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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이 낳은 4명의 매드 사이언티스트
게시물ID : panic_804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천왕동하루키
추천 : 27
조회수 : 10287회
댓글수 : 26개
등록시간 : 2015/06/03 03:25:46

다소 혐오스럽게 느껴질 만한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1. 요제프 멩겔레

200full-.jpg

제 2차 세계 대전 중 인간이기를 포기한 각종 인체 실험과 대량 학살을 자행한 나치 독일의 외과 의사 겸 SS 장교.
선량한 얼굴 뒤의 흉악성으로 <죽음의 외과의>라는 별명을 얻었다.

수용소 탈출을 시도한 300명의 아이들을 그대로 화형시켜 버리면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고,
가스실에서 여자 아이가 살아남자 왜 살아남았는지 보기 위해 산채로 해부했다. 
이 밖에도 아이들 눈에 염색약을 집어넣어 눈 색깔을 바꾸기 위해 시도했고, 마취 없이 늑골을 적출하는가 하면,
멀쩡한 여성들에 각종 불임 실험을 행했다.

무엇보다 쌍둥이 실험에 열을 올렸다. 쌍둥이 실험에 열을 올린 이유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위대하고 위대한 독일 민족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함이었다. 21개월동안 1500쌍의 쌍둥이들이 이 인간의 생체 실험의 대상이 되었다. 

실험 내용이 몹시 참혹하다. 쌍둥이의 장기나 혈액을 마취 없이 교환하기도 하고, 이란성 쌍둥이의 성기를 바꾸기도 했다.
더 나아가 이들을 근친 교배 시켜 어떤 아이를 낳는지 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샴쌍둥이를 신기하게 여긴 이 사람은 평범한 쌍둥이의 신체를 자르고 접붙여 인공 샴 쌍둥이를 만든 뒤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는지 지켜 보았다. 

애초에 죽던지 말던지의 실험이었기 때문에 마취도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 피실험자 대부분은 2차 감염 등으로 고통스러워하다 죽어갔다.
이렇게 죽은 사람이 40만명에 달한다고 전해진다.

그는 말년에 편안히 휴가를 즐기다 해변가에서 심장 마비로 사망한다.


















2. 이시이 시로

사람아님.jpg

쓰레기 중의 쓰레기 학교 투 톱을 달리는 큐슈대학과 교토제국대학 중 교토제국대학 출신.
(전쟁 당시 큐슈대학의 대학생들은 미군 포로의 간을 씹어먹고, 한국인이나 중국인의 혈액을 빼고 바닷물을 주입하는 등의 실험을 자행한다. 윤동주 시인이 여기서 희생됐다는 설이 있다.)

역시 출신답게 군의관으로 복무하기 시작하며 쓰레기 실험을 하기 시작,
자신들의 실험 대상이 되는 이들을 '마루타'라고 명명하고 각종 실험에 돌입한다. 이시이 시로는 자신의 부하들을 혹독하게 세뇌시켰는데 마루타들이 어떤 비명을 지르건 어차피 인간이 아니니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마루타란 껍질을 벗긴 통나무라는 뜻이다.)

그가 저지른 만행은 아래와 같다.
혹독한 추위에 신체를 노출시키거나 얼음물에 담궈 신체가 얼마나 버티는지, 어떻게 죽어가는지 관찰했던 동상 실험.
대형 원심 분리기에 사람을 묶어놓고 피가 빠져나가고 신체가 부서지는 것을 구경했던 원심 분리기 실험.
살아있는 상태에서 마취 없이 장기를 꺼내 이것 저것 실험했던 장기 실험.

무엇보다 상하이 시내에 독가스를 살포하고 타이완 등에 콜레라 균을 퍼뜨려 경과를 지켜보는 실험을 주도했다. 
총 1600차례에 걸쳐 중국에 독가스가 살포됐고 57만명이 죽었다.

하지만 전쟁 이후 무죄 판결을 받고 녹십자의 간부급으로서 부와 명예를 가진 채 살아가다 67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충격적이게도 이 인간은 일본에서 선구자 대접을 받고 있다.
(역시 일본은 쓰레기다.)



















3. 카를 게브하르트

karl-gebhardt.jpg

게브하르트는 강제수용소에 수용된 수용인들의 신체를 이용한 외상 인체실험을 실시했다. 
주로 소녀들을 해부하면서 근육과 신경, 뼈를 추출하였는데 때로는 이렇게 절개한 상처부위의 곪아가는 상태를 보고 세균 배양액을 주입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생체실험 희생자 수만 무려 최소 8만명에 육박한다.

무엇보다 이 사람이 유명한 까닭은 독일 내 장애인 말살 프로그램인 T-4 프로그램의 창시자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독일인에 왜 장애인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그는 씨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그들의 씨를 말리는 프로젝트를 히틀러에 건의한다.

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유전적 질환을 가졌거나 장애인 자녀를 둔 45세 미만의 독일 여성들은 필수적으로 불임 수술을 받았다.
무려 40만명 이상이 강제 불임 시술의 대상이 되었다.

"어, 해보니 별로 반항을 안 하네?" 싶었던 이 사람은 이후 장애인들을 마구 잡아들여 학살한다. 장애를 가졌거나 독일인이라고 하기에 너무 못 생긴 아이들을 그냥 잡아들여 집에는 '치료 차 병원에 데려가겠습니다'라는 쪽지를 보내놓고 온갖 실험을 저지른 뒤 죽였다. 
더 나아가 1941년에는 노인 등 사회적으로 별 필요가 없는 인간들에 대한 안락사 조치를 할 것을 예고했고, 전쟁 등을 통해 장애를 얻은 참전 용사들까지 T-4 프로그램의 대상이 되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9만명이 사망했다. 
독일이 패전하자 인체 실험에 대해 추궁 당할 것을 우려한 게브하르트는 모든 인체 실험 대상자들을 죽일 것을 명령한다.
이 명령으로 60만명, 그의 일생 통틀어서는 80만명이 이 인간으로 인해 사망한다.

전 후 사형 선고를 받고 난 뒤, 악명으로 인해 처형날까지 미군들과 동료 수감자들에게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매일 맞았으며 죽는 날까지도 맞다가 반 쯤 실신한 채로 끌려와 교수형을 당했다. 유언도 남기지 못할 정도로 비참한 몰골로 죽었다고 한다.



















4. 카를 브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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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멩겔레와 카를 게브하르트의 상관이자 조언자.
T-4 프로그램과 멩겔레의 쌍둥이 실험 모두 이 인간의 조언으로 이뤄진 일이라고 전해진다.

실험 대상들이 빨리 죽여달라고 붙잡고 애원하면 더 질질 끌며 천천히 죽일 정도로 생체 실험을 즐겼다.
카를 게브하르트와 마찬가지로 사형 선고를 받았고 사형 집행 전까지 매일 두드려 맞았다. 너무 구타가 심하자 군인들을 붙잡고 "살려줘"라며 비참하게 애걸복걸했다고 한다. 역시 게브하르트처럼 유언도 남기지 못 하는 떡실신 상태로 끌려와 그대로 교수형으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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