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갑자기 어릴때 먹었던 귤이 생각나서요..
요즘 추억의 음식들에 대한 글들 읽다보니 문득 생각이 나네요.
혹시 언 귤 드셔보셨어요? 얼린거 말고 그냥 자기가 추워가지고 언 귤이요..
저 어릴때 잠깐 살던데가 대전이었어요.
그때 제 기억엔 눈이 참 많이 왔었는데 동생이랑 목욕탕 갔다가 머리카락은 꽁꽁 얼어서 종종 걸음으로 집에 가곤했었어요.
현관에 목욕가방 내팽겨치고 거실에 깔아둔 이불밑으로 기어들어가면 엄마가 가방 정리하라고 타박을 주곤 했었죠..
대충 정리하고 또 얼른 거실로 가서 엉덩이 밑에 손 깔아넣고 이불을 칭칭 감고있으면 언제 추워서 벌벌 떨었냐는듯 또 덥고 그렇게 목이 타요.
그러면 엄마가 겨울만 되면 이상하게 귤 전용으로 담던 묵직한 나무 그릇을 주면서 귤 몇개 꺼내와라~ 하세요.
그릇 받아들고 내복바람으로 베란다에 나가면 이따만한 박스에 귤이 한가득있어요.
단단하고 상처없는 귤만 먹겠다고 하나씩 눌러보면서 귤을 고르고있으면 베란다 슬리퍼 밖으로 나온 발가락이 얼마나 시리던지요...
춥다고 춥다고 호들갑 떨면서 거실로 와가지고는 발가락을 부여잡고 또 한참을 이불속에 있어요.
찬 기운이 좀 가시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귤을 까먹기 시작하는데
진짜 그때 먹은 귤이...
날이 추우니까 베란다에 귤을 가져다놓으면 귤이 얼어요.
꽁꽁 어는게 아니라 그 귤 껍질이랑..귤 속껍질 있잖아요 그 사이에 살얼음이 껴요. 과육이랑 속껍질 사이에도, 과육 사이사이에도요..
귤을 까서 반으로 가르면 과육을 감싸는 그 속껍질이 질긴듯이 찢어지는게 아니라 얼어서 사악 하는 소리를 내면서 떨어져요.
그 요즘 많이 나오는 눈꽃빙수같은거 수저로 뜨면 갈라지는 사각거리는 그 소리가 나거든요..
그렇게 쪼갠 귤 한쪽을 입에 넣고 씹으면 얼어있던 과육들이 입안에서 서걱거리다 제각기 터지면서 온 입안에 신 물을 뿌리는데 그 식감이 진짜 기가막혀요.
이렇게 반쯤 언 귤은 이상하게 단맛이 없어요. 사각거리고 좀 시더라구요..
근데 웃긴게 얘네가 또 좀 녹아서 말랑말랑해지면 그렇게 달아요.
제가 겨울에 이렇게 언 귤을 정말정말 좋아해서 많이 먹겠다고 한가득 꺼내와놓고선 몇개 먹지도 못하고 널부러져있다가
또 먹고싶어서 까면 방이 따뜻해서 귤이 좀 녹아있어요. 그러면 귤이 또 말랑해가지고 얼마나 달콤한지....
제가 이사를 정말 많이 다녔어요. 경기, 전라, 강원, 충청, 경남 다 살아봤거든요.
근데 겨울에 딱 이정도로 귤이 어는곳이 없었어요..
강원도에 살았을땐 살짝 기대했었는데 대전에서 먹었던 그 정도 식감으로 야무지게 얼지를 않더라구요...
어릴때 먹던 이 언 귤이 너무 먹고싶어서 혼자서 냉동실에 귤 넣어서 얼려보기도하고 그랬는데 매번 실패했네요...
인위적으로 얼린게 아니라 그냥 차가운 겨울 공기에 조용히 얼어버린 그 귤맛을 잊을수가 없어요
아직도 대전 어디 살았었는지 몇층 몇호였는지까지 다 기억이 나요.
어릴때이기도하고 이사도 많이 다녀서 한 동네에 대한 추억같은게 별로 없는데 대전은 딱 겨울밤하고 매 년 겨울이면 곱게 얼었던 그 귤이 생각나요.
진짜 그때로 돌아가서 그 귤 딱 한개....는 말고 10개만 먹었으면 좋겠네요.. 10개 초과해두 되구요....ㅋㅋ
ㅋㅋ아까 오렌지쥬스를 먹어서 그런가 뜬금없는 귤타령 죄송해영
헤헤 귤먹고싶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