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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폭력과 남녀차별에 대한 글을 통해 본 토론의 자세
게시물ID : freeboard_7988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누굴까?
추천 : 1
조회수 : 36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1/15 14:57:49
베스트 오브 베스트 게시판에서 아래 링크된 글을 보고 느끼는 바가 있었습니다.

'수직폭력이 수평폭력으로 이어지면 안됩니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193409&s_no=193409&page=3

  위 글을 나름대로 요약하면 '기득권을 둘러싼 수직 폭력에 의해 같은 계층 안에서 수평 폭력이 발생하고 있으며, 남녀 분쟁도 많은 부분이 여기서 기인하므로, 남녀차별 해소를 위해서는 계급간의 수직적 구조가 먼저 개선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대해 댓글로 다른 회원분이 '남녀차별은 글쓴이의 견해보다 더욱 독립적인 현상으로, 글쓴이와 같은 시각은 자칫 실존하는 남녀차별을 계급 갈등의 부수적인 문제로 우선순위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오판하게 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을 펼쳐, 글쓴이와 댓글 작성자를 비롯한 많은 회원분이 댓글로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그 주장들과 토론의 경과는 링크된 글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토론을 보면서 지나치게 피상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많은 주장과 의견이 나왔고, 또 글쓴이는 여러 댓글을 보고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 주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서 어떠한 '의견 교환'이 정말로 일어났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말하려고만 하고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거나, 미디어의 선별 효과라거나 하는 문제도 있겠지만, 그 밖에도 여러 모로 생각할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 문제점들이 비단 이 글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온, 오프라인의 토론에서 흔히 보이는 문제이며, 스스로 경계하는 의미도 담아서 졸문이나마 몇 자 적어 보고자 합니다.

  우선 눈에 띈 점은 굉장히 일반적이고 진부한 문제인데, 바로 논의가 상당히 감각적이라는 겁니다. 각자의 위치에서의 일상 경험, 즉 '미시적' 시각으로부터 얻은 이야기들이 너무 많습니다. 토론장에서 어느 정도 공통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문제 제기가 나올 때는 보다 풍부한 사례를 위해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확장하는 것도 좋겠습니다만, 대립되는 주장 가운데 어느 쪽에 더욱 설득력이 있는지를 판별하려면 보다 거시적이고 객관적인(혹은 그러고자 하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개인이 생생하게 접하는 현실은 사회의 단면 일부일 수밖에 없고, 여기서 비롯되는 '인상'을 개입시키면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과의 토론은 끝없이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이러한 방식의 토론은 '결과를 정해 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끝없는 혼잣말이 되고 맙니다. 어떠한 근거에 의해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척하면서 사실은 자신의 개인적 인상을 통해 내린 결론을 지지하는 듯한 근거들만을 계속 늘어놓는 거지요. 상대방의 근거의 결함은 짚어내지만 자신이 대는 논거에도 같은 결함이 있음은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선입견에 반하는 근거들은 다양한 이유를 붙여 폐기하거나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하게 됩니다. 이게 잘 알려진,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실은 귀를 막고 외치는 사람들만 가득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물론 선입견은 다양한 사람과 사건을 경험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지만, 객관적 토론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항상 조심하고 두려워해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 점에 관해 조심해야 할 단어로 저는 '프레임'을 꼽고자 합니다. 프레임은 물론 언론과 대중의 관계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고 매우 강력한 도구입니다. 여러 가지 여론과 시각들이 타자에 의해 선점된 프레임에 의해 유도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는 의심할 필요가 있지요. 그런데 그 중에는 '프레임이라는 이름의 프레임' 또한 존재합니다. 특히 남녀평등과 같이 정치적 올바름이 관련된 사안에서 많이 보이는 것 같은데,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모든 의견을 그런 프레임, 혹은 그 프레임에 조종된 몰아가기(그리고 스스로도 그렇게 믿기) 쉽습니다. 원글에서 언급된 '여자 혐오 현상'을 예로 들어 보지요. 어떤 부분은 사실이 아니라거나 혹은 반대로 실제 현실을 반영한다는 방향의 모든 주장에 대해 '남성우월주의와 기득권, 남성 위주의 사회에 의해 형성된 프레임의 결과'라고, 혹은 반대로 비합리적인 여성 혐오가 실존한다는 주장이나 기득권이 침해받은 반동으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방향의 모든 주장을 '여혐이라는 프레임을 씌워서 여자들과 자칭 페미니스트들이 앞뒤 안 가리고 세몰이를 하게 만들려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주장은 틀릴 수가 없습니다. 어떤 근거도 이 주장에 대한 반박이 될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반증이 불가능한 주장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두 번째 문제점으로는 통계와 자료가 다소 안이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혹시나 해서 씁니다만 저는 댓글에서 통계를 통해 낸 결론이 틀렸다고 단언하는 게 아닙니다). 통계는 우리에게 대표값, 즉 통계가 다루고 있는 현상을 하나 또는 몇 개로 요약한 숫자를 주지만, 그 숫자가 실제로 무엇을 대표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고찰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특정 직업군에서의 남녀 성비 역전에 대한 통계'라거나 '대한민국 남녀 고용률 및 임금에 대한 통계'에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뒷받침하는 듯이 보이는 숫자를 찾는 건 어렵지 않을 테지만, 그 숫자에 가려 보이지 않는 많은 질문들이 있습니다.

  글에서 제기된 성별의 차이에 따른 통계만 해도 그렇습니다. 현상의 원인이 신체적 차이에 의한 것인가? 혹은 사회화로 인해 자발적으로 사고가 형성된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시각 등의 외압에 의한 것인가? 또는 제도나 시스템이 차별을 만드는가? 이 네 가지는 분명한 차이가 있고 문제 해소의 가능성과 방법을 다 달리 생각해야 합니다. 남녀 고용과 임금 문제도 남녀간 직업의 분포 차이와 같은 업종, 직급에서의 대우의 차이, 직업 선택시의 자발적 선호의 문제와 비자발적인 기회의 문제가 다 다르고, 또 여성의 경제 참여 방식이 변화하고 있는 시기에 대한 분석일 경우 하위 직급과 상위 직급에서의 분포, 그리고 세대에 대한 분포 차이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사람의 한계가 있으니 사회 현상의 모든 면을 고려하는 건 불가능하고, 바로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통계가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최소한 통계를 인용할 때 여기에 대한 회의적인 성찰은 필요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이 통계가 정말로 자신의 결론을 지지하고 있는지, 아니면 자신의 주장대로라면 이 통계의 숫자가 나오는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후자를 다시 말하면 자신의 주장이 틀렸더라도 이러한 통계가 나올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위에도 적었지만 근거로부터 결론이 도출되는 것인지 결론을 지지하는 듯한 근거를 수집하는 것인지는 토론 자체가 가능한가 불가능한가를 결정하는 문제가 됩니다.

  세 번째는 문제점이라기보다는 감상이자 의견입니다. 링크된 글을 보신 분은 제가 첫 문단에 요약한 것과는 어조가 좀 다르다는 것을 아셨을 것 같은데, 원글과 그 댓글의 논의에는 상당히 단정적으로 '그것이 아니고 이것이 옳다'라는 식의 문장이 많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미묘하고 다각적인 화제에 대해 어느 누가 칼로 자른 듯이 경계를 그을 수 있겠습니까? 대체로 누구나 인정하는 의견이나 사회 전체에서 배쳑되어야 할 주장은 있겠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그렇게 한 사람이 모두 옳고 다른 사람이 모두 틀리기는 힘든 일입니다. 어떤 주장을 보면 대체로 탁월한 통찰이 가해지는 부분이 있고, 또 그 쪽을 보느라 간과하는 부분이나 자신의 가치 기준으로는 덜 중요해 보이는 부분이 있게 마련입니다. 의견을 나눔에 있어서 이렇게 자신이 보지 못했던 시각을 발견하고, 또 상대방이 생각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보완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실제로 토론하는 장면을 보면 다들 자기 주장의 장점을 가지고 상대 주장의 단점을 누르려고만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이야기가 진척되지 않고 계속 빙빙 돌게 되지요.

  이렇게 세 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실 토론 자체에 대해 말하라고 하면 누구나 말할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만, 세 살 먹은 아이도 알지만 여든 살 먹은 노인도 실천하기 힘든 일이라는 게 있지요. 오늘의 유머에 올라온 글들을 살펴보다가 이 점이 새삼 실감되어 떠오르는 대로 장황하게 적고 말았습니다. 몇 분이나 정말 읽어 주셨을지는 모르겠지만 : ) 길고 중구난방인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P.S. 글을 다시 한 번 읽다가 문득 떠올라서 노파심에서 첨언합니다만, 이 글은 링크된 원글에 대해 양비론적 태도를 취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조건을 통과 못 할 거면 입 다물고 있으라'는 식으로 소수 의견을 억압하려는 의도도 없습니다. 다만 조금만 더 성숙하고 신중한 토론 문화가 형성되는 데 보탬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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