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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그를 죽이고 싶습니다...
게시물ID : bestofbest_79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돔국
추천 : 166
조회수 : 3129회
댓글수 : 21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04/03/02 18:44:30
원본글 작성시간 : 2004/03/02 18:44:30
내 마음에서요...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중3 흔들리는 버스안이였습니다.. 

회색의 민소매 티를 입은 그는 

커다란 박스를 안고 내 앞에 와 섰습니다. 

무거워 보이던 박스를 끌어안고 

위태롭게 서있던 그를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다른 사람일이라면 곧 죽어도 신경 안 쓰던 내가 

처음 보는 땀 흘리는 남자에게 

친절하게 해주지 못해 안달 나 있다니... 



결국, 그 박스 안에 있던 그의 써클지를 한권 받아들고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열여섯 까만 단발의 소녀와 

스물의 해맑은 남자는 

서로의 집이 모두 종점이라 우기며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국, 둘 모두의 집을 지나쳤다는 것과 

그 서클지안에 그 남자의 연락처가 있다는 것과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가 아프다는 것.. 

그리고, 보고 싶은 영화가.. 똑같다는 것도... 



그로부터 우리는 반년동안을 거의 매일 만났고,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가끔 놀이공원도 가고.. 

그냥 좋은 오빠라고 생각한다고... 

그도 나를 좋은 동생이라 생각한다 하며 

그 계절 내내 서로 손을 잡고, 걸었습니다. 


그러다, 그 여름이 가고, 겨울이 왔을 즈음 

나라에서 부른다며 그는 훌쩍, 그 손을 놓아버렸습니다. 

그렇게 헤어지는 거야 어쩔 수 없는 탓이려니 해도 

그가 제대를 하고 왔을 땐 

나는 그의 곁에 오래오래 머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오면서 

집안에 유일한 희망이었던 그는, 죽도록 공부만 했다고 했습니다. 

그 덕에 머리 나쁜 나는 절대 갈 수 없다고 말하는, 그런 대학에 

그는 다니고 있었습니다. 

당시 내가 반에서 30등 안팎을 했으니, 인문계조차 못갈 판 이였으니... 

그래도 나는 그의 곁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소녀티를 벗어내고, 그에게 여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보고 싶은 만큼.. 딱 그만큼 

나도 죽도록 공부만 했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졸업하던 그 겨울.. “당신은 그와 CC가될 수 있습니다” 

라고 적힌 합격통지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참을 행복했습니다. 

너무나 행복해서.. 사람이 이렇게 두근거릴 수도 있구나 

사람이 이렇게 멍청하게 행복할 수도 있구나 싶어서... 

손잡을 수 있는 것이.. 그를 안을 수 있는 것이 

너무나 감사해서... 


주말이면 그의 아버지와 함께 교외에 낚시를 하러갔고 

여름이면 그와 둘이 손을 잡고 

밤바다를 보며, 미래를 맹세했습니다. 

그 누가 사귀자고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사랑한다고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우린, 충분히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랑이란 건.. 뜨겁지도, 열정적이고 않았지만 

조용히 나를 꿈꾸게 했습니다.. 


그렇게 행복한지 3년. 

어느덧 우리 둘 모두, 사회인이 되기 위해 

취업을 신경써야할 나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만 믿으라며 

그 겨울내내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입사증을 불쑥 내밀며, 삼년만 같이 고생하고, 결혼하잡니다. 자기랑.... 

근사한 프로포즈도.. 사랑의 고백도 아니였지만 

붕어빵을 열심히 먹으며 

나에게 툭 건넨 그 한마디때문에 

난 그 길거리에서 

엉엉 울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니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아름다웠는지요...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그렇게 그가 말한 삼년을 위해 

나도 취직을 했고, 

우린 참 무던히도 악착같았습니다. 

점점 몸이 안좋아지시는 아버님때문에 

그는 밤내내 병원에서 간호를 하고 

병원 밥을 먹으며 출근하면서도, 

악착같이 버티고, 돈을 모으고, 일을 했습니다. 


이제, 내년이면 우리 결혼하겠다. 

적금 통장을 보며 히죽 웃는 그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꼬옥 안아주었더니 

사람많은데서 뭐하는 짓이나며 화를 내던 그.. 

그 모습이 더 사랑스러워 더 꼬옥 끌어안던 나.. 

살아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 하루하루 였는지요... 


그날도, 여느날처럼 병원서 밤을 꼬박세고 

잠이 와, 도저히 차를 몰수가 없노라며.. 지하철로 출근하겠다며.. 

나에게 전화를 해왔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며, 지금 밥가져 가니까 먹구 가랬더니 

지각한다며 안된답니다. 

회사에 있던 친구에게 전화했노라고 괜찮다고 했더니, 결국 

세그릇을 훌쩍 다 비웁니다. 배 안고프다 그래놓고... 

그렇게 귀여운 그를 보고서야 마음이 편해져, 나도 그도... 뒤늦게 

출근하던 그 날... 


나는 몰랐습니다. 그날의 게으름이 얼마나 사치였는지.... 



...뉴스에서 지하철 사고가 났답니다. 

그가 나간지 얼마 안됐는데.... 

사고가 났답니다. 전화를 걸었더니 

그가 받질 않습니다. 

이상하게 걱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럴리 없을 테니까 

저런 사고야, 뉴스에서 나는거지, 그는 분명 

꾸벅꾸벅 존다고 가방에 있던 전화벨 소리를 못듣는걸테니.. 



결국, 화면에 나오던 다 그을린 그의 지갑을 보며... 나는 정신을 놓았습니다.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니 

그의 시신을 확인하랍니다. 아버님은 정신이 온전치 못해 할 수 없으니... 

감사원의 손을 잡고서.. 그의 시신을 확인하러 갑니다. 

나는 왠지 이게 꿈인거 같아.. 그냥 소풍 나온 아이처럼 

그렇게 감사원의 손을 잡고 들어간 곳엔 

검은색 숯이 한덩어리 있습니다.. 

그가 맞냐고 묻습니다. 


나는 화를 내며, 그 바닥에 앉아 엉엉 울었습니다... 

그를 데려오라고.... 그의 시신을 가져오라고.. 

이 까만 숯덩이가.. 어떻게 그 사람이냐고.. 

누굴 바보로아냐고..... 



결국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아버님도.. 그의 곁으로 가셨습니다..... 

친인척조차 없이, 두 사람분의 장례를 치루며 

나는 스스로 보상금 합의자 명단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장례비용으로 받은 200만원으로 

나는 그의 시신을 불태웠습니다. 

그리고, 대구를 떠나 살까 했지만 

이상하게 나는 아직도 그 곳입니다. 


같이 살자던 아파트에 

보름 전 짐을 풀었습니다. 

집에선 선을 보랍니다. 이런 나를 두고... 선을 보랍니다. 

같이 키우자던 그의 강아지만 덜렁안고 

아직도 울고있는 나를 두고.... 선을 보랍니다.... 이런 나를 두고.. 



... 이럴줄 알았으면 조금만 사랑할걸 그랬습니다. 

그 아침에 굶고 가도, 졸고 가도 

그냥 그려려니 생각할만큼만... 딱 그만큼만 사랑할걸 그랬습니다. 

그래도 이젠 죄책감에서 많이 벗어났습니다. 

죽을 운명이야 어쩔 수 없는 거라고.. 

그래도 그의 마지막 밥상은 내가 차려주었노라고... 

.. 신께서 그리 하라고, 그를 나에게 보냈노라고... 




이제 2월이 다 지나갑니다. 

문득 확인한 그의 메일함엔 

내가 보낸 메일들만 가득합니다. 

그 속에서, 이벤트를 한다는 메일을 봤습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을 위해, 발렌타인데이 이벤트를 한답니다. 


초콜렛 모양 만들어 준다며, 

온 부엌을 어지럽히던 그때가 떠올라 물끄러미 웃다가, 

갑자기 그와 나의 이야기가 하고싶어져 

이렇게 긴글을 적었습니다. 

그냥.. 이젠 그 누구에게라도 말하고 싶어서... 


부럽지 않냐고.. 

당신들, 이렇게 사랑할 수 있냐고.. 부럽지 않냐고.. 

자랑하고 싶어서.. 




이제, 봄입니다. 

얼마전엔 겨울비인지, 봄비인지 모를 비도 내렸으니, 

이제 곧 봄이옵니다. 봄이오면, 

좀 더 치열하게 그를 사랑하고 싶습니다. 

아프니, 이젠 잊으라며 다들 걱정만 하지만, 

아니요.. 사는 힘이 되네요. 

슬퍼도.... 살아가는 이유가.. 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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