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남성에게만 병역 의무를 부과한 병역법이 헌법상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위헌 판결을 내린다면 군대는 어떻게 될까. 여군 병사들을 맞을 훈련소를 일단 개조해야 할 것이고 자대에서 이들이 기거할 내무실도 따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 시설은 그렇다 치고 남녀 병사들이 한 부대에서 근무하게 된다면 양성 접촉으로 생기는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따른 군기 문제는 또 어떻게 규율해야 하나. 군대가 적지 않은 고민에 빠지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생각은 좀 여유로운 것 같다. 여성들이 병역 의무를 하게 된다면 병영 문화가 개선될 것이고(29.9%) 사회에 만연한 남성 우월주의 문화도 바뀌며(20.5%) 징집에 따른 피해의식도 줄고(15.7%) 복무 기간이 단축되는(8%) 등의 긍정적 효과들이 예상된다는 게 최근 한 주간지 여론 조사에서 나타난 결과다. 국방 의무를 여성에게도 부과하자는 논의가 가을바람을 타고 있다. 최근 한 단체가 남성에게만 병역 의무를 부과토록 한 병역법 3조가 헌법의 평등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개정해야 한다는 청원서를 국방부와 관련 기관에 돌린 데 이어 국회에서도 여성 징병제를 골자로 하는 병역법 개정안을 올 가을 정기 국회에 제출할 기미다. 일련의 움직임은 위의 주간지 조사 결과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여성도 국방 의무를 지는 것에 대해 조사 대상자의 22.2%가 ‘찬성한다’고 답했고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답도 27.2%였다. 반대 의견은 27.6%였으며 ‘찬반을 떠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21.7%였다. 찬반이 팽팽히 맞서 있는 형국이 마치 공론화의 시급성을 웅변하는 듯하다. 여성의 국방 의무 논의는 양성 평등의 관점에서 출발했다. 헌재의 위헌 판결로 이제는 사라졌지만 군필자에 대해 공무원시험 등에 일정 점수를 부여하는 ‘군 가산점제도’ 논쟁도 이와 맞닿아 있다. 최근에는 출산율 저하에 따른 남성 병역 자원 감소라는 현실적 문제가 대두되면서 여성의 병역 의무에 눈을 돌리는 형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많은 논의가 감정에 치우쳐 있는 게 사실이다. ‘여자도 군대 가서 고생 좀 해 봐야 한다’는 차원의 주장에 ‘여자는 군대 가는 대신 출산의 고통을 지고 있다’는 반박이 이어지는 식이다. 얼마 전에는 국방부 홈페이지 게시판에 “고작 2년 동안 세월 보내고 온 게 그리 억울합니까. 누나나 어머니까지 (군대에) 보내고 싶으세요”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 시끌벅적한 적이 있다. 모 여대를 필명으로 사용한 이 글은 남성들의 융단 폭격에 시달려야 했다. 앞으로 공론화 단계에서는 보다 폭넓고 진지한 자세로 접근해야 할 일이다. 우선 한반도의 안보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 안보 환경을 고려함에 있어서는 통일 한반도의 미래와 함께 중국·러시아의 밀착과 일본의 군사대국화 등 한반도 주변의 도전적인 상황을 주시해야 함은 물론이다. 또 병역 자원의 고갈과 예산이라는 현실적 요인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