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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에서 마이너한 국가 전량(前凉)에 대해 알아봅시다 - 1
게시물ID : history_157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캬캬오톡
추천 : 17
조회수 : 1191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4/05/12 22:40:25
 
 
 
우선 이 전량(前凉)4세기에 약 80년간 (서기 301년~376년) 존속했던 나라로 소위 말하는 516국 시대의 16국 중 한 나라입니다. 516국 시대는 다들 아시는 중국의 삼국시대를 통일한 진() 왕조가 붕괴한 이후 도래한 헬게이트 시대로, 말 그대로 중국 변방의 다섯 오랑캐가 침입하여 5세기 중후반 무렵에 중국이 남북으로 갈라지는 남북조 시기까지 무려 16개의 나라를 우후죽순 세우고 활개치던 시대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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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지도만 봐도 당시 중국이 얼마나 혼란기였는지를 알 수있다 하겠습니다. 지도에 표기된 국가들의 존속기간을 보면 수많은 나라들이 할거했다가 채 백년을 못채우고 무너지진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전량 역시 당시 수없이 세워지고 스러진 국가들 중 하나였습니다
 
 
 
 
chts03-301-2.jpg
 
우선 전량의 위치와 강역부터 짚고 넘어가자면 전량의 위치는 위 지도에서 보시다시피 오늘날 중국의 감숙성 일대와 일치합니다. 영역이 서역으로 치솟아 있는걸 보니 아마 전성기 시절의 최대강역이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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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중국의 감숙성이고요.
 
 
 516국 시대 자체가 중국사에서 그닥 비중있다거나 특별한 의미가 있던 시기는 아니고 그저 혼란기로만 규정되는 시대인지라 상대적으로 다른 시대에 비해선 아무래도 쩌리취급 받는데다 당시 16국이 자체적으로 기록도 남기질 않아 사료도 부족해 (고작 몇십년 간 해먹은 나라이니 뭐 이렇다할 기록을 남기지도 못했겠지만 설령 남겼다 하더라도 아마 전란 중에 싸그리 소실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겁니다.) 후대에 연구도 그닥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나마 이 시대를 기록하는 사서도 먼 후대인 () 왕조 시대에 가서야 <진서(晉書)>라는 이름으로 편찬됩니다. 물론  보기 드물게 5호 16국 시대 자체를 다룬 <십육국춘추>이니 <자치통감>이니 뭐니 하며 다른 책도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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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도 부족하거니와 남은 유적도 얼마 없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전량의 영역은 후대의 서하(西夏)처럼 서역국가와 일치하는지라 남은 유적도 이게 전량 것인지 아니면 역시 5호 16국 시대의 국가들인 후량(後凉), 서량(西凉)이나 후대의 서하 것인지 분간이 안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 516국 시대의 국가들의 역사가 하나의 사료로 남겨지지는 못하고 모두 뭉뚱그려서 전 시기인 진() 왕조를 기록한 <진서>에 실릴만큼 그닥 주목받지 못하고 등한시되는 시대였고, 이 탓에 516국 시대의 뭇 국가들은 생소하다 못해 듣보스러운 네임드를 갖게 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그 중 전량은 일찍이 우리 고구려와 투닥대던 전연(前燕)이나 후연(後燕)처럼 우리의 역사에도 종종 등장하여 비교적 익숙한 16국 국가들과는 달리 네임드로는 마이너한 축에 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나마 전량에 있어서 특기할만한 점을 하나 들자면 16국 대다수가 흉노나 선비족과 같은 중국 주변의 오랑캐들에 의해 세워진 이민족 왕조였던 것에 비해 전량은 이들 중 유일하게 한족(漢族)에 의해 세워진 국가였다라는 점인데요. 이는 곧 전량의 정치나 문화, 정권의 성격과 연관되는 큰 요인이었다고 할 수있겠습니다. 이건 차차 살펴보도록 하고 먼저 전량의 실질적 건국자인 장궤(張軌)라는 인물을 시작으로 전량에 대해 써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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