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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의한 이민족 동화 그리고 기자조선 전설
게시물ID : history_79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푸쉬킨
추천 : 15
조회수 : 1196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3/03/10 23:43:45

기자조선 자체는 사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논란이라기 보다는

근대적 관점에서 역사가 민족의 문제로 비화되면서

민족의 자존심 문제로 지나치게 과민 반응한 결과가 크다고 봅니다.

 

지구상의 문명은 유사이래 중심부 문명과 주변부 문명이 상호 교류와

동화를 거치며 공존해온 역사입니다.

 

인적, 물적자원으로 한계로 인해 모든 지역의 문명이 크고 위대할 수가 없으며

또 크고 위대한 문명이 현대에 까지 지속되는 것도 아니죠

 

그리스,로마를 문명의 영향과 뿌리를 바탕으로 성장한 유럽이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바탕으로 성장한 중동이나

중국 문명을 바탕으로 성장한 동아시아나

결국 물리적 생산력과 인구가 뒷 받침되는 지역에서

주변부로 문화가 파급되며 성장한 사례들입니다. 

 

다만 특수성이라 한다면 여타 다른 주요 문명지역의 국가는

교체와 이동을 거치며 밑바탕이 된 문명의 실체가 현존하지 않지만

지리적으로 동아시아 생산지대의 80% 인구의 90이상을 차지한

중국문명의 경우 그 자체가 문명이자 하나의 국가로 지금까지 내려온다는 점에서

나아가 극단적으로 그 중국문명 자체가 강한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배타적 결속을 진행함으로 인해

해당 문명의 수혜와 역사적 동화에 대해 거부감이 큰게 원인이 아닌가 합니다.

 

한국의 기자조선 문제는

사실 문제될 것이 전혀없는 어찌보면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에 불과합니다.

 

베트남의 경우 시조로 추앙되면 지금도 한국의 개천절 처럼 제사를 지나는

훙왕은 그 자체가 중국 염제신농씨의 후손이 남쪽을 순행하다 현지여인과 결혼하여

국가가 시작되었다 전해지며

 

일본의 경우 일본 천황가의 시조는 중국 오나라 태백의 후손 동쪽으로 와서 건국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오나라 태백이라는 인물 자체가 주나라 왕실 인물로 주문왕의 백부입니다.

실제 이런 전설은 왜와 일본이 중국과 통교를 하며 일본을 소개하며 사용한 수사이며

일본에 성리학이 급격히 전해지던 에도시기 일본의 유학자들은 이런 건국설화를 바탕으로

일본은 주왕실의 혈통임으로 중국은 오랑케가 장악하고 조선은 개와 양같은 여진에 굴복했으니

스스로 마지막남은 소중화라는 이론이 유행한 적도 있었죠.

 

한반도에서 중국 은나라의 현자로 알려진 기자가 조선의 시조라 여기는 전설이

탄생한게 전혀 이상한 내용이 아닌 것입니다.

 

더불어 해당 내용의 첫 출전이 전한 상서대전임을 감안하면

한사군의 설치와 더불어 현지화 과정에서

중국문명의 급격한 유포와 함께 동화의 과정에서

이런 신화가 형성되었을 것이 미뤄짐작 가능합니다.

중국문명에 대한 동화가 사상적으로 자리잡은

성리학체제의 조선에서 더욱 심화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고요

 

이는 사실 역사적 사실의 문제로 실존이나 아니냐의 논쟁이 아니라

당대의 중국문명을 바라보는 주변국의 관점이 어떤것이었는가를

볼수 있는 문화적 파급력이란 관점에서 접근하는게 정상적인 논조가 아닌가합니다.

 

중국문명이 가지는 동아시아의 위치는 로마,그리스, 중동 문명과

지난 5천년간 해당 문명이 자리잡은 지리적 영역이나

물리적 생산력이나 인구부양력 면에서 차원을 달리하는

일방적인 체제였으니 말이죠

 

로마가 망한 이후 수많은 유럽의 주변부 국가들은

스스로 로마문명의 수혜자를 자칭하였습니다

 

얼마전 영화로 본 영국의 아서왕이 서로마 마지막 황제가

브리튼에 피신한 것이라는 지금에도 이어지는 영화적 상상력도

그러하거니와 해당 전설 자체가 로마를 모티브로 중세 기사도 문학이

가미된 전설임이 증명하죠

 

가장 변방의 러시아의 경우 가장 오랜 역사서인

원초연대기에서 노르만 기원설이라 하여 비잔틴과의 교역과정에서

바랴크(바이킹의 러시시아식 명칭)인들이 오가며

이들이 공후들이 국가를 만든 류릭왕조가 기원이라 여기는 관념을 기초로

끝을 비잔틴 황제의 딸을 류릭왕조 가문이 혼인함으로 내용을 담아

자신들의 정체성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유럽에서 아서왕전설이나 노르만 기원설이 대해 그 실존 여부에 대한 것이

지금도 논쟁이 된다는 것을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

 

물론 러시아의 경우 소비에트의 결성이 이후

국가 정체성을 설명하며 노르만 기원설이 아닌 슬라브기원설이라 하여

공산주의적 국가발전과정에 대한 이론규명과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국가기원의 방식으로 이것을 논점으로 삼은 바는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유럽의 최변방에 있는 러시아, 또 신생 소비에트 체제가 가진

당시 국가정체성의 고민과 문화적 후진성에 대한 컴플렉스를 반증한 사례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난 5천년 유사이래 주변부 국가는 중심부 문명과의 친밀성을 강조하며

내부적으로 주변부의 지역공동체에서 정치적, 문화적 우월함을 만들었고

외부적으로 중심부와의 교류과정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구축했습니다

 

기자조선 전설은 그런 주변부 국가가 지난날 가졌던

동화와 교류의 노력을 보여준다고 봅니다.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 역사나 인터넷 커뮤니티 신경쓰기도 어렵네요

오랜만에 온김에 그냥 가긴 뭐하고 해서 대충 잡설하나 그냥 써보았습니다.

읽어주신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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