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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 -1-
게시물ID : panic_8029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몰랑ㅜㅜ
추천 : 0
조회수 : 54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5/31 02: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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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10년 전쯤이다. 

중간고사를 앞두고 그동안 안 했던 공부를 하느라 늦게까지 책 앞에서 꾸벅거리다 졸음을 못 이겨서 결국 누웠다. 

나는 조금만 더 공부하다 잘지, 컨디션도 안 좋은데 아침에 일어나서 공부할지 고민했다. 

잠시 동안 나름대로 심각한 고민을 하던 중 갑자기 온몸이 나른해짐을 느꼈다. 

몇 시간 동안 강도 높은 운동을 한 뒤 누웠을 때 그런 종류의 느낌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몸이 공중에 붕 뜨는 느낌. 

그리고 천천히, 나뭇잎이 나폴거리며 떨어지듯이 추락하는 기분이 들었다. 

편안했다. 

그런 상태를 몇 분동안 즐기다가 이제 그만 공부해야지 하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온 세상이 흐물거렸다. 

물속에서 눈을 뜨면 그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한 느낌과 몸에 이상이 생겼는지에 대한 걱정으로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가 누워있는 나를 발견했다. 

하체는 누워있는 상태로 있고, 골반부분에서 상체가 빠져나와 있었다. 

‘아 이것이 유체이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몸에서 완전히 빠져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유체이탈을 오래 지속하면, 

떠도는 다른 영혼이 내 몸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글이 생각났다. 

순간 겁이 난 나는 누워있는 내 몸에 맞추어 그대로 누웠고, 흐물거리던 세상이 한순간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방금 전과는 다르게 몸이 공중에 붕 뜨는듯한, 

그 황홀한 느낌은 정 반대가 되어 나를 무겁게 눌러왔다. 

단순히 무거운 것이 나를 누르는 게 아니라, 

온몸 구석구석을 빠짐없이 나를 누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당황한 나는 움직이지 않는 몸을 움직이기 위해 몸부림치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게 살면서 처음 눌려본 가위였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영혼이나, 괴기 현상에 관심이 많았다. 

귀신이 존재한다고 믿었고, 한 번쯤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남들은 자주 눌리는 가위를 왜 나는 경험하지 못하는 것일까,

가위에 눌리면 정말 귀신이 보일까 하는 생각도 했다. 

첫 가위를 경험 한 후, 나는 책과 인터넷을 이리저리 찾아봤다. 

유체이탈은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가끔 경험담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었지만 나와 같은 경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유체이탈에 대한 조사는 포기하고 가위에 대해서 알아봤다. 

책이나 과학 관련 글에서는 가위 현상은 일종의 수면장애현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몸은 잠들어있지만 뇌는 깨어난 상태.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귀신의 장난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귀신은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좀 피곤해서 가위에 눌린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유체이탈에 대한 경험담을 찾아보다가 자각몽에 대해 알게 되었다. 

꿈속에서 꿈인 것을 인지한다면, 평소 하고 싶었지만 못 했던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자각몽 관련 카페를 찾아 방법에 대한 글을 읽던 중 재밌는 글을 발견했다. 

자각몽, 꿈에 빠져들기 직전에 몸이 붕 뜨는듯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었다. 

내가 겪었던 상황과 너무도 비슷했다. 

그 글을 읽고 여러 날에 거쳐 자각몽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 뒤로는 꿈에 관해서 책들을 찾아봤다. 

프로이트 꿈 해석 이론에 따르면, 꿈은 기억의 조각들로, 

꿈에서 본 사람이나 물건, 길거리나 뜨겁고 차가운 감정, 아픔, 슬픔 따위들도 내가 언젠가 한 번쯤 겪었기 때문에 꿈에 나온다는 것이다. 

그럼 자각몽에 성공해도, 하늘을 난다거나 만화 주인공처럼 온몸이 드러난다거나 하는 행동들은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번의 실패와 별거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자각몽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들어갔다.



 몇 개월이 지나고, 자각몽이나 가위, 유체이탈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질 때쯤 정말 우연히 자각몽에 성공했다. 

그때 계절은 한겨울이었는데, 꿈속에서는 아주 더운 여름이었다.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겨울인데 왜 이렇게 더울까 하는 말을 하자 친구들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7월이면 여름이지 왜 겨울이야.” 하는 말에 어제까지만 해도 2월이었다고 말했다. 

어제 잠들기 전에 분명 눈 오는 것을 보고 잤다고 말을 하자 친구들은 혹시 단기 기억상실 아니냐는 말을 했다. 

꿈속에서 나는 곧바로 그 말을 받아들였고, 절망했다. 

순간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손가락을 물었는데, 아프지 않았다. 몇 번이고 물어봤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자각몽이 생각났고, 드디어 성공했다는 생각에 너무도 기뻤다. 

그렇게 꿈속에서 한참을 난리치다가 가위에도 눌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유체이탈도 다시 해 보고 싶었다. 

사실 자각몽에 성공한 시점에서 유체이탈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은 꿈에서 깬 뒤에 들었지만, 

그만큼 내가 한번 더 겪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꿈에서 유체이탈은 너무나도 간단했고, 굳이 영혼이 아니라도 할 수 있었던 하늘을 날아다니고, 

벽을 통과하고 현실에서는 하지 못 했던 일들을 오랫동안 했다. 

그리고 다시 몸으로 돌아가려는 그 순간, 

내 몸이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다른 영혼이 내 몸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 시점에서 나는 이미 꿈이었다는 것을 잊어버린 상태였다. 

한참 동안 절망하다 꿈에서 깬 뒤 창밖에 눈이 내리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



 꿈속에서 다른 영혼에게 내 몸을 빼앗긴 뒤 유체이탈에 대한 꿈은 완전히 접었고, 

자연스럽게 가위에 대한 생각도 다시 멀어졌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고등학생이 됐고, 입시와 씨름을 하는 나이가 됐다. 

공부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으로 몸은 점점 약해졌고, 

부족한 잠 때문에 꿈이 아닌 현실에서도 몽롱한 느낌이 지속됐다. 

시험기간이 끝난 후 오랜만에 부족한 잠을 보충할 여유가 생겼다. 

즐거운 마음으로 자리에 누웠고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떴을 땐 아직 어두운 밤이었다. 얼마나 잤을까. 

시계를 보기 위해 손을 뻗으려 했지만 뻗어지지 않았다. 

온몸을 빠짐없이 누르던 무거운 느낌도 그때야 인식했다. 

태어나서 두 번째로, 첫 가위에 눌린 뒤 몇 년 만에 다시 가위에 눌린 것이다. 

문득 호기심에 예전처럼 몸을 일으켜 봤지만 움직여지지 않았다. 

눈을 제외하고는 움직일 수 없었다. 

눈은 감아지지 않았다. 

아니, 눈은 감았는데 앞이 보였다. 

천장이 보였다. 

천장에 붙여놓은 야광별이 뚜렷하게 보였다. 

눈에 힘을 주어 더욱더 세게 감았다. 

앞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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