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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거리 시위 동영상
게시물ID : sewol_268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르마님
추천 : 9
조회수 : 301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5/09 11:46:49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2897702 
 
저 동영상은 전의경까페에 올려져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앞부분에 99년으로 나오지만
제가보기에 1997년 5월 한총련 출범식 때 사진으로 보입니다.
 
이제 40줄에 접어든 저는 당시 시위현장에 자주 나가서..
(막는쪽인지 하는쪽이었는지는 ㅎㅎ)
알수있습니다만,  97년에는 경찰의 최루탄 진압중 조선대 류재을 학우가
죽음을 맞이하여 소위 열사정국으로 정국의 긴장감이 높았지요
게다가 전년의 연대사태를 연대항쟁으로 규정하며 그의 복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김영삼정권을 퇴진하자는  한총련의 결의는 굉장히 드높았습니다.
 
당시 한총련의 메인슬로건은 '백만의 힘으로 김영삼정권 타도'
이런것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김영삼 타도송이라는 노래와 율동도 보급되기도 했었지요..ㅎ
 
아무래도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기 거리를 누비며 학우들과 함께했던 기억이
남아 모든순간순간이 동영상처럼 기억에 새롭습니다.
 
이런상황에서 97년 5월말 한총련 출범식은 서울 한양대학교에서 열리게 됩니다.
보통 한총련 출범식은 지방에서 하면 3만, 서울에서 하면 5만이 모인다는
그야말로 대학생들의 큰 축제이자 투쟁의 장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상상도 안가겠지만서도...ㅎ
 
1992년에 전대협 출범식이 한양대학교에서 열리는데 당시 전국 총학생회 연합으로
가기위한 결의를 모으는 전대협의 마지막 출범식이라 대단한 열기를 내뿜었습니다.
당시 저는 고등학생임에도 한양대에 일이 있어서 구경하고 놀랐던 기억도 있습니다만,
당시 물경 연인원 10만명이 모이는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양대 전부를 뒤덮고 본 출범식에는 그큰 한양대 대운동장이 가득 찼더랬지요.
 
어찌됐던 97년 한양대 총학생회는 92년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며, 10만이 모이는
한총련출범식을 준비하겠다는 결의를 가지고...그때당시 한양대 한생이 1만3천 인가
가물가물거리긴 하는데 5천명이 참가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기도 했지요.
 
그러나 당시 김영삼정권은 이 한총련 출범식을 원천봉쇄로 막습니다.
평화적으로 하겠다는 협상도 있었으나 최종결렬되었고, 학생들은 극한 투쟁모드로
전환합니다.
 
전국에서 모인 당시 추산 2만~3만의 학생들은 한양대 근처의 학교로 흩어져
한양대 진입투쟁을 시작합니다.
각 지역총련별로 흩어져 치열한 투쟁을 벌이는데 이동영상은 건대쪽에서
한양대쪽으로 진격하던 동영상으로 보입니다.
2호선 성수역 부근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동영상을 잘 보시면.... 경찰이 찍은것으로 추정되지만...
무장한 시위대는 전혀 밀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동영상 마지막에는 전경들을 막다른 곳으로 밀어놓고 무장해제를 시킵니다.ㅎㅎ
사실 저런상황에서 막때리고 패고 그러지는 않습니다.
걍 방패랑 방석모 뺏고 대가리 한대때리면서 보내주는거죠.. 물론 다뺏기고 복귀하는
전경들은 돌아가서 무지하게 맞겠지만서도..ㅎ
 
그때상황을 좀 아는 저로서는 저런시위가 곳곳에서 치열하게 벌어졌으나
연행자는 별로 없었고, 특히 건대쪽에서 진출하던 저 동영상의 장면에서는
연행자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반면에 비폭력만 줄곧 외치며 운동권을 외면했던
08년 광우병 시위에서는 맨날 연행자가 줄줄이 생기고
연행되서 갇히고 벌금맞고, 서울시 오세후니 쪽에서는 몇억 손해배상걸고
처참한 고통을 당했던 경우를 봤습니다.
 
아..폭력시위를 선동하는것은 전혀아닙니다..단순 옛날생각이 나서
검색하다가 우연히 동영상을 찾아서 올린겁니다.
저렇게 하자는 것도 아니고..저렇게 될려면 수만이 모일수 있는 집회와...
어리친 프락치 한마리 못들어올정도로 일반학우들도 막아줄수 있는
도덕성과 학우들의  지지가 필요한것이겠지요...
 
저럴수 있는 토대가 든든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그저 먹잇감을 찾아헤메는
보수정권과 언론들에게 빌미만 제공하겠지요...
 
그러나.. 그당시 학생들도 폭력에 환장한 인간들이 아닌이상 저런식으로
방어적 자위수단을 갖추고 하는 시위는 무자비한 전경의 폭력에 맞설수있는
수단이자 최선의 길이었으며, 효율적인 방법이었음을 잘알고 있었음을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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