 전에 여성주의를 알았다기보다는 학생운동을 먼저 했고, 병역거부를 하면서 평화운동에 관심도 가지게 되고 여성주의에 눈뜨게 됐어요." B: "폭력성을 꺼려했어요. 부모님이 비폭력적으로 키우셨고 이타주의적이려고 했어요. 은행에서 상담원으로 아르바이트하는데 술 먹고 욕하면서 전화하는 사람들이 있죠. 분노가 쌓이면 전화 끊고 나서 욕을 할 때도 있어요. 군대를 간다면 그런 게 두려웠어요. 분노가 쌓여서 내가 변하는 게. 고등학교 입학 뒤 내 안의 남성성을 죽이고 여성성을 살려나가려고 노력했어요." C: "남성적이었죠. 부모님과의 관계도 그렇고 시위 현장에서도 그렇고 대화 스타일도 남성적이고. 예를 들어 수배 생활도 하고 해서 양심적 병역거부 하기 전 6년 만에 부모님을 만나러 갔는데 누나와 여동생이 왜 그것을 하려느냐고 물으면 공격적으로 관심도 없으면서 그런 질문 하지 말라고 했죠." 왜 양심적 병역거부운동에 참가하면서 남성성과 여성주의를 이야기할까? 궁금증을 풀려고 몇 명과 더 면접도 하고 문건도 읽었다. 여성 활동가 최정민은 병역거부자들은 단순히 민족적 반역자만이 아니라 비겁한 남성으로 비난받아왔다고 설명했다. 병역거부를 연구한 강인화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병역법 위반'으로 수감 중이던 '사례 H'는 본드를 불다 '유해화학'으로 감옥에 들어온 같은 방 수감자에게 '애국심 없는' 하잖은 존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애국심은 사회적 범죄의 파렴치한 정도를 판가름하는 잣대가 되며, 남성으로서 애국심을 입증하는 방식은 군복무에 성실하게 임하는 것이다." 출처: 미디어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