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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산문 - 그는 여전히 웃고만 있었다.
게시물ID : readers_79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그래그렇지
추천 : 2
조회수 : 34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6/29 06:10:41
그녀의 시선이 사진 한 장에 멈췄다.
작은 나무판에 고정된 사진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바닥을 기는 것은 고요하고 사무치는 침묵. 가슴이 떨린다.
어찌해 이리되었는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사진 속에서 그녀와 그는 웃고 있었다.
서로를 향해 행복하다는 듯 영원하리라 믿으며 그렇게 그곳에 있었다. 2년에 걸쳐 그와 그녀는 연애를 했다. 누구보다 행복하게, 누구보다 아름다운. 그런 사랑을 했다. 그는 참 잘 웃는 남자였다. 그녀를 향해 돌아보며, 말하며, 안으며 그는 웃곤 했다.그 미소의 온기가 그리워, 그리워 그녀는 손끝으로 사진을 매만졌다. 묻어나는 것은 미련, 매만지는 것은 추억이다. 한참을 사진만 바라보던 그녀는 혼자 울기도하고 웃기도 했다. 속죄하듯 흘리는 눈물은 악어와 같았다. 허탈한 듯 짓는 웃음은 고라니와 같았다. 침대에 쓰러지듯 파묻힌다. 포근한 침대보와 부드러운 배게 에도 그녀는 시리다고 느꼈다.
온기가 필요해. 입술은 달싹거릴 뿐이다, 말은 입안을 맴돌았다. 아무도 없는 방안, 불 꺼진 방. 그가 떠나감과 동시에 그녀의 방은 불을 잃었다.
저 멀리 던져두었던 핸드폰이 드르륵 소리를 낸다. 드르륵, 드르륵. 그녀는 배게를 던졌다.
시끄러워. 날 내버려둬. 침대 속으로 머리를 묻는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 비명을 삼킨다. 눈물은 마르지도 않고 흘렀다.
굵은 커튼으로 가려진 세상은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게 했다.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하루가 지났는지 보름이 지났는지. 불 꺼진 방안에는 오직 밤만이 이어졌다. 그녀는 한참을 울었고 또 오래도록 잠들었다. 그녀는 지쳐버렸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하루인지, 이틀인지 혹은 한 시간인지 삼십분인지. 시계 없는 방안의 시간은 얼마나 흘렀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녀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엔 심한 갈증과 함께였다. 목이 말랐다.
타는 목마름으로 그녀는 기듯이 냉장고를 찾았다. 이내 그녀는 냉장고의 문을 열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냉장고는 텅 비어있었다.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쇳소리와 같았고 한 서린 짐승의 울음소리를 닮았다. 그녀는 냉장고에 기대어 잠시 훌쩍였다. 목이 너무 말랐고, 배가 고팠다. 그녀는 외출 준비를 했다. 산발인 머리를 묶고 모자를 깊게 눌러쓴다. 그녀는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집 밖으로 나서는 것은 근 한 달 만이었다. 조심스레 현관문을 연다. 다행히도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새벽.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한 낮이었다면 다시 그녀는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스름이 깔린 세상은 내려앉은 이슬에 조금은 싸늘할 정도였다.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다. 가로등불만이 밝아오는 아침에 위태롭게 흔들린다. 편의점은 가까웠다. 골목하나 넘으면 하나씩 있는 편의점이 반가운적은 처음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반쯤 졸고 있던 남자가 흠칫 놀라 어서 오세요, 인사를 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바구니를 들었다.
라면 한 봉지, 물 두병, 냉동 만두, 즉석 밥, 빵. 그녀는 닥치는 대로 손을 뻗었다. 바구니는 금세 가득 찼다. 그녀가 바구니를 카운터로 가져가자 남자는 잠깐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것은 찰나였고 남자는 이내 손님을 대하는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녀는 놓치지 않았고 입술을 앙다물었다. 삐빅, 삑. 바코드 찍는 소리만 유난스레 울린다. 부끄럽다, 저 소리가. 그녀는 손을 옹송그렸다. 삼만 팔천 오십 원입니다. 남자는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펼쳐진 손바닥. 퍼뜩 정신을 차린다.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건넨다. 남자는 여자를 이상하다는 듯 잠시 바라보았다. 계산은 끝이 났다, 남자는 봉투에 그녀가 산 것들은 담았고 건네주었다. 그것은 제법 무거웠기에 그녀는 낑낑대며 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은 오르막이었다. 비록 짧은 거리지만 그녀는 벌써 숨이 차는 것을 느꼈다. 주위는 한시가 다르게 밝아오고 있었다. 해가 뜬다.
그녀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봤다. 어스름을 밀어내고 밝아오는 옅은 붉은 기를 바라봤다. 그 모습은 제법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고 집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녀가 돌아 갈 곳은 저곳이 아니었다. 나의 작은 집, 작은 방. 문을 닫고 들어서자마자 쓰러지듯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지쳤다. 물을 따 벌컥벌컥 들이마신다. 갈증이 해소되자 배가 고파왔다. 비닐봉지 안에는 한 아름 음식들이 들어있었다. 냉동 만두, 라면, 햄버거.
햄버거를 하나 포장지를 뜯고 입에 문다. 싸구려 페티. 싸구려 양념. 차갑고 뻑뻑한 빵. 하지만 그녀는 순식간에 햄버거를 먹어치웠다.
양이 모자라 햄버거를 하나 더 뜯는다. 반쯤 먹다말고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햄버거를 입에 문채 그녀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딱히 자신의 처지가 처량해 우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녀가 편의점 음식을 먹는 것을 싫어했다. 냉동식품이나 불량식품을 먹는 것을 싫어했다. 그는 제대로 된 식사를 언제나 그녀에게 바랬고 함께했다. 그녀가 라면이라도 먹은 것을 걸린 날에는 그에게 언제나 혼나곤 했다. 잔소리 듣곤 했다. 그저 그것을 떠올린 것뿐이었다. 흐느낌은 이내 통곡으로 바뀌었다. 햄버거가 볼 쌍스레 바닥을 굴렀다. 한참을 울던 그녀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의문만이 맴돌았다. 줄 곧 생각해왔던, 의문. 왜 그는 그런 결정을, 그런 행동을 하고 만 것인지.
그날은 여느 때와 같았고 그는 다를 것 없어보였다. 여전히 다정했으며 여전히 그녀를 향해 미소 지었다. 즐거운 데이트 이후 그는 그녀를 집까지 마중해주었다. 굿바이 키스. 그녀와 그의 입술이 맞닿았다. 다를 것 없이 행복한 날이었고 다를 것 없이 그녀는 그를, 그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렇게 그녀와 그는 헤어졌다. 그날 밤 그녀가 샤워를 마치고 TV 예능 프로를 보며 깔깔 대고 있었을 때 그는 자신의 베란다 난간에 목을 매달았다.
경찰 사인은 자살이었다. 타살의 흔적은 없었고 용의자 또한 찾을 수 없었다. 그의 휴대폰의 최근 연락에는 그녀의 전화번호뿐이었다.
그는 일찍 부모님을 여의였고 친구 또한 적었다. 상은 조촐하게 치러졌다. 그 무렵의 그녀는 정신이 없었다. 무엇이 이뤄지고 있는지. 지금 누가 죽었고 누구의 상을 치르는 것인지. 그녀는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모든 사실을 인식한 후 그녀는 네 번의 졸도와 두 번의 자살 시도를 했다.
한달 후 그녀는 직장을 그만두었고 서울에서 떠나 근교로 이사를 했다. 작은 집,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녀는 사진을 바라보며 물었다.수백 번 수 만 번을 물은 들 그는 그저 빙긋이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천장을 올려다본다. 그는 왜 목을 매달 수밖에 없었을까. 그녀는 생각했다. 그는 왜, 어째서.
그녀는 끊임없이 생각했고 끊임없이 물었다. 그리고 한 가지 해답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기듯이 나무판 앞으로 다가섰다. 사진속의 그를 손끝으로 매만지며 그녀는 속삭였다.
당신이 자살했다고 나는 믿지 않아요, 당신을 죽인 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릅니다.
업무라는 스트레스일지도 누군가와의 다툼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언제나 긍정적 이였고 언제나 상냥했습니다.
당신을 죽게 만든 이가 누구인지 밝혀낼 거예요. 그리고 심판하겠습니다. 그게 설사 나라고 하더라도 말이에요.
그녀의 서슬 퍼런 다짐에도 사진 속 그는 여전히 웃고만 있었다.
자신의 베란다에 그가 목을 매단지 두 달이란 시간이 흘렀을 때에 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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