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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언어를 넘어서야 한다.
게시물ID : phil_79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고맨
추천 : 2
조회수 : 32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1/16 18:25:27
철학은 언어를 통해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때문에 현대철학은 언어의 문제에 천착한다.
비트겐슈타인, 소쉬르, 라깡이나 푸코를 거쳐 지젝에 이르기까지...
언어가 지니고 있는 문제를 바탕에 깔고 자신의 논의를 진행해나간다.
이들은 언어가 단순한 정보의 매체가 아님을 이야기한다.
언어는 단순히 내 생각을 남에게 전달해 주는 매체, 즉 도구가 아니라
(물자체처럼)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독자적 체계요 존재라는 것이다.
 
언어는 완벽하지 않으며 믿을 수도 없다.
'꽃이 아름답다.'는 말은 꽃이 아름답다는 정보를 전달하지만, 꽃에 대해 내가 느낀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해주지는 못한다.
'그는 한국인 전문 킬러다'는 완벽한 문장이지만, 
이 문장만 가지고는 그가 한국출신의 전문 킬러인지, 한국인을 전문적으로 죽이는 킬러인지를 알 수 없다.
한국어의 존댓말이나 스페인어의 성관사처럼 언어를 넘어서면 전달할 수 없는 의미들도 많다.
영어를 배울 때 힘든 것 중 하나가 (우리가 해석할 땐 생뚱맞은 의미를 지닌) 관용어들을 외워야 하는 거 아니던가?
이는 같은 언어권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보드리야르 같은 학자가 '불가능한 교환'을 이야기할까?
 
완벽하지 못한 건 둘째고 사실 언어를 믿는 것도 쉽지 않다.
담배 핀 고딩이 다그치는 선생에게 '담배 안 피웠어요'라며 개기는 일은 이제 일상 다반사다.
단 둘이 있을 때 내게 뺨을 때린 여자가 사람들 앞에 가서 주저 앉아 울면서 내가 자신을 때렸다고 무고하는 경우,
김전일이나 코난이 아닌 이상, 이 사실을 말로써 증명할 방법은 거의 없다.
언어는 진실을 밝혀주지 못한다. 오히려 억울함을 늘려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어를 부정할 수 없고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언어를 신뢰할 수 없지만, 언어에 대한 신뢰를 포기할 수도 없다.
언어 없이 어떻게 살겠는가?
당장 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공항에 내려보라.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알게 될 것이다.
 
사실 우리가 언어를 믿기에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저 언어가 있기에 언어를 사용할 뿐이다.
그래서인지 침묵의 카르텔이라는 말처럼, 권력이 강해지고 재산이 쌓여갈 수록 말을 신뢰하지 않게 된다.
있는 놈, 잘난 놈일 수록 말을 가지고 장난칠 생각을 하지, 진실을 찾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은 언어를 넘어서지 못한다.
언어를 넘어서 궁예의 관심법이 되는 순간 철학은 철학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학은 논리학이 아니다. 변증법은 전제에 따라 얼마든지 결과가 다라지는 가변적인 게임일 뿐이다.
철학은 언어를 넘어서지 말아야 하지만 또한 언어를 넘어서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넘어서야 할까?
나의 한계, 나의 고집, 나의 불만, 나의 증오, 나의 질투... 그런 나를 넘어서야 한다. 그리고 나를 넘어 너에게로, 타인에게로 나아가야 한다.
내가 알 수 없는 너에게로 나아가야 한다. 수많은 고통과 불안과 괴로움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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