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오유에 로긴했다가 제가 달았던 댓글들을 다시 한 번 보았습니다.
그 중 한 개를 클릭해 보았더니 원글은 삭제가 되어 있더군요.
길게 썼었던 이 댓글을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올려 봅니다.
아마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화두가 들불처럼 퍼져나갔던 시기에 달았던 댓글이었나 봅니다.
오히려 지금 이 시기에 저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화두가 제 심정에 더욱 더 와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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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한참을 싸우다 왔네요]
에효!!
부모님이 제 또래이거나 좀 위거나 하실텐데.. 제가 한 가지 소스만 드릴께요.
중 2때 10월26일 하늘같았던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 소식에 눈물을 흘렸고
(등교길 버스 안 라디오에선 모든 방송이 중단되고 구슬픈 음악만 나오면서 뭐라뭐라하는 멘트가 나오는데,
설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걸거야 하면서 등교를 했던 기억이 생생..)
중3때 5.18이 있었고 TV에서는 빨갱이들이 광주를 점령하여 폭동을 일으켰다고 했습니다.
전 고딩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육사에 진학해서 군인이 되어 북한 공산당을 쳐 부수고 통일을 이루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항상 타의 모범이 되었던(사실임.. 나름 학생회장 출신임.. ㅋ~) 저의 꿈은 대부분의 친구들에게 존중을 받았습니다.
근데, 고2였던 어느 날, 고3 전교 짱(전교 1등, 학생회장 직을 고사했었고 동기들 중에서 유일하게 설대 법대 간 형)이었던 선배가 저에게 문득 하는 말..
"육사는 왜 가려구.. 다시 함 생각해 봐." 이러더군요. (응, 이 형이 갑자기 왜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거지?)
결국 육사가 아닌 일반 대학에 진학한 후, 5.18에 관한 해외 기자들이 취재한 영상을 보았습니다.
20년간 제가 배워왔던 상식이 무너졌고, 새로운 진짜 상식을 탑재하기 시작한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군인이 되겠다는 꿈을 그리 탐탁치 않게 여기셨던 아버지가 저에게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내 사촌 형님들은 아직 북에 계실 지도 모르고, 전쟁나면 네 육촌 형제를 전쟁터에서 만날 수도 있고,
서로 총을 겨눠야 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괜찮겠냐?"
육사가 아닌 일반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야 그 말씀이 어떤 의미인 지 이해가 되더군요.
(그 전까지는 아우.. 도무지 저희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던..)
지금까지는 배경 설명이었고, 진짜 소스는 지금부터입니다.
전 그나마 대학에 진학해서야 TV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소식들을 접할 수 있었기에 상식이 바뀌게 된 케이스입니다.
당시 대학 진학률은 전문대 포함해서 약 30% 정도 였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2002년 대선 때 이회창을 지지했던 설대 출신 박사 학위를 받은 제 친구는 그 때까지도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민군이 먼저 총을 쐈으니 진압이 시작된 거라고 주장했었습니다.
물론 그게 북한 공산당 폭도들의 짓은 아닐 거라고 생각은 했겠지만..
상식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의 상식도 상식은 상식입니다.
우물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는 상식을 갖게 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그러한 세대입니다. 저희 세대가..
저희 윗 세대까지 언급하면야 뭐.. -_-;;
4.19, 5.18, 6.10민주항쟁을 겪었으면서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과연 그 사건들에 직접 동참했던 사람들은 당시 인구의 몇%나 되었을까요?
당시 상황이 뭔 상황인지도 제대로 알 수 없었던 절반 이상의 침묵 속에서 (당시에도 이런 분들은 안녕들 하셨는지?)
깨어있던 몇몇 사람들과 그에 동참했던 절반 이하의 사람들에 의해서 결과가 이리 되기도 하고 저리 되기도 한 거라고 봅니다. 저는..
(4.19, 6.10은 증거가 너무나 명백하게 알려진 사건들이라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가 그 사건들을 겪고 나서 잠시 각성했다가 다시 먹고사니즘 때문에 변절한 것이 아니라,
원래 윗 세대들의 일반적인 상식이 그러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세상의 세세한 정보들이 다 알려지는 지금에도 이 정도인데..
이런 점들을 참조하셔서 부모님들과 현명하게 대화하여 설득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그 분들이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개인적인 역사들을 알 수 있어야 해요.
전 대학물 먹고 나서야 정신 차린 케이스지만 대학물 안 먹고도 저보다 먼저 제대로 된 상식을 갖춘 분들도 계시고,
당시 상황에서 나름 대학물을 먹고도 꽉 막혔던 몇몇 친구들도 있긴 했었으니까요.
(여기까지가 전에 썼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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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세월호 사태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뿐입니다.
"모두가 알아야만 될 모든 진실은 모두 보도되어야만 한다. 롸잇나우~"
민주주의의 기초입니다.
'진보와 보수의 대결?' 아닙니다.
오래 전부터 저들이 짜놓은 프레임일 뿐입니다.
상식과 비상식, 진실과 거짓, 정의와 불의의 대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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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의 정치 게임은 상식적인 민주주의가 먼저 확립된 후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하도 답답한 마음에서 김대중 노무현 두 분의 전(前) 대통령에게 화풀이를 해봤습니다.
두 분이 집권하신 (어설픈) 민주주의 기간 동안에 성장한 젊은이들이
이제는 더 이상 저들의 거짓 선전에 속아 넘어가지 않고 있다는 점에 감사드립니다.
- (어설픈)은 온갖 강력한 방해 공작들 덕분(?)에 그것조차도 완전한 민주주의는 아니었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우리 꼰대들과는 개념 자체가 다르더군요. ^ㅡ^
근데요...
두 분 집권 10년 동안에, 왜 '야자'는 폐지하지를 못하신 건지?
'야간 자율학습'이란 게, 제가 고3때(1983)부터 생긴 거거든요.
이게 가만히 생각해 봤더니.. (나중에야.. 3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 생각해 보니)
자율적으로 복종하고, 가만히 앉아서 시키는 공부만 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의미라는 걸.
시키는대로 자율적으로 가만히...
초딩때부터 배웠던 박통 할아부지께서 주창하신 '한국식 민주주의'
= 요즘 말로는 자유민주주의(반공+민주주의)와 같은 의미,
= 오리지날이 아닌 조건부 민주주의..
= 민주주의의 형식을 빌린 독재정치
사그라드는 나이가 된 이 시점에서
할아부지 박통 때부터 철저하게 세뇌된 '한국식 민주주의'의 위력을 더욱 더 절실하게 느끼고 있네요.
세월호의 비극은 저에게 그렇게 각인되고 있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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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가만히 있다가 희생된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 아닙니다.
가마니쓰라는 말에 철저하게 가마니만 쓰고 있는 수십년간 훈련된 꼰대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잠자다가 오줌을 싸서 평생을 가마니만 쓰고 다니는 버릇이 남아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