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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 과거] 산문 - 식어버린 콩나물국
게시물ID : readers_79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곡두
추천 : 4
조회수 : 43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6/29 17:41:30

그녀의 시선이 사진 한 장에 멈추었다.

아직 어둑한 시간 속에 불을 환히 켜놓은 거실 겸 부엌에 서서 그 한켠에 못에 간당간당하게 매달려 있는 어릴 적의 누군가의 사진. 콩나물국에 담가놨던 수저를 쥐고는 한 동안 멍하니 그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슬쩍 옆으로 시선이 돌아가자 놓인 시곗바늘을 확인하고는 수저를 다시 고춧가루들이 거품에 솟아올라 흩어지는 콩나물국에 넣어 휘저었다. 그 뜨거운 수저를 들어 갈라져서 부르튼 입술 사이에 슬쩍 대며 국물 한 숟가락을 입안으로 흘려 넣는다. 갓 데운 콩나물국의 뜨거움과 고춧가루의 풍성한 매운맛이 입 안에 가득 차버린지라,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이를 살짝 물고 만다. 그리고는 가스 불을 끄면서 대접에 콩나물국을 한 국자 떠서 작은 식탁에 올려놓고는 그 자리에 털푸덕 앉아버리고 만다. 수저를 휘휘 저어 밥과 국이 잘 버무려지게 한 뒤에 아무 말 없이 홀로 그 빈 거실 겸 부엌에서 밥을 떠먹고 있었다. 닫아 놓은 세 개의 문은 저마다의 할 일 탓에 열리지 않았다.


그녀는 조심히 자신이 먹은 대접과 수저를 씻으며 한 숨을 한번 탁 쉬어버린다. 고달픈 일상에 쑤신 어깨를 툭툭 치며 입 안에 맴도는 말을 소리도 없이 독백을 하고 만다. 그러나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고개를 꺾어 물기를 머금은 대접을 털어내고 있다.


여느 때만해도 그냥 지나가 출근을 하고 말겠지만, 콩나물국을 끓이며 보았던 그 어린 아이의 사진에 조심히 방 하나의 문을 열어보고 만다. 어둑한 방에 이불도 제대로 덮지 않은 남자가 널 부러져 잠을 자고 있었다. 그녀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조심히 들어가 아무 말도 없이 이불을 끌어 제대로 덮어주고는 이마를 한번 쓸어준다. 더운 날씨라 이마에 베인 땀이 그녀의 손에 묻어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잠시 그 얼굴을 내려 보다가 방문을 나선다. 방문이 닫히는 것처럼 철컥이는 차가운 소리가 들리고, 그는 조심히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자리에 앉는다. 그녀의 손이 잠시 머문 이마를 슬쩍 짚어보던 그는 그녀의 손가락이 스친 곳만 땀이 닦이자, 손가락을 내려 문지르며 잠시 그 손가락을 바라본다. 슬쩍 열린 문틈 사이로 매운 고춧가루의 향이 코끝을 찌르며 폐부의 공기를 밖으로 내뱉으려는 것을 손으로 입을 막으며 진정시킨다. 그러나 욕실에서 들려오는 샤워기의 물소리에 멍하니 자리에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다시 베개를 베고 누워버린다.


그녀는 그리 길지 않은 머리카락에 물과 거품샴푸를 쭈그려 앉아서 손에 묻히며 머리를 감았다. 일상의 하루에 얼굴을 씻는 듯 마는 듯이 씻어 내리고는 벽에 걸려있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후에 젖어있는 머리카락을 감싸 올렸다. 욕실에서 나온 그녀는 안방의 문을 열고는 아무도 없는 방 안에 불을 키며 화장품이 늘어진 서랍장 앞에 앉는다. 기초화장품 몇 개가 다인 것이지만, 아무런 불만도 없이 스윽슥 얼굴에 바르며 거울을 한번 슬쩍 바라볼 뿐, 거울도 잘 보지 않은 채로,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 늘어져 있는 이불을 차분히 개어 장롱 속에 집어넣고는 빗자루를 들고 한번 방안을 쓸어낸다. 자신을 깨우기 위해 켜졌던 TV를 한번 바라보고는 옷걸이에 걸려 있던 옷가지를 갈아입기 시작한다. 어깨에 붙어 있는 파스 한 장이 옷에 말려서 떨어지자, 한숨을 뱉으며 TV가 깔고 있는 서랍장을 하나 열어 파스를 꺼내어 그 얇은 비닐을 벗기기도 힘든 것처럼 굳은살이 박혀있는 손과 침침해지는 눈으로 한동안 씨름을 한 뒤에야 겨우 떼어내고는 잘 올려 지지도 않는 팔로 주름살이 가득한 얼굴이 더욱 자글자글해지도록 인상을 쓰며 팔을 겨우 올려 어깨에 파스를 붙이고는 이마에 맺힌 땀을 스윽하고 닦아낸다. 그에 거실에 켜져 있는 불과 그의 방문이 약간 닫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천천히 일어나 그 방문을 열어 누워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안쓰러운 눈빛과 작게 얼굴에 걸린 미소를 두고는 방문을 닫는다.


그는 돌렸던 몸을 그제야 돌리며 닫혀진 방문을 한번 바라보고 만다. 입 안에 가득 바람을 집어넣고는 일어난 그는 가방을 슬쩍 바라본다. 책상에 널 부러져 있는 참고서들이 눈에 들어오자 머리를 손으로 몇 번 헝클어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머지않아 거실에 굽이 달린 신발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며 커다란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금방 닫히는 소리. 몇 번 철컥이는 소리. 그 소리들이 집 안을 메우고 사라지자, 그는 몸을 완전히 일으키며 참고서를 뒤적였다. 메리야스에 늘 그렇듯 학교에서 입는 체육복 반바지를 입고는 방문을 밀며 거실로 나왔다. 깜깜해진 거실의 불을 키자, 욕실 옆에 매달려 있는 달력을 바라본다. 토요일. 자신은 학교에 가지 않은 토요일이었지만, 아침 일찍 집을 나선 그녀에 대한 불만이 눈을 잔뜩 찡그리게 만든다. 그리고 그녀가 만든 콩나물국이 담긴 냄비를 열자, 아직 식지 않은 열기가 가득 피어올라 그의 얼굴을 덮쳤다. 그는 잠시 얼굴을 찌푸리며 냄비뚜껑을 닫고는 냉장고 문을 열어젖힌다. 시원한 냉기가 가뜩이나 더운 몸에 쏟아지자, 잠시 눈을 감고 편한 얼굴로 냉기를 감상하며 서 있던 그는 냉장고에 있는 빵 하나와 우유를 꺼내어 식탁에 내려놓는다. 냄비는 살짝 열려 콩나물국 냄새를 피워대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빵을 담고 있는 비닐을 이로 물고는 찢어낸다. 빵을 한번 물어내자, 그 속에 검은 단팥들이 터지며 흘러내릴 것처럼 빵에 걸쳐졌다. 식탁에 빵을 내려놓은 그가 천천히 우유팩을 열려고 할 즈음, 급하게 콘크리트 바닥을 밟는 구두 굽 소리가 요란히 들려오고 철컥이는 소리와 함께 철문이 열리었다. 거실에 켜진 불에 동공이 살짝 커진 그녀는 우유를 들다 말고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그를 보고는 눈동자가 가늘어지며 구두를 벗어놓는다.


“동진이 너, 밥 먹으랬지! 토요일이라고 집에서만 뒹굴지 말고.. ”


그는 어깨를 슬쩍 움츠리면서도 입안에 우유를 한가득 털어놓는다. 그녀는 그런 그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푸욱 쉬고는 챙겨야할 물건을 챙기고는 다시 구두를 발에 신는다.


“오늘 좀 늦을거니까. 밥 먹어. 알았지?”

“토요일인데? ”


그의 작은 불만에 그녀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보이며 고개를 살짝 꺾으며 그를 바라본다. 그는 결국 체념하고는 빵을 입에 한 가득 베여 물어버린다.


“밥 먹어. 콩나물국 해놨는데, 왜 안 먹니. 꼭 먹어~ ”


철컥철컥. 쇠들이 부딪히며 문이 닫히고, 구두 굽 소리가 빠르게 멀어져 갔다. 그는 조심스럽게 콩나물국이 담긴 냄비를 바라보다가, 입술을 부딪치며 숨을 뱉어내고는 먹어치운 빵 비닐과 우유팩을 접어서는 쓰레기통에 구겨 넣어버린다. 방문을 열고는 잠시 멈칫하던 그는 곧이어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 가버린다. 냄비 가득 담겼던 열기는 살짝 열린 틈 사이로 빠져 나가 비릿한 콩나물 냄새를 담으며 식어가고 있었다.


늘어진 어깨. 가뜩이나 하루에 한번 깎지 않으면 돋아나는 수염이 거칠게 턱 선을 타고 거뭇거뭇하게 올라와있다. 이제 겨우 힘든 고비를 넘기고 잡은 일자리였지만, 버스 정류장 너머로 보이는 정형외과 간판을 보고는 다시 쳐지는 어깨를 어디다가 둘 곳이 없었다.


그는 천천히 버스정류장 벤치에서 일어나 가지고 온 짐 몇 개를 지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크지 않은 병원이어서 그런지 병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704호라고 적힌 병실을 찾아 들어서자, 어제 가져다놓은 푸른색의 보드라운 이불이 있었고, 그녀는 자리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었다.


“일어나서 TV 봐도 되요? 아프잖아. 누워 있으라니까. ”


그녀는 안 그래도 늘어난 주름에 선 하나를 더 그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한숨을 쉬고는 집에서 챙겨온 것들을 정리하느라 뒤를 보였다.


“아들. 집에 가서 운거 아니지? 울지마. 우리 아들 울면 엄마 더 아프다. ”


TV소리에 묻힐 작은 소리가 그의 귀에 들어왔지만, 그는 못 들은 것처럼 더욱 서둘러 짐을 정리하였다. 고개를 들며 그녀에게 못 들었다는 표시를 하자, 그녀는 그저 한껏 미소로 자신을 바라보다가, TV로 시선을 돌렸다.


“아. 화장실... ”


그는 괜히 화장실에 간다는 말을 던지고는 병실에서 나와 화장실에 들어가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겨우 터져 나올 것 같은 눈물을 막았다. 세면대에서 터져 나오는 찬 물이 대신 울어주는 것처럼 한 동안 그 자리에서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못난 아들은 그때에 그녀가 챙겨준 콩나물국이 갑자기 떠올라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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