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초월', '절대' 이러한 단어들이 말하는 것은 곧 설명되어 지지 않는 것인데, 설명되어 지지 않는 것을 "설명되어 지지 않는 것"이라 설명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역설이고 아이러니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역설이기 때문에 틀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초월하는 것이 인간에게 현상되는 방식이 곧 역설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간을 뛰어넘는 다면, 당연히 인간 안에 온전히 인간의 방식으로 표현될 수 없을 것이고, 이것이 표현된다면 그 방식은 역설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진리'라는 말이 그러함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인간이 파악한다고 할 때에, 인간은 무엇을 파악하는 것입니까? 진리를 어떤 참된 이치, 혹은 원리라고 생각하고 진리를 파악한다면, 그것은 이미 진리에 대한 개념을 규정한 상태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즉 진리를 발견한다고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만든 세게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서 보면서 거울에 나타난 상을 실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진리에 대한 어떠한 선행하는 관념이 없을 수 있을 까요? 만약 진리가 스스로 존립되는 어떤X 라면 (이 설명도 역설적입니다만) 진리는 역설적으로 이성에게도 조건지어지지 않아야 하며, 그것은 진리는 선술어적인 세계에서 발견될 수 있음을 이야기 합니다. 술어를 통해 구성되는 논리적 세계 혹은 이성으로 규정되는 과학적 세계를 초월해 있는 곳에 진리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초월이라 함은 하나의 대상을 포함하면서 넘어있다 라는 뜻이지, 전적인 부정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즉, 진리가 전적으로 이성의 산물 혹은 이성으로만 포착되는 것일 수 없다는 것이지, 반-이성 적인 것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이성에게 발견되는 진리는 이성에게만 종속되는 진리일 뿐, 진리의 전부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진리에 대해서 어떻게 탐구해야만 하고,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저는 인간이 자기원인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진리는 그러하다는 점에서 - 인간이 스스로 자기의 존재를 시작하지는 못하지만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스스로에게 근거가 되는 최종적 근거, 즉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정초하는 그러한 것이기에 인간과 진리 사이에는 질적 차이의 심연이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그리고 이것을 통해 우리는 진리는는 인간 측에게는 대타자 (wholly other) -라캉적 의미에서의 대타자가 아니라 키에르케고르, 그로부터 연유하는 바르트의 신학, 그리고 레비나스철학에서 말하는 무한성을 지닌 타자- 일수 밖에 없고 진리가 인간에게 역설적인 것은 당연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가 존재한다면 진리는 구조적으로 인간의 이성에게 증명되어야만 존재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그러하기에 종교가 신앙을 철학과 분리시키고, 결국에는 '신앙은 신앙이고 철학은 철학이다' 라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