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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도록무서운. '별을 헤는 아이'
게시물ID : panic_803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Expiation
추천 : 12
조회수 : 3057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5/05/31 20: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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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시간이 많지가 않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그리고 또 다른 사내의 목소리가 대답했어요.


 "죄송합니다. 워낙에 민감한 사안이라서..."


 대답하는 목소리에는 나지막한 떨림이 있었어요.


 "하아. 아무튼 조심하게. 들키지만 마."


 이 한마디를 남기고 남자는 조용히 뚜벅-뚜벅- 어둠속으로 사라졌어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내는 자그마하게 읊조렸어요. 


 "그럼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일이에요."


 사내는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았어요. 유난히도 별이 가득한 아름다운 밤이었어요.





*

 지은은 마저 의료기구들을 차에다 실었어요. 그리고 쨍한 햇빛에 반짝이는 땀방울을 쓸어내리며 숨을 크게 쉬었어요.


 "휴우- 이제 끝이네."


 지은은 곧바로 차 문을 열고 시동을 켰어요. 그리고 힘차게 악셀을 밟았어요.


 지은이 가는 곳은 '정다운 마을' 이었어요. 예전에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던 마을이었지만 최근들어 크고 작은 사고들이 생기면서 하나둘씩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어요. 몸 가누기 힘들정도로 거동이 불편하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나 다른 곳으로 집을 옮길 여력이 부족한 사람들만이 겨우 남아 마을의 온기를 유지할 뿐이었어요.

 지은이 '정다운 마을' 로 가는 이유는 간략하면서도 명확했어요.


 '이들의 온기를 지켜주는 것.'


 지은은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지난 날의 기억을 되살렸어요. 필사적으로 공부해 의대에 합격한 일. 유망받는 인재로 이름을 알리며 유명 병원에 레지던트로 들어간 일. 그리고 환자들을 돌보며 뜨거운 심장을 움켜쥐었던 일. 그리고 병원도 하나의 기업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던 사고. 그리고 퇴사.

 다시 떠오른 옛 기억에 지은은 미간을 찌푸렸어요.


 '정다운 마을' 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질 무렵이었어요. 차에서 내린 지은은 간단한 진료기구들만 챙기고 마을을 조용히 걸었어요. 시큼한 음식 냄새들과 간간히 새어나오는 불빛들. 아직 이 마을이 살아있구나 하는 조그마한 메세지들을 느끼며 지은은 마을 곳곳을 걸어다녔어요. 그리고 불빛이 새어나오는 집을 볼 때면 무작정 찾아가 문을 두드렸어요.


 "아니 젊은 처자가 이런 누추한데까지 오누."


 "에헤이~ 우리는 병원에 안가도 된다니까. 참."


 "처자보니까 우리 딸이 생각나는구먼..."


 마을 사람들은 누구 하나 싫은 기색없이 따뜻하게 지은을 맞이했어요. 지은은 집을 들어설 때 마다 얕은 온기가 느껴졌어요.

 하지만 방 안으로 들어가 어르신들과 얘기를 나눌 때면 온기가 차갑게 식어버렸어요.


 "우린 이제 더 여한이 없다우. 살아서 뭐하겠어. 그냥 이렇게 늙어갈 뿐인디."


 "에구... 딸같아서 하는 소리야. 마음은 고맙지만 이대로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구먼 허허."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더 이상의 삶에 미련을 갖지 않는 것 같아 보였어요. 하지만 왠지 모를 슬픔이 묻어 나오는걸 지은은 느꼈어요. 지은은 바로 기구들을 꺼내들고 어르신들을 찬찬히 진료했어요.


 어느덧 밤이 마을을 가득 머금은 시간이 되었어요. 지은은 마지막 집을 나왔어요.


 "아유~ 고생했어. 이렇게까지 안해줘두 되는디~"


 "에이, 별 말씀을요. 내일도 모레도 매일 찾아올거니까 아까 제가 말씀드린 거 잊지마세요!"


 "그려~ 얼른 들어가. 여긴 가로등도 없으니께 넘어지지않게 조심하구~"


 인사를 마친 지은은 마을을 내려오기 시작했어요. 할머니 말씀처럼 마을은 구석구석 어두움이 가득했어요. 하지만 유독 밝은 달빛 덕에 헤매지않고 걸을 수 있었어요.


 "별 참 예쁘다."


 문득 올려본 하늘에는 달을 에워싸 있는 듯 별들이 곳곳에서 밝게 비추고 있었어요.


 - 저 별은 욕쟁이 할아버지 별...


 지은의 옆에서 누군가의 소리가 들렸어요. 지은은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어요. 잔잔한 바람에 풀잎들이 부스럭거리며 서로 비벼대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끝에는 나무 밑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어요.


 '이 마을에도 어린 아이가 있네?'


 지은은 호기심을 품은 채 천천히 그 곳으로 걸어갔어요.


 아홉살 쯤 으로 보일까. 붉으스름한 홍조를 띄고 있는 여자 아이가 보였어요.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는 계속해서 중얼거렸어요.


 "저- 끝에 별은 감나무 할머니 집. 히히. 할머니 별 예쁘다! "


 아이는 별 하나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미소를 지었어요. 지은은 조용히 아이의 옆에 앉아 말을 걸었어요.


 "얘야 안녕? "


 지은의 목소리가 아이는 화들짝 놀랐어요. 하지만 이내 다시 평온한 얼굴로 인사했어요.


 "늦었는데 여기서 뭐하고 있니?"


 "별. 별 보고 있어요."


 아이는 말을 끝내고는 다시 하늘을 올려봤어요.


 "그래. 오늘 별 참 예쁘다."


 지은도 아이를 따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어요.


 "언니두 별 좋아해요?"

 

  아이가 지은을 바라보며 말했어요. 아이의 눈동자가 별빛 만큼이나 반짝거렸어요.


 "그럼~ 별 보는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어."


 지은이 대답하자 아이는 무언가 신이 난 듯 말을 이어갔어요.


 "히히. 저기 구름 끝에 걸려있는 별 보여요? 저거는 감나무집 할머니 별이에요. 진짜 예쁘죠? 할머니는 젊었을 때도 예뻤대요. 마을을 걸어가면 남자들이 막- 쳐다보고 그랬대요."


 아이의 말에 지은은 싱긋- 하고 웃어보였어요.


 "또 또! 달 밑에 작은 별 보여요? 저거는 멍충이 할아버지 별이에요. 진짜 멍충하다니까. 달 밑에 있으면 달에 가려져서 보이지도 않을건데."


 아이는 계속해서 별들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술쟁이 아저씨 별, 국수집 아줌마 별, 고무신 할머니 별... 지은은 아이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었어요. 그런 지은의 태도에 아이는 기뻤는지 지은 옆으로 붙어서 말을 걸었어요.


 "밤하늘을 가득 채웠어요. 별들이요! 정말 예뻐요. 예쁜 별들이에요."


 "원래 그렇게 별들에게 이름 붙여주는걸 좋아하니?"


 아이는 지은의 말에 고개를 저었어요.


 "내가 붙여준 이름이 아니에요. 진짜 별이에요.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모두... 마을 사람들 모두 별이 되서 저기에 있는거에요."


 아이의 말에 지은은 아이를 바라보았어요. 뭔가 기특하고 예뻐보였어요.


 "언니 왜 그래요?"


 "아, 아니야."


 지은은 미소를 짓고 대답했어요.


 "히히. 언니 좋다. 언니 내일도 같이 별 봐요. 나 지금 너무 졸려~"


 아이는 말을 마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그리고 지은에게 손을 힘껏 흔들고는 언덕을 풀밭을 나왔어요. 아이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지은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어요.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렸어요.




 다음 날도 지은은 마을을 방문했어요. 마을 사람들은 모두 괜찮다며 사양했지만 내심 지은을 반갑게 여겼어요. 푸른 지붕 집 할아버지도, 폐지를 주워다니는 할머니도 모두 자기 딸인 것처럼 대했어요.

 매일매일 마을을 찾을 때 마다 지은은 괜시리 뿌듯했어요. 처음 마주했던 삭막한 마을이 점차 온기를 띄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어요. 마지막을 기다리는 듯 핏기 가셨던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모습을 보고있자니 울음이 나기도 했어요.

 푸른지붕 집 할아버지는 이제 의자에 먼저 앉아 지은이가 오기를 기다렸어요. 고통속에 시름시름 대던 판자 집 할머니는 이제 지은이를 만날 때 마다 신음없이 웃음소리만 들려주었어요. 언덕 집 아주머니는 고통에 밤을 새지않고 푹 잘 수 있다며 지은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어요.


 '그래 맞아. 이게 내가 원했던거야.'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싶어서 택한 의사의 길. 하지만 결코 녹록치만은 않은 현실의 벽. 그리고 선택한 현재의 나.

 큰 것을 바란게 아니었어요. 꺼진 불씨를 품에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었어요. 그리고 마을에 와서 점차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다시금 목이 메었어요.

 지은은 아이와도 점점 친해졌어요. 매일 진료를 끝내고 집에 돌아갈 때 쯤이면 항상 같은 자리에서 별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를 만날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 옆에서 함께 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오늘도 지은은 아이의 옆에 말 없이 앉았어요. 그리고 같이 하늘을 바라보았어요.


 "밤하늘은 정말 굉장한 곳이에요. 아픔도 슬픔도 없어요. 항상 빛나기만 하는걸요."


 "그래 맞아. 기쁨만 가득찬 곳일거야."


 지은의 말에 아이는 고개를 돌렸어요.


 "언니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럼~"


 "나도 그래요... 모든 사람들이 저 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항상 빛나기만 했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


 "나도 그래. 모두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항상 웃음만 간직하게 하고 싶어."


 아이는 지은의 말에 지그시 웃었어요.


 "언니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그리고 지은의 어깨에 기댔어요.


 "언니는 매일 우리 마을에 와서 뭐해요?"


 "음..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주고 있단다."


 "희망이요?"


 "그래. 거동이 불편하신 할아버지,할머니... 마을 사람들 모두. 힘겹더라도 희망을 잊지않게 살아가게 도와줄거야. 병을 고쳐줄거야. "


 지은의 말에 아이는 몸을 천천히 뗐어요. 그리고 좀 전의 미소띤 얼굴이 사그라들었어요.

 

 "응? 왜 그래?"


 지은은 아이를 바라보며 물었어요. 아이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숙였어요.

 

 "그, 그건 아니에요..."


 아이의 말에 지은은 입을 삐쭉 내밀고는 가까이 다가갔어요.


 "그게 무슨 말이니?" 


 "힘겹게 살아가는데 희망이 있을리는 없어요.. 언니는 몰라요..."


 갑작스러운 아이의 대답에 지은은 다시 되물었어요.


 "무, 무슨 말이니 그게?"


 아이는 대답대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요.


 "저, 저 갈래요. 졸려요."


 대답하는 아이의 얼굴색이 어두워보였어요. 지은은 걱정되는 마음으로 같이 따라 일어섰어요. 하지만 아이는 가볍게 손을 흔들고는 자리에서 도망쳐버렸어요. 지은은 가볍게 머리를 긁적였어요.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지은은 별이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았어요. 별들은 말 없이 그저 빛으로 화답할 뿐이었어요.





*

 "아유. 우리 지은이 때문에 내가 산다 살아. 허허."


 진료를 마친 녹색기와 집 할아버지는 지은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어요.


 "에이, 또 그 소리 하신다."


 지은은 기구들을 정리하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녹색기와 집 할아버지는 가볍게 손을 내밀어 지은의 손을 잡았어요.


 "지은아.. 정말 고맙다..."


 지은은 떨리고 있는 녹색기와 집 할아버지의 손을 힘껏 잡고서는 가볍게 쓰다듬었어요.


 "고마운거 아셨으면 말씀 드린 것처럼 아침에 운동도 좀 하고 그러세요! 알겠죠?"


 지은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을 끝내고는 집을 나섰어요. 그리고 먼 발치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할아버지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모른 척 했어요. 현관문을 나서고 나서야 지은은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냈어요.


 "흐흑... 이게 뭐라고 진짜..."


 고마웠어요. 너무나도 고마웠어요. 마을 사람들이 희망을 갖고 살아가줘서 고마웠어요. 감사한 마음에 가슴이 벅차 눈물이 흘렀어요. 이내 이 기쁨에 눈물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자 눈물을 머금었어요, 그리고 한숨을 쉬고 미소를 지었어요. 마음이 차분해지자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어?"


 그 때 멀리서 지은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어요. 지은은 아이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어요. 하지만 아이는 조용히 이 쪽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어요.


 "아... 안녕?"


 지은이 다시 인사를 건냈어요. 그러나 되돌아온건 바람에 긁히는 풀잎소리 뿐이었어요. 지은은 조용히 아이에게 다가가려다가 흠칫했어요. 아이의 눈빛에 분노가 일렁거리는게 느껴졌어요. 평소답지 않은 모습이었어요. 아이에게 빗대서는 안 될 말이라는걸 알면서도 마땅히 표현할 말을 찾지 못했어요. 두려움. 지은은 무서운 마음이 들었어요. 더 이상 아이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지은은 뒤돌아섰어요. 그리고 발걸음을 뗐어요.





 "아이구 지은아 밥이라도 먹고가."


 마지막 집 진료를 마치고 나서는 지은에게 할머니가 말을 걸었어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할머니는 지은이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말했어요.


 "그래도 괜찮을까요는 무슨. 지금껏 밥도 못 먹었을거 아니여~ 찬은 없어두 좀 먹고 가."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는 부엌으로 들어갔어요. 방 안에서 조용히 앉아있던 지은은 아까 봤던 아이의 모습을 떠올렸어요.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걸까...'


 밤마다 항상 별을 바라보며 즐겁게 얘기 나누던 아이의 모습과는 다른 차가운 모습. 지은은 자꾸 그 모습이 마음에 걸렸어요.



 탁-



 밥상 내려놓는 소리에 지은은 잠시 나가셨던 정신이 돌아왔어요.


 "왜 그려~ 뭔 일 있어?"


 할머니가 숟가락을 건내면서 말했어요.


 "아, 저 사실은..."


 지은은 할머니에게 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어요. 한참 이야기를 듣던 할머니는 물 한 잔 마시고는 입을 열었어요.


 "그 아이 가까이 하지 마."


 "네에?"


 "가까이하지 말어. 무서운 애야..."


 할머니는 숟가락을 놓으시고 말을 이어갔어요.


 "저승사자야. 저승사자가 분명해."


 예기치못한 할머니의 말에 지은이는 당황했어요.


 "저, 저승사자라뇨?"


 "얘기 못 들었어? 아이구... 그 애 밤마다 맨날 이상한 소리 안 혀?"


 지은이도 밥 먹는걸 멈추고는 할머니의 말에 경청했어요.


 "그 애는 저승사자야. 그 애가 밤마다 우리 노인네들 집을 돌아다녀."


 "저, 할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할머니는 언성을 높여 말했어요.


 "저승사자야! 저승사자! 그애가 간 밤에 지나가고 나면 사람들이 죽어! 다 죽었어! 저번 감나무 집 할머니도 그렇고!"


 감정이 격했는지 할머니는 가쁘게 숨을 내쉬었어요. 놀란 지은이는 서둘러 할머니를 부축했어요. 할머니는 지은이의 손을 붙잡았어요.


 "그래도... 저승사자가 나쁜 것만은 아닐거야... 그치?"





*

 지은은 평소와 같이 모든 집들의 진료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어요. 오늘도 청명한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거렸어요.


 '저승사자라...'


 지난 밤 할머니가 해주셨던 얘기가 떠올랐어요. 아이를 저승사자라 부르며 흥분했던 할머니. 혹시나 싶어 오늘 진료하며 다녔던 어르신들에게도 아이에 대해 물었어요.


 "저승사자임이 분명해...죽음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거야..."


 "그냥 모른 척 해. 이 늙은이들만 있는 마을에 부모없이 오빠랑 단 둘이 사는 앤데.. 그냥 가까이하지마. 지은이 너는 아직 젊잖아."


 사람들 모두 하나같이 아이에 대해 이상한 소문을 가지고 있었어요. 저승사자라니 가까이하지말라니. 지은이의 눈에는 그저 착하고 귀여운 아이였어요. 물론 그 때 집 앞에서 마주쳤던 모습을 제외하면 말이에요.

 지친 몸을 이끌고 걸어내려 오는동안 아이와 함께 별을 봤던 장소로 가보았어요. 하지만 오늘은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어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갖은 풀들만 흔들리고 있을 뿐 조용했어요. 좀 더 기다려볼까 하고 생각했지만 섬뜩한 바람이 불어오자 서둘러 그 곳을 나왔어요.

 골목을 돌아 마지막 거리를 걸어내려 올 때  할아버지 집에서 나오는 아이의 모습을 보았어요.


 "어? 얘야!


 지은이 부르는 소리에 아이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어요. 아이의 손에는 병이 들려있었어요. 그리고 그 병에는 빨간 구슬들이 가득차 있었어요.


 "저, 오늘은 별 안보니?"


 지은이 어색하게 미소를 짓고 물었어요. 하지만 아이는 서둘러 어둠속으로 몸을 감춰버렸어요.


 "어어 잠깐..."


  지은이는 아이가 사라진 곳을 향해 뛰려다가 멈췄어요. 골목길에서 자신을 무섭게 노려보던 그 때의 기억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그저 멍하니 그 어둠속을 응시했어요. 지은이는 아이가 나왔던 할아버지 집을 흘깃하고 보았어요. 할아버지는 잠이 드셨는지 불이 꺼져있었어요. 지은은 고개를 살짝 젓고는 발걸음을 뗐어요.





*

 "아이고- 아이고-"


 "에휴... 갈 때 되서 간거야... 갈 사람은 가는거야..."


 할아버지 집 앞에서 사람들이 모여 저마다 슬프게 말을 주고받았어요. 그 틈에 있던 지은도 두 손으로 입을 막고 흐느꼈어요.


 "하, 할아버지...흐흑..."

 할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는 잿빛색 가득한 인상으로 얼굴색이 좋지 않아보였어요. 하지만  매일매일 찾아가면서부터 점차 활기를 띄던 할아버지였어요. 수 년 전 죽은 딸 생각이 난다며 누구보다도 자기를 아껴주었던 할아버지가 싸늘한 시체가 되어서 아침을 맞이했어요. 전 날 함께 웃으며 얘기를 나누던 할아버지가 하루 아침에 이렇게 될 거라 생각도 못했어요. 지은이는 그저 아무 말도 못하고 주저앉아 울고만 있었어요.


 '할아버지,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지은은 눈물을 흘렸어요. 이따금씩 이 집에서 나오던 아이를 만났던 전날 밤의 기억이 떠올랐어요.


 '분명 어제... 설마... 아닐거야...'


어젯밤 생각에 갑작스레 소름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어요.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어요. 눈물 사이로 새는 불쾌한 불암감을 꾸역꾸역 삼킬 뿐이었어요.

 



 

*

진료를 마친 오늘도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요. 밤하늘에 이렇게 별이 예쁘게 빛나고 있는데, 평소였으면 자기에게 기대서 별들을 가리키며 이야기를 할텐데. 그리고 의문의 소문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할텐데. 왜 하필 그 날, 그 할아버지의 집에서 나왔는지 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볼텐데. 깨끗하고 더러운 생각을 마음속에 품으면서 지은은 공허한 자리를 바라보면서 마을을 내려갔어요.


- 으으으.. 으으으으....


 골목 너머로 누군가의 신음소리가 들려왔어요. 지은은 화들짝 놀라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갔어요. 녹색기와 집 할아버지가 계신 곳에서 신음이 들리는 듯 했어요.


 '서, 설마?'


 지은이는 다급하게 집으로 들어갔어요. 아니나다를까. 방 문 너머로 누워 계신 할아버지는 입에 거품을 문 채 멀어진 동공으로 천장을 주시하고 있었어요.


 "하, 할아버지!!!"


 지은이는 누워계신 할아버지를 일으켜 세웠어요. 할아버지는 가벼운 피를 토해내며 지은을 향해 고개를 돌렸어요.


 "지, 지은아..."


 "흐흑, 하, 할아버지~ 이게 무슨 일에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



 할아버지는 조용히 눈을 감고 지은이의 손을 잡았어요.


 "크흐흐흑- 내... 내가, 내가 그런거, 야... 네 잘못 아니야... 크흐흑-"


 지은이는 감싸안고 있던 할아버지를 옆에 기대고 의료가방을 열었어요. 하지만 할아버지가 힘없는 손으로 막았어요.


 "흐흑, 왜, 왜 그러세요? 흑, 내가, 내가 다시 봐볼게요. 제가 오늘 처방해드린 약이 잘못된거에요? 아아.. 그럴 일 없을텐데, 흑- 죄송해요 흐흑, 병원에 가요! 일단은 할아버..."


 "크으읍- 아, 아니야... 아니야... 내가 내, 내가 그러라고 했어..."


 "으으흑- 그, 그러라고 하다니요? 무슨 말씀이세요?"


 "내, 내가... 그러라고 했어. 내가, 그러라고 했어..."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점차 잦아들자 지은은 더욱 큰 소리로 말했어요.


"아, 안돼요!! 할아버지!!!"


 하지만 할아버지는 더 이상 지은이의 말을 들을 수가 없었어요. 힘 없이 늘어진 할아버지를 부여잡고 지은이는 울었어요.


 "으흑- 죄송해요... 흑흑. 죄송해요..."


 지은이의 울음소리가 방 안에 가득했어요.



 드르륵-



 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어요. 지은이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어요. 그 곳에는 아이가 손에 병을 들고 서 있었어요.


 "너.. 너, 너는?"


 아이는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짓고서는 지은에게 다가왔어요.


 "언니. 제가 그런거에요..."


 "?????"


 아이는 손에 들린 병을 보여주었어요. 빨갛게 색을 드러낸 구슬들이 가득 차 있었어요.


 "내, 내가 할아버지에게 이걸 먹였어요."


 아이의 말에 어리둥절한 지은은 울음섞인 목소리로 말했어요.


 "무, 무슨 말을 하는거야..."


 "할아버지는 매일 밤마다 괴로워 하셨어요... 하루라도 편하게 자는 날이 없는 것 같았어요..."


 아이는 조용히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어요. 그리고 할아버지의 얼굴을 쓰다듬었어요.


 "너, 너 지금 대체 무슨... 무슨 말을 하는거야?"


 "이거는 편하게 눈 감을 수 있게 해주는 구슬이래요. 그래서 편하게 보내드렸어요."


 아이의 말에 지은은 놀라며 말했어요.


 ""얘야.. 대, 대체 무슨 소리야!!"


 "언니도 알잖아요... 할아버지 매일매일 힘들게 버텨왔다는거..."


 뒷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벙쩌진 지은을 바라보며 아이는 말을 계속 이어갔어요.


 "그래서 편하시라고... 제가 구슬을 드렸어요... 할아버지도 흔쾌히..."


 아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은은 있는 힘껏 병을 손으로 내리쳤어요. 아이는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어요.


 "어, 언니?"


 "세상에.. 너 지금 대체..."


 지은은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켰어요. 그리고 아이를 바라보았어요.


 "지, 지금 이.. 이 상황이 이해가 안 가... 혹시 저번에 할아버지 돌아가신 것도 네, 네가?"

 아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너, 너 대체 뭐하는 애야!!! 대체 뭐하는 애냐고!!!"


 마을 사람들이 수군댔던 그 얘기가 떠올랐어요. 저승사자..


 지은이 소리치자 아이의 큰 눈동자에 눈물이 고였어요.


 "나, 나는... "


 아이는 울먹이기 시작했어요. 지은은 당장이라도 손을 올려 아이의 뺨을 때리려고 했어요. 하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버렸어요.


 "너... 너는... 대체..."


 "내, 내가 뭘 했다고 그러는거에요! 좋은 곳으로 보내준거야!! 좋은 곳으로 보내준거라고!"


 아이는 울음섞인 괴성을 지르며 말을 이어갔어요.


 "언니, 언니는 몰라!! 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게 하루를 버텨오며 지내고 있는지! 언니는 알아? 언니가 가고나면 새벽마다 신음소리가 곳곳에 가득하고... 억지로 안아픈척 살아가는 사람들 마음을 아냐고!"

 오열하는 아이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가득차 흘러내리고 있었어요.


 "다들 정말 힘들게 살고있다고!근데 왜 이렇게까지 살아가야 하는건데! 그냥 아무런 고통도 없이 행복하게 지낼 수 는 없는거야? 언니도 그랬잖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싶다고!"


 아이의 말에 지은은 대답했어요.


 "그래! 그러니까 내가 여기 온거잖아... 이렇게 모두에게 희망을 주려고 하고 있잖아."


 "그게 아니야!  왜 행복하게 살라고 하면서 이런 거지같은 생활을 강요하는건데!  왜 자꾸 헛된 마음을 심어서 살아가게 만드는건데! 왜 자꾸 편하게 가려 하는 사람들을 거짓된 희망으로 살리려고 하냔 말이야!"


 아이의 말에 지은은 말문이 턱 막혔어요. 아이는 조용히 누워있는 할아버지를 바라봤어요. 그리고 다시 지은에게 고개를 돌렸어요.


 "별이 되게 만들어준거야. 저 밖에 별들을 봐. 우리 마을 사람들의 별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고... 죽은게 아니야. 별이 되서 이 마을을 지켜보고 있는거라고!"


 "이, 이상한 소리 하지마..."

 지은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어요.


 "언니 떄문인거야... 다 언니 때문인거야!  마을 사람들이 편하게 갈 수 있게 하는걸 막은거야. 그건 나쁜거야! 괴롭히는거야!"


 아이가 소리쳤어요.


 "나... 나는 별이 되게 할거야! 모두 슬픈 것도 아픈 것도 없는 곳에서 빛나게 만들거라고! 이런 세상에서 아파하지 않게 구해줄 거라고!"


 말을 마친 아이는 병을 챙기고 집 밖으로 나갔어요.  홀로 남겨진 지은은 멍하니 바닥을 쳐다보았어요.


 '그, 그게 아니야...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단호하게 아니란 말을 전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에 그저 한숨만 나왔어요. 믿기지 못할 이 상황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머리를 쥐어박으며 눈물을 흘렸어요. 순수하도록 무서운 아이의 말에 말문이 막힌 자신이 한심했어요.


 '사람들 모두... 희망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거야. 다들 그렇게 원해서 살고 있는거야...'


  지은은 스스로 마음을 다독였어요. 천천히 마음을 진정시키면서도, 아이가 그간 무수히 사람을 죽여왔을 거라는 생각에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도 했어요.  더 이상 내가 알던 예쁜 아이가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마을 소문의 저승사자도 아니었어요. 그냥 살인자일 뿐이었어요. 어디에도 하소연할 데 없는 살인자일 뿐이었어요.





*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밖으로 나왔어요. 아직 해가 뜨지 않았는지 주변은 어둠으로 가득했어요. 새벽공기가 칼칼하게 지은의 목에 들어왔어요.

지은은 조사받을 적에 아이의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어요. 자신의 말을 믿어줄 것 같지가 않았어요. 황당하다 못해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자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볼 것 같았어요. 얘기를 꺼내지 않은게 잘 된 일이었을거에요. 또 한편으로는 아이에게 왠지 연민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헛된 희망이라...'


 지은은 아이가 했던 말을 곱씹었어요. 마치 자신을 위선인양 얘기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어요. 내가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 한 행동이 정당하다라는 무언가가 필요했어요. 사람들 모두 희망을 품고 살아가고 있을거라 의심치 않았어요. 내가 온 이후로 마을이 활기를 띄고 아팠던 마음도 상처도 모두 치유되가고 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어요. 지은은 차를 타고 곧바로 '정다운 마을' 로 향했어요.


 동이 트기 시작했지만 마을의 모습은 음침하기 짝이 없었어요. 햇살을 머금고 집들 모두 붉은 기색을 드러냈지만 문 안쪽 너머에는 어두컴컴한 그림자들만 드리누워 있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아이의 말처럼 곳곳에서 알수 없는 신음소리들이 들려왔어요. 지은이는 차에서 내려 천천히 길을 올라갔어요.

 제일 처음 도착한 곳은 푸른지붕 집 할아버지네 였어요. 아침에 제일 먼저 찾아들 때면 의자에 앉아서 지은이를 기다리고 있는 할아버지. 지은이가 오고난 뒤로 다리를 움직이기 편해지셨다면서 좋아하던 할아버지.

 지은은 담장 너머로 집 안을 보았어요. 그 곳에는 할아버지가 힘든 몸을 이끌고 바닥에 기어가고 있었어요.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고, 거친 숨을 쉬면서 할아버지가 기고 있었어요. 지은이 방문할 시간까지 한 시간 넘게 남아있는데 벌써 할아버지는 의자를 향해 기어가고 있었어요.


 "으.. 으윽..."


 짧은 신음과 함께 기고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지은은 말문이 막혔어요. 


 "아..아아..."


 혹여나 자신의 소리가 들릴까 두 손으로 입을 꼭 부여막고는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았어요. 할아버지는 발 한걸음만큼 기어가서는 쉬고, 다시 기어가서는 쉬고를 반복했어요. 지은은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어요. 매일 아침마다 항상 의자에 앉아서 자신을 기다리기위해, 기어왔을 거라는 생각에 눈가에 눈물이 고였어요.


 '할아버지... 다 나으셨다면서요..흑. 이제 움직이기 편하시다면서요..흑..'


 지은은 더 이상 울음을 참지못하고 녹색기와 집을 나섰어요.

 그 다음으로 발이 머문 곳은 판자 집 할머니네 였어요. 이제 신음소리 낼 아픔도 없다며 자기와 얘기할 적에는 항상 웃음만 보여주던 할머니였어요. 하지만 판자집 근처에도 가기전에 멀리서 신음소리가 들려왔어요.


 "으윽- 흐으윽- "

 지은이는 조심히 집 가까이 다가갔어요. 가까이 다가갈수록 날카로운 신음소리가 계속해서 귓가에 맴돌았어요.


 "으으윽- 으으으으윽-  죽고싶어... "


 날카로운 고통에 박혀있는 듯 할머니의 신음소리는 멈추질 않았어요. 지은이 알던 할머니가 아니었어요. 아픈게 다 나았다고 웃음만 짓고 있던 그 할머니의 모습이 아니었어요. 지은이는 터져나오는 울음을 삼켰어요. 할머니의 증세는 전혀 나아진 것 같지 않았어요. 아니 오히려 처음 봤을 때 보다 더 신음소리가 거칠었어요. 목소리에 생기가 묻어 나오지 않았어요.




 언덕집 아주머니네 집으로 갔어요. 지은을 만난 이후로 고통없이 밤새 잠을 잘 잘 수 있게 되었다면서 기뻐하던 아주머니였어요. 지은이는 조용히 문 근처로 다가갔어요.


 "여보- 흑.. 오늘도... 밤 샌거야...?"


 "흐으윽- 응...갈수록 여기 가슴이 막 아파와... 더는 힘도 없어... 이제.. 갈 때가 됐나봐..."


 집 너머로 아주머니와 남편의 소리가 들려왔어요. 두 마디의 대화 뒤에는 긴 침묵만 있을 뿐이었어요. 지은이는 그 침묵 사이로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어요. 한 동안의 긴 침묵을 깬 것은 남편의 말이었어요.


 "죽자... 여보."

 "흐흐흑..."


 "언제까지 이러고 살거야... 그냥 우리 같이 죽자... 편하게..."


 "흐흑... 흑..."


 "죽으면 편할거야...억지로 살아갈 필요 없어..."


 "흐흐흑...."






*

어느덧 아침이 되었는지 산 너머로 해가 얼굴을 내밀었어요. 지은이는 다급하게 마을을 내려오며 소리를 질렀어요. 아까본 광경들을 지우려는 듯 크게 외쳤어요.


 "아, 아니야...아니라고! "


 아침부터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이 다행히도 지은이의 외침을 조용하게 감싸주었어요. 덕분에 지은이는 마음놓고 소리를 지를 수 있었어요.


 "아니야! 헛된 희망같은게 아니라고! 분명 나아지고 있었어 모두들! 분명 희망을 품고 있었어!"


 지은이는 눈물을 토해내면서도 지난 마을에서의 일들을 떠올렸어요. 자신을 향해 웃어주던 할아버지, 할머니, 아주머니, 아저씨. 내게 고맙다며 손을 건냈던 그 수많은 따뜻한 손. 마을에 와줘서 고맙다며 힘내고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던 모두들.


 '모두 살아가려고 한거잖아요? 흑- 그렇죠? 그런거잖아요?'


 지은은 몇번이나 물었지만 대답해 줄 수 있는 이가 없었어요. 지은은 한참을 뛰다 아이와 함께 별을 바라보던 장소에 도착했어요. 밤하늘이 아닌 아침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아보였어요.


  '나 때문에 그랬던 거에요?'


 지은이는 자기를 딸처럼 여겨주던 마을 사람들을 생각했어요.


 '내 앞에서 그냥 아프지 않은 척 했던거였어요? 그냥 마냥 예쁘고 착해보여서 그랬던거에요?'


 지은이는 숨찬 가슴을 두 손으로 두드렸어요.


 '그냥 마지막 길... 마지막 가시는 길을 겸허히 기다리고 계셨던 건가요?'


 




 -왜 자꾸 편하게 가려 하는 사람들을 거짓된 희망으로 살리려고 하냔 말이야!






 아이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지은은 고개를 돌렸어요. 하지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그랬던.. 건가요? 제가 당신들에게 헛된 무언가를 품어주려고 했던건가요.'


 지은이는 한동안 멍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어요.


  "흐...흐흐흐..."

 그리고서 지은은 어이없는 실소를 터뜨렸어요.


 "모두... 살아가려고 한게 아니에요? "


 지은은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어요. 햇살 가득한 하늘은 별들이 모두 몸을 숨겼는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지은은 옆에 있던 돌멩이를 주워 하늘을 향해 던졌어요.





*

 지은이 마을을 떠난지 한 달이 지났어요. 이제는 마을 사람들 모두 지은이를 옛 기억의 한 켠에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었어요. 간혹 지은이의 생각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헛된 불씨를 갖게 될까 지워내기 바빴어요. 잠시나마 염치없이 기대했던 희망에 부질없음을 알게된 사람들은 모두 조용히 각자의 집에서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이는 밤 하늘을 바라보면서 별을 세고 있었어요.


 "저 별은 녹색기와 집 할아버지 별. 히히. 거기는 편안하죠? 아픈거 하나두 없구? 할아버지별 예쁘다~ 막 빛나!"


 그리고는 산 중턱에 숨어있는 별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어요.


 "정씨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별이 되서도 부끄럼 타는구나? 헤헤."


 별을 보며 신나하고 있는 아이를 향해 누군가가 걸어왔어요. 아이의 앞에 걸음을 멈추자 아이는 고개를 들었어요.


 "어? 오빠! 오빠다!"


 사내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같이 옆에 앉았어요.


 "별 보고 있었어?"


 "응- 오늘은 녹색기와 집 할아버지 별이랑 정씨 할아버지 별 찾았어."


 사내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미소를 지었어요.


 "응? 그랬어? 잘했어."


 아이는 오빠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오빠의 품 속에 꼬옥- 하고 들어갔어요.


 "오빠..."


 "응 왜?"


 "우리 마을 사람들. 저기 하늘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겠지?"


 "그럼. 당연하지."


 아이는 말을 끝내고는 울먹였어요. 그러자 사내는 아이를 힘껏 안아주고 등을 토닥거렸어요.


 "우리 동생 예쁘다! 조금만 더 하면 돼~"


 사내의 말에 아이는 훌쩍거렸어요. 그리고 품에서 나와 사내의 눈을 바라보았어요.


 "마을 사람들 모두 저 별이 되고나면. 이제 이 곳은 어떻게 되는거야?"


 사내는 사랑스러운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어요.


 "이렇게 힘들고 아픈 마을은 없애버릴거야. 큰 아파트도 들여오고 신나는 놀이터도 생기고. 맛있는 데도 많이 생길거야."


 사내의 말에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어요.


 "그러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거야?"


 아이의 말에 오빠는 다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어요.


 "물론이지. 모두가 행복해할거야. 마을 사람들도 모두 우리를 보며 반짝거려 줄거야. 더 이상 아픔도 슬픔도 없을거야. "


 아이는 그제서야 미소를 띠었어요.


 "이제 사람들 모두 힘겹게 살지 않아도 되는거야?"


 "당연하지. 사람들 모두 저 별이 되서 우리 모두를 지켜줄거야. 그리고 이 곳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살게 될거야. 모두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거야."


 "헤헤. 그러겠지? 신난다.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나도 좋아!"

 아이는 다시 오빠의 어깨에 기댔어요.



 "오빠..."


 "응?"


 "별...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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