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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와 치우부적글 보고 어떤 오해
게시물ID : history_80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푸쉬킨
추천 : 13
조회수 : 847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3/03/13 21:39:15

쉽게 생각해 보았음 합니다.

우리가 아는 명절이라는 것은 전부 기본 24절기 농사주기에 맞춰 1년을 나누며 사람들이 기억하며 사용한 것의 흔적입니다.

예들 들어 설날, 입춘, 곡우, 대보름, 단오, 추석 등등 떠올려 보시면 되죠  

자고로 명절이란 1년중 중요한 시점을 사람들이 기억하며 공동체가 축제형식으로 기억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이유는 고대의 달력이라는 것이 천문을 관측할 능력이 있는 지식인 층과 국가를 다스리는 권력이 배포하는 것이었고

삶을 살아가며 생업에 종사하는 농부와 민초들이 지금처럼 인쇄된 달력을 매일 보며 사는 것도 아닌지라

모두 외우고 해석할 수 있는 그러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죠

보통 이런 풍습의 경우 비단 동양만 그러한게 아니라 서양 역시 각종 축제나 기념일이 이런

생산과 관련한 생업(특히 농업문명에 달력이 발달했죠)과 1년의 주기에 연결됨을 확인해 보실수 있습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단오를 다시 생각해 보죠

단오의 경우 보통 모내기가 끝나는 시점과 같은 한해 농사의 시작과 함게 풍년 기원하며 주술적인 염원을 기원하며 시작하지요

기본적으로 모내기를 마치고 뿌린 씨앗이 무탈하게 자라나 추수하기를 염원하며 지낸 축제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유사에도 나올 정도로 유서가 깊습니다.

 

한편 이런 중요한 절기를 기억하기 위해 사람들는 축제의 이유를 스토리화 하기도합니다.

서구의 축제에 각종 기독교 성인의 이야기가 가미되는 것이나

동양의 한식날 단오날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죠.

 

초나라 굴원이 우국의 심정으로 자결한 날이 5월 5일이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며

단오가 유래하였다고 하지만 정말 그 때문에 단오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 아닙니다.

그것도 단지 하나의 스토리일 뿐이죠

 

한편 한반도 국가의 경우 삼국시대 이후 중국과 통교를 하며 한학을 꾸준히 배웠고

조공책봉 관계를 맺으며 책력 또한 중국으로 부터 받아 보는 관계를 지속했습니다.

 

한반도 국가가 자체적으로 책력을 만들어 배포한 것이 조선 초의 일이니

같은 농업국가인 중국의 24절기와 책력이 한반도에 자리잡는 것이 그리 큰 무리도 아니죠

당연 책력과 함께 한국과 중국 모두 중요시하는 날 동일하게 존재하는 절기도 함께 공유해 왔습니다

 

한식날을 생각해 봅시다.

나라가 망한 후 춘추시대 진나라의 은사인 개자추가 산으로 들어가 불에타죽었음으로

이를 기념하여 그날은 불로 음식을 만들어 먹지 않았다는 한식날의 유례가 정녕 기원일까요

건조한 기후 불을 조심하는 삶의 지혜에 이런 중국 명절의 스토리가 책력을 공유하며 함께 전례되며

사람들에게 인식되며 오늘 날 전해진 것이죠

 

단오 역시 그러합니다.

단오의 기원은 우리민족의 농경생활과 함께 시작했지만

오랜기간 같은 농업국가인 중국과 책력을 공유하며 유례나 전설과 같은 스토리도

함께 공유하며 살아온 결과물이죠

 

이쯤 보셨음

먼 길을 돌아 이른바 치우부적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단오날 치우부적을 붙이고 다니고 이런 풍습이 동국시세기에 나온다 하여

치우가 우리민족의 조상이라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일단 그 동국세시기에 나온다는 치우관련 문구가 이런 것이죠

 

관상감에서는 ‘천중부적(天中符籍)’을 만들어 대궐 안의 문설주에 붙이기도 하였다. 이 부적은 불길한 재액을 막아주는 것으로, 사대부의 집에도 붙였다고 한다. 부적의 내용은 ‘5월 5일 천중절에 위로는 하늘의 녹을 받고 아래로는 땅의 복을 얻어 쇠이마·붉은 입·붉은 혀의 사백사병(四百四病)이 일시에 없어져라, 빨리빨리 법대로 시행하라’고 기록했다

 

쇠이마가 말하는 대상이 당연히 치우입니다.

문제는 단오날 이런 부적을 하는 이유를 아셔야 한단 점이죠

 

중국 한나라 때 이른바 악귀를 쫓는 나례의식이 궁중예식으로 채택이 된 이후

우리나라 역시 고려시대 이 풍습을 받아 들여 나례의식을 궁중 예법으로 채택하였습니다

 

간단히 이른바 벽사라 하여 질별, 천재지변과 같은 재난은 사악한 악귀가 저지른다 하여

그 사악한 악귀보다 더 지독한 악귀를 통해 이들을 물리치는 방식입니다.

 

중국신화에서 황제 헌원에 대항한 전쟁신 치우가 이런 용도로 사용되었고

이런 풍습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이죠

 

이런 중국식 풍습이 함께 전례된 것은 중국과 우리나라가 오랜기간 책력을 공유한 관계임을

앞서 설명드렸습니다.

 

오늘 날 무슨 이런 치우부적이 한단고기와 연계하여 치우가 마치

우리민족 전통신앙인양 왜곡하는 경우가 있는데

 

정말 우리민족의 벽사풍습으로 여긴 것을 찾으신다면

그토록 싫어하는 사대에 찌든 유생들이 만든 조선의 관상감에서 유포한  

중국의 신앙 치우가 아니라 민중들이 생활에서 문신(門神)으로 여기며 민간에서 섬긴

처용을 거론해야 이치에 맞죠

한식날 유례라는 개자추가 한단고기에 나오면 개자추 역시 우리 민족의 충신이라 여기려나요

 

한단고기와 같은 소설이 유포되었다 하여

중국 문화의 잔재를 마치 전통인양 소중히 하며 과장하는게 요즘 유행하고

정작 삼국시대 부터 조선시대까지 꾸준히 이어온 진짜 민족문화는 외면하는게

오히려 한단고기의 폐단이라면 폐단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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