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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허경영 신드롬
게시물ID : sisa_754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에로홀릭
추천 : 18
조회수 : 868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09/10/09 05:55:16
어디 기고문인 거 같습니다.
혼자 보기 아까워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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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영 신드롬  / 진중권



진 보신당 칼라 TV의 이명선 아나운서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허경영 콘서트에 왔는데 시간이 있으면 오란다. 그러잖아도 궁금했기에 곧바로 버스를 타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좌석이 없는 스탠딩 바에는 젊은이들이 빼곡히 들어서 “허경영”을 연호한다. 이와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 것이 공연장 뒤쪽에 마련된 좌석에 앉은 할아버지들. 듣자 하니, 허경영씨가 총재로 있는 공화당의 당원들이란다. 이 얼마나 초현실주의적인 조합인가. 재미있는 것은, 젊은 세대가 축지법과 공중부양을 한다는 이 기인에 열광한다는 사실.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허 경영은 한 마디로 르네상스 시대 광우(狂愚)의 환생이다. ‘광우’란 글자 그대로 ‘미친 바보’라는 뜻이다. 추방은 당해도 방랑의 자유를 누렸던 광우는 17세기에 들어와 이성적인 사회에 존재해서는 안 될 ‘광인’으로 낙인 찍혀 정신병동에 감금된다. 과거에 광우들이 하던 짓을 넘겨받은 것이 바로 오늘날의 예술가와 개그맨이다. 하지만 현대의 예술가들이 미친 짓을 하고, 현대의 개그맨들은 얼빠진 소리를 하는 것은 그들이 광우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광우를 연기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허경영의 것은 결코 연기가 아니다.


공 연장에는 허경영을 똑같이 흉내 내는 개그맨이 나왔다. 이 개그맨이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언행은 그저 남을 웃길 의도로 연출된 연기에 불과하나, 허경영의 언행은 그의 삶에서 진지하게 우러나오는 것이다. 허경영 속에서 정치와 개그는 하나가 된다. 하지만 그것은 모 의원이 가수를 겸업하듯이 한 정치인이 개그맨 노릇을 같이 하는 것과는 애초에 차원이 다르다. 우리에게 우스운 개그인 것이 허경영에게는 진지한 정치다. 공연장에 모인 두 부류의 사람들, 즉 늙은 공화당원들과 젊은 쾌락당원들은 허경영이 정치인과 개그맨을 한 몸에 통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광 우라는 현상이 지니는 가치는 그것이 종종 수행하는 가치의 전도에서 찾을 수 있다. 가령 ‘신혼부부에 1억 제공’이라는 허경영의 공약과 ‘신혼부부에 집 한 채’라는 정부의 정책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는 과연 얼마나 큰 것일까? 사실 허황된 것은 허경영의 공약만이 아니다. 이명박의 747 공약 역시 허황되기는 마찬가지다. 경제가 7%씩 성장해서 소득이 4만 달러가 되어도 대한민국이 7대 경제 강국이 되는 것은 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 이렇게 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버젓이 대선의 공약이 되는 현상은 얼마나 이성적인 일일까?


광 우들은 종종 ‘이성’인 척 하는 것이 실은 또 다른 ‘광기’이고, ‘광기’로 무시되는 것이 실은 또 다른 ‘지혜’임을 보여준다. 허경영은 정치를 개그로 만듦으로써 국민을 즐겁게 하고, 이명박은 개그를 정치로 만듦으로써 국민을 짜증나게 만든다. 어느 쪽이 더 이성적이고 현명한 일일까? 콩팥이 나빠 공중부양을 못한다는 허경영의 핑계와 용산 참사의 수사기록을 공개 못하겠다는 검찰의 핑계 중에서 고약한 것은 어떤 것일까? 용산참사에 애써 눈감는 정권의 태도와 참사의 유가족에게 공연 수익금을 전달하는 허경영의 태도 중에서 이성적인 것은 어느 쪽일까?


가 치전도는 다른 방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법원은 대선 때에 허위사실유포의 책임을 물어 허경영에게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도대체 유권자들 중에서 부시를 만났다거나, 박근혜와 결혼을 약속했다는 말을 믿고 그에게 표를 던진 사람의 수가 얼마나 될까? 진정으로 우스꽝스러운 것은 그저 웃고 넘어가면 그만인 그의 개그에 무려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는 법의 준엄한 경직성이 아닐까? 그 뿐 아니다. 오늘자 조선일보에는 이런 썰렁한 기사가 올라왔다.


“전 문가들의 입장은 어떨가. 지금의 현상을 두고 전문가들 역시 의견은 분분하지만, 21세기 종교 현상이라고 해석한다. 평소 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식의 그의 발언은 인간의 의존 증세를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허경영을 외치면 진짜 로또 1등에 당첨될 수 있을까?"


이 기사를 읽고 뿜을 뻔 했다. ‘허경영이 21세기의 종교현상이며 그의 발언이 인간의 의존 증세를 부추긴다’고 했다는 그 “전문가들”이야말로 어디가 좀 모자란 사람들이 아닐까? 젊은이들이 로또 1등에 당첨되기 위해 열렬히 허경영을 연호한다고 믿는 그 “전문가들”이야말로 머리가 굳어버린 진정한 바보들이 아닐까? 미쳐 버린 사회에서는 광기가 지혜를 말한다. 그런 사회에서 광우는 온갖 권위와 위엄의 아우라로 치장한 이들이야말로 진정으로 미친놈들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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