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고3때 저는 대학을 가지않았습니다.
당시 내신이 3.4등급에...수능은 6~7등급대...
공부에 관심이 전혀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놀았던것도아니고....
그냥 어중간하고 이것도 저것도아닌상태로 졸업을했습니다.
20살을 어영부영 집에서 보냈습니다
히키코모리마냥..
밥먹고 게임하고 낮잠자고..
그짓을 1년을 반복하다
현역병으로 21살 1월에 입영을했고..
그리고 지금 23살 1월에..전역을하고
저는 집에들려 아버지께 하직인사를하고
집을 나왔습니다.
아버지께 독립을한다고말씀을 드렸고
아버지께선 혹여 제가 대학을갈것을 대비해서 모아두셨던
작은돈일수도있지만 제겐 너무나 큰돈인 400만원을 주셨습니다.
후에 이돈을 갚는다고 다짐한것이 생각납니다.
400만원을 들고
저는 한 사찰로 몸을 옮겼습니다.
스님이 되었다는것이아닙니다.
저는 이곳에서 조용히 공부하고있습니다.
인터넷 인강만 겨우되는 컴퓨터정도의 시설
밤이되면 별이 천지가되는 밤하늘.
낮에는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소리
이곳은 경상북도 어느 한적한 시골의 한 사찰입니다
군대에있으면서 우연히 대민지원을 나가면서
한 고시생분을 만났는데...
어쩌다보니 소개를받아서
휴가를 나왔을때 들렸다가
아무도없는 조용한 사찰에
스님 3분이서 지낸다는 이야기를듣고
아침 조공과 저녁 청소를 조건으로
한달에 싼금액으로 이곳에서 생활할수있게되었습니다.
고시원같은곳인데... 밖으로는 많이 알려지지않았더군요
사람사는데 필요한건 다있습니다..
물도 잘 나오고..화장실도 서구식이고
오랜만에 인터넷에 글을쓰려니
세삼스레 익숙치못해서
이상한말부터 많이 나오네요..
학창시절 못하던 공부를 저는 즐겁게? 할수있었습니다.
아무런 방해의 요소도없었고
그냥 아침 6시에 일어나 간단한 운동후
아침 조공을 도와드리고
8시부터 저녁까지 쭈욱 공부를합니다..
저번 6월 모의고사를 보러 근처 재수학원에 다녀왔던 기억도나네요..
독학재수였지만... 제입으로도 말하긴 좀 그렇지만
저번 6월 모의고사때는 1/3/2/2/2 등급을 맞았던 기억이 나네요..
물론... 다른 잘하는 학생들이 보았을땐 그저 그런점수일수도있지만..
이 점수를 맞기위해 4달을넘게 규칙적이고 흐트러지지않는 싸움을했습니다..
학창시절때보다 몇배는 잘하고있다는 생각도들긴합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늘 하셨던 말씀처럼
초심을 잃지말라고했던것을 잊지않습니다.
재수하면서 가장힘들었던건
저였어요...제가 싫었고 무서웠어요
또 언제 포기할지몰라서
그게제일 무서웠어요
학창시절때는.... 남들에게 비교되고
남들눈치를 보았던게 그렇게 무서웠는데..
이제는 제가 무섭습니다
이렇게까지 재수를하는이유는...
제가 하고싶은 공부를 찾았다고나 할까요..
전 나중에 제가 뭐가될지도 아직모르겠습니다.
회사에서 일을할지... 노동판에서 노동을할지
연애인이될지... 뭐가될지.....
그런데 그런거하고 상관없이
그냥 제가하고싶은 공부가생기더라구요..
막연한 목표가아니라..
학창시절때와는 달랐던
목표가생기니까
막 오기가 생기더라구요
울고싶을때 너무많았습니다
하기싫고
내가 이 나이들어서까지 이걸 왜해야하나하고요
3월 모의고사때 전과목 4등급을 맞으면서
포기할까만 수백번 수천번을 고민했지만
만번의 고민끝에 포기를 하지않았던 저를
오늘은 칭찬하고싶습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집에 들렀습니다.
글을 쓰고있는곳도 집이고요..
내일은 어머니의 기일입니다.
네.. 어머니는 제가 초등학교때 돌아가셨습니다.
많이 아프셨죠... 언제나 하교하고 집에오면.. 안방에 누워계시던
어머니의 얼굴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너무 생각납니다..
재수를 하고있지만..
제 생일은 잊을수있고, 친구들의 부름에도 잊을수있으나
사랑하는 어머니의 기일만큼은..
잊을레야 잊을수없고.. 안갈레야 안갈수없던
그런 저의 소중한 어머니와의 만남의 날입니다.
몇달여만에 보는 아버지의 얼굴은 다행이게도 잘 지내시는것같아보였습니다.
조금있으면 어머니께 인사를 올려야합니다..
어제 별똥별이 많이 나타났다는 뉴스를 오늘에서야보았습니다.
제가 그별들을 보았다면..꿈속에서나마나 어머니를
보고싶네요..
자꾸 울음이 나네요.
군대가서도 한번도 안울었는데
그냥 자꾸 .. 오늘은 한없이 약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