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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집회에서 여혐반대를 외치는 분들과 마주친다면
게시물ID : sisa_79697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마고구
추천 : 3/10
조회수 : 676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6/11/25 21:51:54
1. 
12일 집회 때였습니다. 중앙 무대에 노조에서 나오신분(아마도? 정확히 어디서 오신 분인지는 제가 연설을 처음부터 듣지 못해서 잘 모르겠습니다)께서 연설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 분은 집회 참석자들에게 파업중인 노동자들과 연대해주고 응원을 보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 제 옆에 서 계시던 아저씨가 짜증을 내기 시작하시더군요. "아니 저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마도 '노동자'라느니 '파업'이라느니 '연대'같은 표현이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에에이 무슨 더러운 소리를 하고있어!" 옙, 진짜로 '더러운 소리'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더 이상 집회에 참석하기 싫었던지 같이 온 친구분들과 집회장 밖으로 나가버리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분은 박근혜 퇴진을 외친다는 생각으로 나왔지만, 갑자기 노동자들과  연대하자는 연설이 들려오자 그 '좌파적'인 분위기에 당황했고 그런 분위기를 수용하지 못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광장에 더이상 있을 수 없는 마음상태가 되겠지요. 


2.
 집회장소에서 여혐반대를 외치는 여성분들이 계신다는 이야기를 여러 곳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분들이 외치는 여혐반대 구호가 박근혜 퇴진이라는 구호가 외쳐지고 있는 집회장의 맥락에서 어긋나고 있다고 느끼고 계신 듯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도 박근혜정권이 한국사회에서 여성혐오를 구조화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박근혜정권이 농민들과 노동자들, 그리고 학생들에게 큰 피해를 끼친 것은 확실하죠. 그런데 제가 여성이 아니라서 그런 것인지, 박근혜 때문에 여자로 살기가 더 힘들어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분들이 박근혜 때문에 느끼는 좌절감과, 그로 인해 박근혜의 여성성이 강조되는 욕설(대표적으로 씨발같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는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세요, 한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한국 최악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공범도 여성입니다. 여성들로서는 참담한 심정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좀 극단적인 비유를 들겠습니다. 미국에서 최초로 한국계 대통령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국가적인 재난상태에서 일곱시간동안 실종되고, 잠재적 적국에게 군사정보를 넘겨주기로 비밀리에 결정하고,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국정교과서 제작을 강행하고, 외교를 개판으로 해가지고 해외에 투자한 기업인들을 쫄딱 망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알고보니 이 사람이 비선실세들에게 조종당하는 사람이었고, 그 비선실세는 미국의 국가제도를 사유화하여 사적 이익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비선실세들도 다 한국계입니다. 

 이걸 지켜보는 재미동포들과 한국인들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아마 향후 한국계는 미국에서 대통령은 커녕 중요한 자리에 앉기는 힘들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겁니다. 

 그래서 퇴진하라고 시위에 나섰더니 백인, 흑인, 라틴계, 인도계, 아랍계, 중국계, 일본계 미국인들이 한 목소리로 "퍼킹 김치맨!"을 외치는 것입니다. 한국계 대통령이니 김치 운운한다 치더라도 듣는 한국계들은 움찔움찔 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요컨대 박근혜는 한국여성들에게 정말 빅엿을 날린겁니다. 아얘 그냥 똥을 바가지 째로 끼얹은거에요. 민주화 이래 박근혜정권은 가장 가부장적인 정권이었습니다. 당연히 여성의 권리향상, 유리천장의 해소, 그딴건 없었습니다. 진짜 생물학적으로만 여성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나 가부장적 지도자였던 이 사람이, 하필 성별이 여성인 것 때문에, 여성 대통령에 대한 깨지기 힘들 선입견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걱정, 같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창피함, 그런거 여성들에게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토록 여성성이 부각되는 욕설이나 구호, 조롱에 민감해지고 두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뭐, 기울어진 운동장이니, 남자가 디폴트로 맞춰저 있다느니, 언어구조가 남성중심적이고 여성을 타자화한다느니, 그런 어려운 페미니즘 이론은 저도 감이나 조금 올 뿐이지 잘 모르는 부분입니다. 그토록 여성들 입장에 무지한 저입니다만, 박근혜와 그 공범들의 여성성이 강조될 때 마다 여성들이 놀라고 두려워할 것이라는 점, 그 점에는 절절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마저 우리와 함께 싸우고 있는 여성들이 박근혜가 느껴야 할 창피를 느끼게끔 만들어야 하겠습니까. 


3. 
 박근혜와 최순실이야말로 가장 심각한 여성혐오의 원천이지요. 여성혐오의 마르지 않는 샘입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역시 여자는 대통령 같은거 시키면 안돼"이런 말 들어보셨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다른 버전도 있습니다.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뛰는데 옆에서 운동하는 아줌마들이 "어휴 박근혜 너무 불쌍해. 여자 혼자서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남자들이 좀 이해해 줘야지."라면서 떠들고 있더군요. 여자라서 대통령 하면 안 된다, 여자니까 남자들보다 정치하는데 더 힘이 든다, 이런 식의 생각들이, 그야말로 전형적인 '미소지니'겠지요. 여성을 인간(남성)과 다른 존재로 여기는 것, 동정의 대상 혹은 경멸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 박근혜가 앞장서서 이런 못된 것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매우 불행하게도 박근혜와 최순실은 중년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실체화 한 듯한 사람들이지요. 멍청하고, 거만하고, 드라마는 좋아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모양은 잘 모르고, 미용에 과다하게 돈과 시간을 소모하고, 교양없고, 나약하고, 의존적이고 등등.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저런 고정관념과 맞서 싸웠던 여성들은 허탈할 수밖에 없는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마냥 이 범죄자들의 여성성을 강조하는 구호들을 순순히 함께 외쳐야 하겠는가... 아마도 아니겠지요. 그러므로 광장에서 여성들이 여혐표현 반대를 외치는 것은, 여성혐오의 소재를 화수분처럼 뿌려대는 박근혜에 대항하여 그들이 벌여야만 하는 가장 절실한 싸움일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박근혜 퇴진과 함께 여혐반대를 외치는 것은 그렇게 뜬금없는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그것 역시 박근혜와, 박근혜가 저지른 해악과 맞서 싸우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만물 여혐설이 나오는 시대입니다. 사실 남성들에게는 조금 불편한 요즈음이기도 하죠. 어쩌면 많은 분들은, 여혐반대를 외치는 사람들한테 시달린 경험 때문에 제 말에 별로 동의하기 싫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몇 주 째 이어지는 이 집회는 민주화 이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맞이한 가장 가혹한 시련이자 가장 어려운 시험이라는 점을 생각해 주세요. 우리 모두 광장에 나온 순간, 우리 모두는 역사적인 시험에 들게 됩니다. 그것은 신체적 고통과의 싸움이자, 민주주의의 적들과 싸우는 정신적이고 윤리적인 투쟁입니다. 

 우리가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것, 그것은 민주주의 밖에서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는 적들과 벌이는 싸움입니다.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 그런 박근혜를 이용해 우리가 선거를 통해 양도한 권력을 무단으로 이용하여 개인적 이익을 얻은 비선권력들, 그들에게 기생한 재벌들, 그들에게 부역한 검찰과 언론과 벌이는 투쟁입니다. 

 그러나 적은 바깥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의 적은 내 안에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더욱 중요한 싸움일 수 있습니다. 과연 박근혜를 무너뜨린 다음, 우리는 어떤 민주주의를 만들 것인가? 우리는 투쟁을 통해 무엇을 해방하려고 하는가? 불쾌하고 불편한 이웃이 내 옆자리에 설 수 있도록 허락하는 관용과 용기가 넘치는 광장이야말로 우리가 해방시켜야 할 민주주의입니다. 그 광장은 또한 우리 자신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5.
 최소한 그 사람들이 함께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는 한, 그렇게 못 참아줄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분명히 많은 오유님들이 이미 관용을 미덕을 보여주었다는 것도 제가 잘 압니다. 

 불편함을 못 참고 광장을 빠저나갔던 그 아저씨의 마음에는, 민주주의 광장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삶이 많지요. 생각지도 못했던 삶들이 내지르는 시끄러운 소리를 통해 내가 아는 세상을 넓혀가는 것도 민주주의와 관용의 즐거움이 아닐까요. 그러나 그 아저씨는 노동자들의 세상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리는 여성혐오를 외치는 여성들이 문제시하는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저는 친구들이랑 박근혜를 지칭할 때 '댓통년'이라고 부르곤 했었습니다. 제 친구는 닭년이라고 했지요. 저는 지금도 대통령을 그렇게 부르는게 재밌습니다만, 광장에서는 그저 다 함께 "박근혜는! 퇴진하라!"구호만 외쳐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6.
 긴 글 죄송합니다. 내일 날씨도 춥고 비소식도 있는 것 같은데 건강과 안전을 위해 철저하게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밑에 어느 고마우신 분이 따뜻한 음료를 챙겨가서 서로 나누자는 제안을 해주셨은데, 정말 다들 다른 분들을 위해 이것 저것 준비해 주시면 다들 따뜻하고 즐거운 시간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일 광장에서 다함께 만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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