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것은 헬스와 함께 시작되었다.
헬스를 시작한지 한달 여, 본디 체질은 설사쟁이. 하루에도 수번을 화장실에 들락거리며 장세척 수준의 배설을 해대던 나였다.
겪어 본 이는 알리라, 설사 후 그 날 하루의 질이 어떻게 떨어져 가는지.
당연히 살은 찔 수 가 없다. 그와 함께 체력은 떨어져 가며 만성 피로에 시달린다.
하지만 제일 고통 스러운 순간은 대중교통으로 이동 중 변의가 느껴지는 순간.
출근 전 아침은 먹을 수가 없다. 아침엔 물만 마셔도 싸기 때문에. 싸고 나와도 또 싸고 싶기 때문에.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다. 나이도 더 이상은 어리지도 젊다고도 말 할 수 없는 나이에 들어섰다.
무엇이라도 해야한다는 위기감에 설사에 좋다는, 건강에 좋다는 건강식품을 몇 만원 짜리 부터 몇 십만원 짜리까지 사먹어 봤다.
일시적으로는 효과를 보았지만 얼마가지 않아 설사는 다시 시작되었다.
대학시절 그 때 역시 설사=나 라는 공식이 성립 될 정도로 심했고 체질을 바꿔보고자 운동을 시작했다.
허나 운동이 이 만성설사를 낫게 해주진 않았다. 그나마 지금 내가 서있을 정도의 체력을 키워줬을 뿐.
그나마 이젠 직장생활을 하면서 운동마저도 할 수 없게 되었고 지금의 체력은 이미 노인의 그것과 같은 수준이 되었다.
그래서 큰 결심 끝에 헬스를 시작했다.
잦은 야근 후에도 할 수 있도록 매일 11시에 PT를 받을 수 곳으로 계약을 했다.
살아야 겠다는 일념으로 하루의 한 시간을 체육관에서 보냈고.... 한 달이 지났다.
그 한달간, 화장실 출입의 빈도수가 하루 평균 2~3번에서 3~4일에 1번 정도로 줄었고 설사는 거의 하지 않았다.
내가 앉았다 일어난 변기에서 진흙같은 그 것이 아닌 단단하고 탐스러워 보이기 까지 하는 그 것을 본 것이 언제 였던가.
헬스의 효과가 이렇게 좋을 줄이야. 한달만에 기적을 만들었다.
더 이상 설사로 인해 배설이 고통스럽지 않았다. 진정한 배설의 쾌락을 느낄 수가 있었다.
너무 기뻤다. 일주일동안 화장실을 안 갔을 때는 남들에게 자랑까지 할 정도로.....
하지만 이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 화장실을 가지 않았던 어느 날, 아랫배는 힘을 주지 않아도 복근으로 느껴질 만큼 단단하게 가득차있었고
변의는 아랫배에서 보내는 설사의 고통스런 신호가 아닌 괄약근으로부터 무언가 큰 놈을 내보내려는 낌새로 나를 찾아왔다.
난 때가 됐다고 생각했고 화장실로 향했다.
기쁜 맘으로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아 인간 기본 욕구 해소의 쾌락을 만끽하려는 순간.
무언가 잘 못 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렇다. 나의 괄약근은 그런 놈을 살아생전 만나 본 적이 없다.
이 일에 관한한 난 문제 없을 거라고 아니, 문제가 될꺼란 생각 조차 해보지 못 했다.
그런데, 어째서 행복해야 할 이 순간이 내 무릎이 뜯어져라 쥐어뜯게 만들만큼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일까.
치질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가끔 변을 보다 기절하는 변을 당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의 고통과 나의 고통이 과연 얼마나 다를까...
찢어 지는 듯한 아래의 고통 속에서 밀어내기를 잠시 멈추었지만 머지않아 그 것은 결국 고통의 연장일 뿐 임을 깨달았다.
뒤로 물릴 수도 없다. 계속 밀어내야 한다. 식은 땀이 이마에 맺히고 와이셔츠 속에 입은 티셔츠가 땀에 조금씩 젖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밀어내기는 계속 되었지만 일주일간 내 안에서 와신상담 해왔던 그 놈은 쉽게 끝을 보여주지 않았다.
녀석이 반 정도 나왔을까, 처음 보단 약해진 고통에 마지막 힘을 내었고 결국 모두 변기 안에 쏟아내기에 성공했다.
참았던 숨을 몰아내쉬며 양손으로 거칠게 얼굴을 문질렀다. 땀에 젖은 축축한 손의 습기가 얼굴에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고통에 예상하지 못 했던 감정이 떠오른다.
사후처리 마저 공포스러워 한동안 망설인다. 역시나 피가 묻어 나온다. 진짜 찢어진건가? 보고도 믿을 수가 없다.
바지를 추스리고 악마같은 그 놈을 내려다 본다. 그리고 곧 알 수 있었다.
내 생애 한번도 만나보지 못 한 강적이다.
헬스를 시작한 후 식습관이 많이 바뀌었다. 많이 먹고 또 틈만 나면 먹었다.
이상하리 만치 변의도 느껴지지 않아 그 고통스럽고 귀찮은 행사 역시 일주일동안 치르지 않았다.
그 일주일 간 나는 내 몸을 숙주로한 이 악마를 비싼 밥 먹여가며 소중히 키우고 있던 것이 었다.
신은 자신이 감당할 만큼의 고난을 주신다고 했거늘 왜 내 괄약근에게는 그런 자비를 배푸시지 않는 것인가.
일종의 배신감 마저 느껴진다.
그렇게 애꿎은 신을 원망하다 어느 덧 일주일이 흘럿고 나는 지금 다시 변의와 함께 공포를 느낀다.
- F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