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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일기 "텔레마케팅"
게시물ID : freeboard_3694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BlueRose
추천 : 3
조회수 : 342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09/09/29 21:48:55
"회사 분위기상 내일은 야근, 혹은 죽을 정도로 바쁜 날이 될 것이다."
"9월 5일까지 쉬기로 했는데 왠지 켄슬 확정에 가깝다."

그 외의 이러저러한 이유로 잔뜩 짜증나있었지만 열심히 일하고 있던 도중 핸드폰이 울렸다.

"Fly me to the moon~♪"

달은 얼어죽을...
옆나라 일본까지 가는데만 해도 왕복 몇십만원인데...

발신자 번호를 확인해보니 0707로 시작하는 번호였다.
받지 말까 하다가 왠지 뒷자리 번호가 거래처와 비슷한 것 같아 우선 전화를 받았다.

스피커 넘어로 밝고 경쾌하며 귀염성이 묻어나는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안녕하세요"의 바로 다음을 잇는 "KT"라는 단어가 귀에 들어오자

뇌수 가득히 '인터넷 전화 텔레마케팅!' 이라는 예감으로 충만해졌다.

하지만 워낙 회사로도 자주 걸려오는 전화라 질릴대로 질렸던 텔레마케팅 전화,
거기에 몹시도 짜증나있던 상황에서

나는 왠지 그녀의 목소리가 짜증 나거나 귀찮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오늘, 혹은 이번주, 이번달의 할당치를 채우지 못한 듯한 절박한 느낌이 느껴졌지만
"텔레마케터들 특유의 가식"(나쁘게 말하자면)이 묻어나지 않는 신선한 함에
책상 위에 어지럽게 흐트러져있는 스크립트를 필사적으로 읽으며 곤란해하고 있을 법한 그런 느낌.

뭐 그런 정확하지도, 확실치도 않은 느낌들은 집어 치우더라도
전화 스피커 넘어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와 그 느낌 만큼은 확실히 좋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짜증은 커녕 농담과 장난을 섞어가며 통화를 이어나갔다.
그러다 문득

"여자친구 있으세요?"
"아니요, 상당히 아픈 곳을 찌르시는데요?"
"아... 여자친구 있으시면 통화도 많이 하시고 요금도 많이 나오시는데..."
"아, 여자친구가 생기면 그때 바꿀게요."
"그럼, 여자친구 소개시켜 드릴게요."

음... 솔깃한걸? 하지만 나는 전혀 집전화를 인터넷 전화로 바꿀 의지가 전혀 없었다.

"해외에서도 적용 되시기 때문에 유학을 가시게 되더라도 저렴하게 사용하실 수 있으신데요."
"나이가 나이라 유학갈 일은 없을 것 같네요."
"몇살이신데요?"
"28살이요."
"아..."

라는 식으로 아마도 스크립트에 적혀있을 법한 그녀의 말들을 모두 부정하였고
포기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그녀는 왠지

"그럼 여자친구 생기시거나 전화 바꾸시게 되면 연락 주세요 핸드폰 번호 남겨드리겠습니다."

음... 요즘은 핸드폰 번호까지 알려주는 구나 하며 통화를 마쳤고
[고객님 전화기 필요하실때 이쪽으로연락주세요^^] 라는 문자가 그녀의 핸드폰 번호로 전송되었다.

대략 30분 후, 퇴근하여 최신식 지하철 9호선을 타러 가는 길에
문득 문자로 남겨진 그녀의 핸드폰 번호가 떠올랐다.

[여자친구필요할땐연락하면안되나요?아쉽네요ㅎㅎ수고하세요^^]

라는 다소 흑심이 느껴질 수도 있는 모호한 느낌의 문자로 답문을 보냈고
전송완료가 뜬지 채 30초가 되지 않아 예의 0707번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사실은 제가 오늘 하나도 실적을 못 올려서요..."
"아..."
"하나만 해주시면 안되요?"
"아, 정말 필요가 없어서요."
"그럼 여자친구 소개시켜 드릴게요. 저 23살이예요. 편하실때 약속 잡으세요."

역시나 여느 텔레마케터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좀 나이가 어린점이 아쉽긴 하지만...
잠깐, 뭐지? 이사람 오유인인가...
안생긴지 오래된 것인가...

"그럼 해주시는 거예요?"
"아뇨, 일단 만나봐야죠."
"안되는데, 저는 선불인데?"
"안되요, 저 그렇게 싼남자 아닙니다."

뭔가 불법 매매 비슷한 기운이 느껴지는 대화가 오고가며
당장이라도 만날 듯한 기세의 통화를 이어나가던 도중.

"그럼 어디 사시는데요?"
"목동이요."
"아 정말요? 저 XXX동에 살아요."
"예? 거기가 어디죠?"
"YYY동 바로 옆이요, 모르세요?"
"예? 모르겠는데..."
"서울 사세요?"
"예."

앗불싸...
그래...

목동은 서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전에도 있다라는 사실이
시속 370Km의 속도로 내 뒷통수를 강타했다.

"아... 그럼 안되겠네요..."
"아, 멀리서도 여기까지 텔레마케팅을 하는구나..."

그렇게...

정말...

진짜...

오랬만에 나의 풋풋한 연애감정이 고개를 들려 하는 순간...
상상 속 스티븐 시걸의 무자비한 두손에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목 자체가 꺽여버렸다.

아...

젠장...

어차피 11월달에 회사 그만두고 백수되는데...

대전이나 내려가서 살까...


-오늘의 교훈-
1. 텔레마케터를 만나려거든 전화가 어디서 걸려오는지 부터 확인하자.
2. 목동은 서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전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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