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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성희롱
게시물ID : panic_8038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pupa
추천 : 11
조회수 : 3110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5/06/02 17:3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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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는 침대에서도 이래?"


"네?"


"아니, 침대 위에서도 이렇게 쑥쓰러워하나 궁금해서."


"..."


"또 바로 새침떨기는. 그래, 그래. 농담이야, 농담.

이렇게 순진해서 어떻게 살려그래."



툭.툭.

엉덩이에 닿는 손이 소름끼친다.


토닥이는 손가락 끝의 감촉에 욕지기가 밀어오른다.

의도적인 손놀림에 눈에는 핏발이 차고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망상이 떠오른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표출하지 못한다.

치밀어오는 욕 대신 입을 꼭 다물고,

핏발선 눈은 웃음으로 감춘다.

내게 닿는 손길을 거부하는 것조차, 조심스럽게 기분 상하지 않게

인사하며 떠난다.








"자,자. 건배!"


"건배!"


주고받는 술잔 사이로 웃음이 피어오른다.

웃음에 웃음으로 답하며 잔을 비운다.

스리슬쩍 다가오는 손길을 티나지 않게 거부하며 잔을 비운다.


술맛이 아무리 써봐야 이것보다 쓰랴.

온몸가득 차오르는 불쾌감을 술의 쓴맛으로 위장하며 다시금 잔을 비운다.

테이블위의 병이 쌓여갈수록 쓴맛이 차오른다.

몸 여기저기 닿는 손길이 노골적으로 변한다.

다시금 웃음으로 위장하기 위해 술잔을 비운다.

그 자체가 한스러워 다시 술을 마신다.




깔깔깔깔.

웃음소리가 울려퍼진다.


"좀 제대로 해 봐. 돈 받기 싫어?"


노골적인 웃음에 멈칫한 것도 잠시 돈얘기가 나오자 다시금 몸을 움직인다.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웃는 소음에 맞춰, 주머니에 나오는 돈에 맞춰,

이리저리 몸을 흔들어댄다.


술에 취해, 분위기에 취해,

지갑에서 나오는 돈에 취해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아양을 부린다.

바닥을 기고, 테이블 위에 올라가 얼굴 가득 웃음을 짓는다.


"자기, 기분 상한건 아니지?"


들려오는 목소리는 질문.

딸려오는 돈은 강요.

파란색, 노란색 지폐를 한가득 품에 안고 얼굴 가득 미소를 짓는다.

겨우 이정도에 기분이 상하랴.

몸안가득 풍겨넘치는 취기에 취해 다시금 아양을 피운다.







반짝. 반짝.

술에 취해 한순간 정신을 놓았음이라.

자신을 깨우는 밝은 빛에 눈꺼풀을 들어올린다.

아아. 침대구나.


"일어났니? 잠시만 가만히 있으렴."


들려오는 목소리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어디에도 묶여있지 않건만 몸은 보다 더한 것에 묶여있지.

울려퍼지는 플래쉬 소리를 음악소리처럼 들으며 내 몸을 놓는다.

이미 내 것이 아닌 몸을 어찌 잡아둘 수 있으랴.




한참을 울려퍼지던 카메라 소리가 사라지고

따뜻한, 그러나 한없이 차가운 체온이 다가온다.


"자기. 걱정하지마. 자기 동생은 내가책임질테니까."


그래, 책임져야지.

배운것없고 가진것없는 내가

쓸수있는 거라고는 이 몸뚱아리 뿐이니.


내겐 전재산이지만 너에게는 유흥일테니.

책임져야지.


차가운 체온을 감싸안으며 눈을감는다.

괴로워하며 피를 토하는 동생이 떠오른다.


걱정하지 말려무나.

능력없는 나지만, 나를 놓고 너를 구할테니.

재능과 돈만이 능력이더냐.


내게 남은 귀한 건 너뿐이거늘,

네가 아닌 모든걸 너를 위해 주었다고 부디 탓하지 말거라.

이까짓 것 아파하지 않고.

웃는 널 보기 위한다면 그 또한 아무것도 아니니.




다시금 떠오른 동생의 창백한 얼굴에

몸에 닿은 차가운 체온을 감싸안는다.


날 감싸안은 그대를 보며,

부디 내가 웃길.

그래, 그렇게.


노골적인 손짓에도 기뻐하며 웃길.

부디 웃음으로 보이길.




당신에게는 능력이 있지.

내가 가지지 못한, 그토록 원했던 내 사람을 살릴 능력이.

그것 하나만으로

당신이 행하는 모든 일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툭.

호숫가 위로 나지막한 소리가 들린다.

파란 호수. 하얀 꽃.

예쁘구나.

어여쁘구나. 마치 너처럼.


수술비도 냈다.

유명한 의사도 동참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넌 떠났구나.


다시금 툭. 하나 더 툭.

흘러가는 물결에 꽃은 쌓이지 않지만

내 마음은 흘러가지 않고 쌓이는구나.








연락이 없다.

그래, 그렇게 장담해놓고 염치없기도 하겠지.


전화를 건다.

따르르릉 소리와 울려퍼지는 목소리.


"여보세요"


그래. 여보세요.

머뭇머뭇거리는 소리에 절로 치밀어 오르는 웃음을 뒤로 한채

진심을 꺼낸다.

가로막고 있던 벽에 막혀, 얘기조차 하지 못한 진실을 꺼낸다.


이젠 나를 위해 살고 싶다.

소중한 사람때문에 의견조차 내세우지못했던건 다신 하고싶지않다.

이제 세상에 남은 가장 소중한 건 나니까

나를 위해 살고 싶다.

그래서 당신을 만나고 싶다.


그렇지.

난 내 욕심대로 아무것도 못했지.

시키는대로만 했었지.

허나 이제 그럴 이유가 없으니.


세상 가장 소중한 건 나야.

그리고, 그 다음 소중한 건 당신이지.

부디 만나주겠어?







약속을 잡고 기다린다.


이제 하고싶은대로 살아야지.

날 얽매던건 다사라졌으니, 내키는대로 살아야지.




만났다.

술을 마셨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거라 생각했는지,

예전같은 과한 요구가 없다.


그래도 돈은 줬다.

파란색, 노란색 지폐를 한아름받았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침대다.

평소와 달리 나에게 술을 먹이지 못했기에 정신은 멀쩡하다.

아니, 이미 나는 취해있겠지만

겨우 술에 취함을 취했다고 빗댈쏘냐.

마시기 이전에도 이미 취해있었거늘.



나에게 먹이지 못해 평소보다 술에 취했나 보다.

헤롱거리는 눈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우리 색다른 거 해볼까?"


뭐,어떤가.

이미 이 세상에 나말고 지킬 게 없어졌는데.

까짓거 가볼만큼 가봐야지.


하얀 턱을 부여잡고 키스를 한다.

넘치는 타액을 핥아내고, 다시금 혀를 가져다 댄다.


"이제 날 위해서 살아볼려고. 도와줄꺼야?"


끄덕거리는 고개를 보며 살풋 미소짓는다.

넥타이를 끌어내려 손을 묶는다.


벗어나지 못하게.

꽁꽁 싸놓는다.

그리고, 감상한다.


의자를 침대 근처로 끌어다 웃으며 지켜본다.

끙끙대는 모습을 유쾌하게 지켜보며,

시끄러운 소리가 나올 때마다 손을 들어 내리친다.


날 바라보는 눈 안에 물기가 고인다.

아. 이런 느낌이구나.

어느 부분은 당신을 이해할 거 같아.

이거 괜찮네.

더 보고 싶어.

재미있구나. 이런 것도.

손 가득 힘을 주어 휘두른다.




철썩. 철썩.

하하하.



철썩. 철썩.

하하하하하하하.



그렇구나. 이 재미인거구나. 당신이 왜 했는지 이제 알겠어.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하.



근데 이제 좀 질리네.

난 역시 당신과는 다른가 봐.




자리에서 일어난다.


애초에 하고 싶었던 건 따로 있지 않겠는가.

얽매일 것도 만류할 것도 없으니

이젠 나를 위해 살아봐야지.

감정대로 따라가야지.

처음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쓱싹,쓱싹.
쓱싹,쓱싹.


다행이야. 내 말을 믿어서.

다행이야. 내가 지었던 그때의 웃음을 어설프게나마 진실이라고 믿어줘서.


쓱싹,쓱싹.
쓱싹,쓱싹.


그래. 하긴 그 당시의 난 진심이었으니.

당신이 은인으로 보였으니.

이깟 몸뚱아리 하나 온전히 당신에게 바치겠다 마음먹었으니.

진실이었으니 진실로 보였겠지.


쓱싹,쓱싹.
쓱싹,쓱싹.


책임지겠다며?

책임만 제대로 해줬다면

난 평생을 네밑에서 기었을텐데.

이런 추한 마음은 안봤을텐데.




깜깜한 방 안에서도 시뻘겋게 드러나는 천자락을 바라보며,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조각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술 한잔에도, 돈 한푼에도 진심으로 웃지 못했는데

이제서야 비로소 얼굴 한가득 웃음이 폈다.


말했잖아. 날 위해 해주겠다고.

수술을 당신이 집도하겠다고, 힘써주겠다고 그렇게 호언장담해놓고.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제야 살 거 같아.

사는게 사는게 아니었는데.


당신 밑에서 기어다니면서,

온갖 재롱을 피우는 것도 견딜 수 있었다.

온 몸 가득 입은 상처도 가슴에 맺힌 상처에 비하랴.

견딜 수 있었다.


당신은 당신의 능력과 돈.

나는 내 몸뚱아리.

우리는 거래했다. 필요한 걸 나눴으니 부당한 게 없지.

허나 그 거래를 어긴 건 당신.

지키지 못한 것도 당신.


내게 가장 소중한 건 그 아이.

그 다음으로 소중한 건 나.

하나가 떠났으니 남은 하나가 날 차지했지, 잠식했지.





더러워진 몸도, 굴러다니는 몸뚱아리도 무섭지 않았다.


그저 너에게 너무 속박되었던 것 뿐.

너는 나를 교육했고 나를 만들었다.


내가 생각도 못한 일을 경험하게 하고, 이리저리 끌고 다녔지.




몸은 멀쩡한데 정신이 망가져서,

못된 생각을 했다.

아파서 창백해진 동생을 보며 웃으며 진심을 감췄다.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어.

어차피 오래 못산다는데 넌 언제 죽을까.

부디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


생각했다.

생각하고 생각했다.


차라리 죽었으면.

네가죽으면 내가이리 살지는 않았을 것을.


내 인생의 목표는 그 아이였는데.

나에게그아이를 부정하게 만들었다.




허나 이건 네가 아닌 나의 죄값.

내가 품어야할 몫.


다만 네가 약속만 지켰다면 나조차도 속일만큼 부질없는 얘기.

이렇게 떠올릴 필요조차 없을 허망한 기억.

감춰진 진심.

네가 그 아이를 살려냈다면 다시는 떠올리지 않을 불편한 진실.

그 아이가 떠나자 내게 남은 가장 큰 죄악.




누군가를 죽여서 빨갛게 물이 든 손이

이제는 흡사 내 마음같구나.


하얀색 면포는 이미 빨갛게물들고

어둑한 방에서도 짙은 선홍빛이 드러났다.

창문을 열어놨음에도

특유의 비린내는 가시지않았고

이미 숨이끊어진 시체 앞에서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지켜주고 싶었어. 미안해."


"미안해. 죽기를 바라서.

감히 그런 마음을 속에 품어서.

미안해. 지켜주고 싶었어. 미안해."


싸늘하게 식어버린 시체를 붙잡고 하염없이 중얼거렸다.

흡사 그 시체가 너라도 되는마냥.


"미안해, 미안해. 그딴 생각해서 미안해."


"오빠가 미안해."




세상 가장 소중했던 너도,

그 다음으로 소중했던 나도,

내게 의미를 남겼던 그녀도,


다 떠났으니

남은 건 없다.




욕실로 들어가 온몸을 닦는다.

더럽고 더럽다.

저절로 욕지기가 치밀어 올라 욕실 벽을 내리친다.




하하하하...

미안해.

오빠가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래, 죽어서 다행이야.

이렇게 살기 싫었어.

너 때문에 이리 망가졌어.




미안해. 이런 생각해서 미안해.

널 살리고 싶었어.




언제쯤 죽을까. 죽어버렸으면.




미안해. 살리고 싶었어.




빨리 죽어버려.




미안해.




죽어.




미안해.




죽어.




미안해.




죽어.




머릿속이 팽팽 돈다.

아까 취한 술의 탓인가.

방 안 가득 차오른 혈향의 탓인가.

아니지, 아니지.

이미 미쳐버린 나의 탓이지.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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