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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박근혜 퇴진' 교사선언을 했는가?
게시물ID : sisa_5150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얼레리
추천 : 2
조회수 : 42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5/21 15:28:50
 
 
나는 왜 박근혜 퇴진 교사선언을 했는가?
 
                                                                              -  이철호 5.13 교사선언 참가자 -
 
(중략)
퇴진 선언은 대통령에게 책임지라고 호소하거나 애원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퇴진하라는 교사 선언은
우리가 이제는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희망을 우리 스스로 찾아 나가겠다는 몸부림이다
(증략)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도모한다고 취임 시에 선서했다.
그러나 그 선서가  지켜지지 않았다.
해운업 감독의 책임이 있는 정부가 그 책임을 회피하고,
기업은 이윤을 위해 승객과 노동자의 생명을 희생시킨 것이 사고의 진상이다.
게다가 구조의 과정에서 정부는 그 직무조차 게을리했다.
그렇다면 대통령에게 구조 실패의 책임을 묻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유가족들은 진실을 밝혀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그 진실을 밝혀줄 책임은 정부와 그 대표인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은 단지 상징이 아니라 최고 권위이며 모든 정보의 집결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규방송의 뉴스보다 인터넷상의 사진 한 장이 더 실체인 것으로 보인다.
불신의 유령이 그늘을 걷지 않고 있다. 이런 의심의 끝에는 결정권자가 있다.
진실은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는, 상황을 결정하는 자가 밝혀야 한다.
(증략)
 
 
세월호에는 지난 몇십 년간 진행되어온 시장화·사유화라고 말할 수 있는
외주화 된 시스템에 생명을 담보해야 하는 신자유주의체제가 함께 승선해 있었다.
사람들의 생명보다는 돈을 중요하게 여기고,
자본이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허물어뜨린 결과가,
대통령이 앞장서서 기업 하기 좋은 나라와 규제 완화를 외쳐댄 결과가 참사로 나타난 것이다. 
 
 
 
한국사회는 이미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세계화·시장화를 진행해 왔기에
이는 청해진에 한정된 문제가 결코 아니며 사회 전반에 깔린 문제이다.
세월호 참사와 철도 민영화는 결코 다른 사건이 아니다.
청년실업과 비정규노동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정부는 참사로 온 나라가 슬픔에 빠져 있는 바로 그 순간에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슬픔마저 통제하는 사회는
오로지 이 죽음에 대해서만 애도하게 하고
동시대의 다른 죽음을 떠올리는 것을 불온하게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불온하게도 또 다른 죽음들이 기억 났다.
누구도 더 이상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죽음들이.
죽는 순간까지도 남은 돈 70만 원을 월세로 남기고 간 '세 모녀'.
'함께 살자'라고 외쳤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은 벌써 스물다섯 분이 유명을 달리했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소리쳤지만 끝내 용산을 철거되었고,
 아무도 살지 않는 흉물이 되어가고 있다.
(중략)
 
 
대통령은 새로운 행정기구 신설을 말하고 있으나
세월호는 진정으로 안전한 삶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안전은 국가 기구의 통제로 확보되는 것이 아니며,
강력한 법 집행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수학여행이 문제이니 안 하는 것으로 지켜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안전은 결코 배타적이지 않다.
타자를 위험에 빠뜨리고 나만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며
내 가족만이 안전한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안전은 공동체적이며 공유하는 것이다.
안전한 삶을 위해서는 필요한 것은 '함께 살자'는 외침이다.
내가 교사 선언에 참여한 이유다. 
(중략)
교사로서 나는 교육을 통해 희망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의 신체적 정신적 발달을 가로막는 교육,
입시경쟁의 승리를 위한 서열경쟁 교육에 매달려 왔다.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하며, 진실을 보지 못하게 가리는 역할을 해 왔다.
나의 잘못에 대해 반성한다.
나는 자발적인 의지로 선언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징계 절차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전해지는 바로는 그 날
학생들과 교사들과 남은 승무원들은
이미 기울어진 배 안에서 물이 차오르는 것을 보면서도 서로를 지켜주었다.
그 절박한 상황에서도 자기만 살아남으려고 다투지 않았으며,
더 나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 누구와 경쟁하거나 밀쳐내지 않은 듯하다.
나는 여기서 절망을 넘어설 가능성을 발견한다.
인간의 본성이 경쟁이라고 더 많이 가지려는 탐욕이 본질이라고 주장한
주류 경제학이 진실이 아니며,
인간은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본의 이윤에 인간의 생명과 자연을 내맡기는 체제이지 인간 그 자체는 아니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7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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