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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복수
게시물ID : panic_803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pupa
추천 : 10
조회수 : 1459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5/06/01 02:28:37


타닥.타닥.
흩날리는 재가 허공을 비상한다.
타오르는 불꽃은 순간의 광음을 온 몸 가득 표출하고 이내 어둠 속에 묻힌다.



씨익.
깊은 어둠 속, 타오르는 불꽃 사이로 한 남자의 입가가 보인다.



기쁘다. 기쁘다.
이 모든 게 제물이 되겠지.


타오르렴, 활활활 타오르렴.
내 생을 벗삼아 찬란하게 타오르렴.
너마저 빛나주지 않으면 난 웃지 못할 테니.











남자는 평범했다.
돈많은 집의 자식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가난한 집의 자식도 아니었다.
키도 보통, 체형도 보통, 인상도 보통.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남자였다.



이 남자가 평범하지 않게 된 건 단지 우연에 불과했다.



남자와 똑같이 평범한 삶을 살아온 여자를 만나 가정을 꾸렸고
둘의 아이를 뱃속에 품고
기대하고 걱정하고 설레고
평소와 똑같은 하루를 보낸 날.



남자의 삶은 여느때와 달라진 게 없었지만
침범해온 무언가에 모든 게 무너졌다.



뺑소니.
만약 바로 신고했다면 살았을까?



이 남자가 몇백번을 고민해온 문제를 법은 너무나도 쉽게 답을 냈다.
한 여자를 죽였다.
한 아이를 죽였다.
다만 우린 평범했다.
죽인 이는 평범하지 않았다.
그 차이였지만 그게 컸다.



평범한 사람. 평범한 인맥. 평범한 능력.
온갖 글을 올리고 미친 척하고 주목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다 묻혔다.



평범한 남자는 생각했다.
이건 안 돼.
이길 수 없어.
그렇지만 뭐라도 해야 해.



평범했던 남자는 평범하지 않게 되었다.
어떻게든 갚고 싶었다.
어느 순간 목적과 수단이 불분명해졌다.
그렇지만 방법이 없었다.



남자는 수단을 바꿨다.
영혼? 죽어봤어야 알지. 모른다.
하지만 이대로 살아봤자 평생 갚지 못할 텐데.
차라리 가능성 있는 쪽으로 가고 싶었다.

고통스러운 죽음은 한을 남긴다던데,

현세에서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돈과 권력에 구애받지않을 존재가  되어 나타나리라.










불을 태우자.
내 모든걸 태우자.
어차피 떠나갈 것을.
커다란 화롯불을 마련하고 떠나가자.



타닥.타닥.
재가 타들어간다.
흩날리는 재가 허공을 비상한다.



씨익.
깊은 어둠 속, 타오르는 불꽃 사이로 한 남자의 입가가 보인다.



기쁘다. 기쁘다.
이 모든 게 제물이 되겠지.



타오르렴, 활활활 타오르렴.
내 생을 벗삼아 찬란하게 타오르렴.
너마저 빛나주지 않으면 난 웃지 못할 테니.



반드시 갚아주고 말터이니, 불조차도 기쁘구나.











눈을 떴다.
천장이 보인다.
여긴 어디?
아,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구나.



오늘은 중요한 날인데.
내 생을 태워 삶을 제물삼아 떠나야 할 길인데.



주섬주섬 일어나 마당에 나무를 쌓는다.
이정도면 충분히 타겠지?



어둑어둑해지고
나무를 태우고
남자는 걸어들어간다.



기쁘다, 기쁘다, 내 생을 벗삼아 찬란하게 타오르렴.











눈을 떴다. 여긴 어디?
아. 중요한 날이야.
나무를 쌓아야지. 찬란하게 타오르렴.



어디지? 아, 타올라야지. 불타야지.





















..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는걸까?
내 수명만큼?



자살하면 남은 삶만큼 반복된다던데,
그래서그래?
이유가 있어도?
죽어서도 못벗어나?

이게 현실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목적 과정 하등 필요없구나.

죽어도 똑같구나.

그래, 귀신도 애초에 사람이야.

사람이 모인 세상에 불합리하지 않은게 존재할리가 없지.











그렇구나.
응. 타러가자.
태우러 가자.
삶이든 목숨이든 한이든 슬픔이든
태우러 가자.
뭐가 남든 남겠지.

죽어도 세상은 똑같구나.









서글프고, 서글프다.

억울하고 원통할 뿐인데,





그저. 사과 하나만 받고 싶었을 뿐인데.

출처 자살의 업은
남은 생의 시간만큼 반복된다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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