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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사랑은 일상을 지배하는 정치, 감정은 관계의 산물
게시물ID : readers_79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릴케
추천 : 0
조회수 : 34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6/29 21:20:31
랑은 왜 아픈가…에바 일루즈 지음·김희상 옮김 | 돌베개 | 556쪽 | 3만원

연인들이 많이 주고받는 말 중 하나는 “사랑해” “아니, 내가 더 사랑해”다. 그러나 사랑이 끝나면 당사자는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누가 찼고 누가 차였느냐는 ‘사실’에 집착한다. 사랑할 때와는 반대로, 덜 사랑한 사람이 ‘승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랑(이성애)은 구조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주형(鑄型)이고 개인에겐 자아실현과 승인, 사회적 지위를 둘러싼 권력투쟁의 장이다. ‘밀당’은 사랑의 마키아벨리즘, 권모술수다. 

사랑은 끝나기도 하고 끝내기도 한다. 끝내짐을 당한 사람은 ‘버려졌다’고 간주된다. 사람마다 강도는 다르지만 여진이 몰려온다. 저주와 애원, 호소, 술 먹고 새벽에 전화하기는 기본. 자살이나 살인도 드문 일이 아니다. 운동이나 일에 집중하는 ‘이상한’ 사람도 있지만 ‘버려졌는데’ 갑자기 러닝머신에 오를 수는 없다. 

이러한 현상은 사람과 감정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버려졌든 버렸든, 이동한 것은 감정이지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생명‘체’이기도 하지만 영혼을 가진 온전한 우주이기 때문에 처분 가능한 실체가 아니다. 반면 감정은 이동, 양도, 처리, 치환, 매매 가능한 물질이다. 상대가 떠났어도 나는 존재한다. 거듭 말하지만, 버려진 것은 사람이 아니라 감정이다. <감정 자본주의>로 깊은 인상을 남기며 감정(emotion) 담론의 일가를 이룬 에바 일루즈의 최근작 <사랑은 왜 아픈가>는 사랑의 상처를 자본의 코드로 다룬다. 사랑은 현대인의 인생과 일상을 지배하는 정치일 뿐 아니라 가족, 국가, 사회 구성의 핵심 장치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제까지 사랑은 성폭력, 성매매, 낙태처럼 성별 이슈(‘사소한 여성문제’)로 인식되어 가장 사유되지 않는 ‘버려진’ 학문이었다. 

이는 남성중심적 지식 체계의 결과다. “남자는 일, 여자는 사랑”이라는 핵가족을 근간으로 한 근대 자본주의의 성별 분업 때문에 남성은 이 문제로 덜 고통스럽다. 사랑이 아니더라도 인간관계와 감정의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학문적·문화적·정치적 이슈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한가한 문제로 취급된다. 

이 책의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가 사랑에서 느끼는 불행의 제도적 원인은 무엇인가? 응답 없는 사랑과 버림받음의 경험은 다른 형태의 사회적 굴욕 못지않게 당사자의 인생을 뒤흔드는 결정적 타격이다(38쪽). 사랑은 나의 확장, 몸의 혼재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통증을 느끼게 된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다. 

<사랑은 왜 아픈가>는 기존 사회학이 인간의 집단적 문제와 소외에 대한 관심에 비해 개인의 심적 고통을 소홀히 다뤄왔음을 반성하는 ‘사명감’의 산물이다. 이 책은 사랑의 고통에 대해 일정한 ‘답’을 준다. 진통제도 만병통치약도 위약도 아니지만 고통을 덜어준다는 사실만큼은 보장할 수 있다. 

고통의 구조적 이유와 그것이 형성된 경로를 알면 덜 아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나의 감정이 형성된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다. 특히 그것이 사랑처럼 치열한 정치적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동안 신비화되었던 문제가 특정한 시공간에서의 역사적 산물임에 ‘불과하다’는 인식은 진통의 혁명이다. 내 문제, 내 잘못, 내 못남이 원인이 아니다. 동시에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해방감!

낭만적 사랑보다 낭만적 고통, 이 말이 중요하다. <사랑은 왜 아픈가>는 사랑에 대한 신화가 고통의 주범이라고 본다. 사랑은 뇌의 오작동, 호르몬 이상 분비라는 식의 냉소나 운명, 천생연분, 본능, 첫눈에 반함….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이때 고통은 사랑의 필연적 산물로 낭만화된다. 사랑은 인간관계의 일종일 뿐, 특별히 더 아플 이유는 없다. 사랑의 아픔은 만들어진 것이다. 비과학적 통념은 이를 부채질한다. 

그래서 이 책은 사랑의 역사와 지식에 집중하고 놀랄 만큼 성실하게 추적한다. 마르크스와 헤겔은 물론 코젤렉, 센, 초도로우, <섹스 앤 더 시티>, 앤젤리나 졸리까지. 556쪽이 부담스럽지 않고 흥미진진하다. 우리가 아는 웬만한 서양 지식인, 소설, 영화, 인터넷 고민 상담까지 다 나온다. 지식 생산 과정의 본질이 노동이라는 점에서 이 책과 저자는 그 모범이다. 

인간의 의지는 어떤 구조를 가졌으며 욕구는 어떻게 촉발되는가? 핵심은 이것이다. 사랑의 감정은 사회관계로 형성되며, 감정은 사회적 궤도 안에서 순환한다. 감정이 빚어내는 마법의 주인은 바로 사회이며 감정은 제도의 압축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결혼 시장의 형성이 어떻게 사랑을 계급 문제로 만들었는지(1장), 현대성의 상징인 선택과 자유가 역설적으로 어떻게 관계 공포증과 관계 무능력자를 생산하는지(2장, 157쪽), 개인주의가 자존감과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변질’되어 얼마나 우리의 일상을 고달프게 하는지, 그리고 사랑(받음)이 어떻게 그 증명처럼 보이게 하는지(3장, 219쪽), 인터넷 같은 자본주의 기술이 어떻게 사랑의 지식화, 합리적 관리, 시각화, 계량화, 경쟁주의 등을 통과해 사랑을 규격화하는지(4장, 355쪽), 소비문화가 만든 과도한 욕망이 상상력을 제조하고 이 ‘망상’이 어떻게 사랑을 실망으로 주저앉히는지를 정교하게 보여준다(5장). 

특히 상상력! 나를 포함한 많은 여성들이 허구적 감정 상상(fictional emotional imagination)으로 행복해하고 현실을 잊는다. <시크릿 가든>의 현빈, <해를 품은 달>의 김수현은 실재하지 않는데도 사랑의 대상이 된다(여배우도 마찬가지). 부재를 사랑하면서 현실의 연인을 비난한다. 상상으로 야기된 실망은 실제 관계 파탄의 기폭제다(416쪽). 그래서 로맨스 영화는 로맨스의 적이다.

한편, 이 책의 목적이 사회에 만연한 사랑에 대한 생물학과 심리학의 통념, 즉 사랑은 오롯이 개인의 영역이라는 이데올로기 비판에 있다보니 심리학적 치료와 사회학적 통찰을 구분하는 데 나는 어떤 학문의 내부도 균질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회 구조적 인식이 없는 상담가는 아픈 이에게 더욱 상처를 주고, 구조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개인의 성찰을 방해한다. 여성학은 애초부터 다학제로 출발했으며 마르크스(구조)와 프로이트(개인)를 통합하려는 시도였다. 지역학, 섹슈얼리티, 탈식민주의 같은 연구 분야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관점이지 분과 학문 자체가 아니다. 

나는 이 책에 몰두하면서도 사랑받지 않을 용기, 사랑하지 않을 용기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연애 공화국이다. 공동체는 온정이 사라져 가는데 개인은 열애 중이거나 연애를 욕망한다. 연애의 매뉴얼(표준화)은 산업화, 상업화의 결과이자 반응이다. 연애는 외모의 자본화, 노동의 성애화, 성의 성매매화를 촉발시키고 교환가치의 왕으로 자리 잡았다. 

사랑이 대중화된 듯하지만 기회와 조건은 불평등하다. 여기도 양극화다. 어떤 의미에서 ‘성적 소수자’는 대머리 아저씨, 과로로 잠이 부족한 아줌마, 죄수, 노숙인, 가난한 남자, ‘뚱뚱한 여자’다. 연령, 계급, 비만과 머리숱, 키까지 인간의 매력은 자본화했다. 매력의 위계와 획일화가 실연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에 사랑의 아픔과 민주주의는 연결되어 있다. 이는 새롭게 등장한 심각한 소외 문제다. 

개인적으로는 여성학 전공자라는 ‘오해’ 때문에 연애 상담을 많이 받는데, 탁월한 권장도서가 추가되어 기쁘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6282159405&code=9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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