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현 뉴타운 세입자가 겪은 철거용역의 횡포
서울 북아현동에서 곱창집을 하던 이선형씨(49)는 지난해 11월9일 새벽 장사를 하고 돌아와 잠을 자다가 지인들에게 급한 연락을 받았다. 가게로 달려가 보니 건장한 용역들이 이씨의 곱창집 문을 따고 들어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이씨의 곱창집은 북아현 뉴타운 1-3구역에 있다. 북아현 뉴타운 재개발이 본격 진행되면서 재개발조합은 이씨에게 2400만원의 보상금을 제시했지만 이씨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직원도 없이 아내와 힘들게 일하며 키워놓은 가게를 포기할 수 없었다. 2400만원을 갖고는 갈 곳도 없었다. 조합은 2010년 이씨에게 가게를 비워달라는 명도소송을 제기했다. 2011년 10월 이씨는 명도소송에서 패소했다. 재판부에 부당함을 호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강제 명도집행을 하러 곱창집에 들이닥친 용역들은 이씨 가게에서 집기를 끌어냈다. 이씨는 이때부터 48시간 동안 가게에서 용역들과 맞섰다
용역들은 가게를 지키는 이씨와 가족들에게 온갖 폭력을 휘둘렀다. 오물을 삽으로 퍼 가게 안에 붓거나 외부와의 출입을 차단해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했다. 팔순이 넘은 이씨의 노모도 강제로 가게에서 끌어내려 했다.
정준위 금속노조 SJM지회 수석부위원장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용역폭력 피해사례 보고대회 및 경비업법 개정 토론회'에서 경비용역업체 컨택터스의 폭력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 "대못 찔린 아내 마구 폭행
질질 끌고가도 경찰 방관"
▲ 철거면허로 퇴거 물리력
경비업법상 처벌 피해가
재개발 현장 폭력 더 심각
이틀 후인 11월11일 오전 11시. 이씨와 그를 돕던 사람들은 조합과 영업보상 협의를 하러 법원에 출석하고 아내만 홀로 가게를 지켰다. 한 남자가 "조합에서 왔다. 합의를 하자"며 이씨 아내에게 말을 걸자마자 포클레인이 갑자기 건물 벽을 덮쳤다. 용역들은 "끌어내"라고 소리치며 이씨의 아내를 강제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가게 안에는 포클레인 때문에 부서진 건물 잔해가 순식간에 가득 찼다. 돌무더기에 다리가 낀 이씨의 아내를 용역들은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아내의 다리에는 커다란 대못이 박혔다. 마침 가게를 찾아온 이씨의 처제가 돌무더기에 파묻힌 이씨의 아내를 간신히 구했다.
이씨가 법원에서 돌아왔을 때는 이미 가게가 무너진 뒤였다. 아내는 참혹한 부상을 입었다. 그런데도 경찰들은 길 건너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이씨의 아내는 병원으로 긴급 이송돼 다리에 박힌 대못을 빼고 봉합수술을 했다. 이씨는 아내가 퇴원하자 가게 앞에 천막을 치고 노숙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노숙이 10개월째다.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용역폭력 피해사례 보고대회 및 경비업법 개정 토론회'에서 이씨는 그날의 끔찍한 기억을 털어놓았다.
기업 노사분규 현장의 경비용역 폭력이 사회문제로 등장했지만 사실 철거 현장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이씨는 아직도 철거용역이 남긴 폭력 트라우마를 안고 살지만 조합장이나 철거용역업체에는 아무런 제재도 없다. 폭력을 행사한 용역들 일부만 폭행 혐의로 기소돼 벌금 수십만원을 부과받은 채 법원에 계류 중이다. 이씨는 "폭력사태를 현장에서 지켜보던 경찰은 용역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하지 않았다. 수사도 제대로 되지 않아 지금껏 피해자 진술조차 한 번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은 "재개발 현장의 철거용역업체 폭력은 최근 문제가 된 SJM에 투입된 경비용역업체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말했다.
철거업체들은 계약을 따내기 위한 서비스의 일환으로 세입자나 거주자들을 강제로 퇴거시키는 작업도 한다. 이 사무국장은 "용역들이 주민들을 쫓아내기 위해 이주 전부터 동네에 이주관리사무소를 차리고 돌아다니며 폭력과 협박을 일삼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일부 철거용역은 경비업체가 아닌 철거회사 직원 신분이라는 이유로 경비업법의 적용도 받지 않는다.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는 "경비업 허가도 없이 건물철거 면허만 받은 업체가 세입자 강제퇴거 등의 업무를 수행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밝혔다.
최근 철거업체가 경비업 면허를 가진 회사를 별도 법인으로 만들어 재개발지역에서 이주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철거를 마치면 경비업체를 해산하고, 다른 재개발지역에 투입될 때 또 다른 이름의 경비업체를 만들었다가 해산하는 일을 반복한다. 경비업 허가를 받기 쉽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법인이 결성과 해산을 반복하기 때문에 경비업법으로 처벌하기도 어렵다.
민윤기 경찰청 생활안전과 협력방범계장은 "경찰이 철거 현장에서 충돌을 사전에 예방하고 충돌 발생 시 즉각 대응할 수 있어야 하지만, 철거는 경비업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건설산업기본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조치를 취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 남지원 기자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