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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7월 6일 동아일보 이영희 칼럼
게시물ID : sisa_8054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arkgray
추천 : 2
조회수 : 57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12/03 14:35:37
87년7월6일 동아일보 이영희 교수 칼럼!! 

 

조금 길지만 꼭 꼭 꼭 읽어보세요!

 

혹시 너무 길다고 느끼시면 담아두었다가 시간날 때 읽어보시고

그것도 싫으시면 마지막 두 문장이라도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많이 퍼트려주세요~ 

[김용민 브리핑에서 이완배기자 경제의 속살 듣다가 텍스트로 옮겨보았습니다.]

 

 

기회주의와 지식인

이영희[한양대교수 국제관계]

 

최근 정치의 풍향이 바뀐다 싶으니 지식인의 발언이 소연하다바람이 거셀 때는 꼼짝 않고 엎드려 풍향 침만 노려보고 있다가바람 흐름 조짐이 보이자 너도나도 뛰어 나오는 것 같다바야흐로 백화제방 백가쟁명의 시대가 도래하는 가보다.

 

텔레비전과 신문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언제부터 이 나라의 지식인들이 이렇게도 민주주의적 사고 행동 양식에 투철했으며언제부터 이렇게도 애증을 초월하여 화해와 타협과 관용의 미덕으로 살았었느냐 하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말하는 사람글쓰는 사람마다 모두가 옳고 하나도 그른 것이 없다그 박학과 경륜에는 절로머리가 수그러진다그런데 그 말과 글들이 너무나 고매하고 슬기로 와서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슬퍼지기까지 하는 것은 웬일일까.

요사이 지식인들은 입을 열었다 하면글을 썼다하면 한결같이 대화합 타협 관용 용사로 시작해서 아량 이해 불보복 망각의 미덕을 역설하는 설교로 끝난다과거사는 과거 속에 묻고 잊어버리는 것이 민주주의의 미덕이라는 것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말들이 너무나 쉽게 나오고 있다심지어 어제까지 철두철미 반민주적 언행으로 이름났던 어떤 대학 총장이 박종철군의 위령탑을 그 대학 캠퍼스 안에,그것도 4.19의거학생 탑 옆에 세울 생각이라는 말까지 하고 나섰으니 이제 있는 말은 다 나온 성 싶다.

 

대타협 화해-- 로 시작해서 관용 아량--에 이르는 미덕에 대해서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그러나 불보복 망각에 이르러서는 뭔지 석연치 않은 뒷맛이 남는다.오해의 여지가 있을까 봐서 서둘러 덧붙이거니와보복을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그러나 [과거를 잊어버리자]는 말은 지난 7년간 독재의 직접 당사자거나 그 협력자 격이었던 일부 지식인들의 입에서는 절대로 나와서는 안될 말이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자]는 덕행은 지난 시기에 뼈에 사무친 박해를 받아온 피해자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올 때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민주주의와 인간적 권리를 위해서 싸우다가 고문으로 병신이 된 이가 얼마나 많은지를 그들은 모를 것이다. 1.3평의 관과 같은 캄캄한 독방 속에서 몇 백날을 보내야 했던 정치범들과 양심범들의 고통을 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용공 좌경 이라는 추상적이고도 황당한 죄목으로 꽃 같은 인생의 파멸을 강요당한 수 많은 젊은이들의 신음소리는 그런 지식인들의 귀에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체제를 위해서 지난날[적극적]으로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해온 지식인만의 문제가 아니다분명히 불의임을 알면서도 방관자들의 자세를 취함으로써 체제의 수혜자로 살아온 지식인도 뭣인가 생각하는 바 있어야 할 것이다바람의 방향이 바뀌려는 조짐이 보이자 그런 부류 지식인들의 입에서 [대화함 타협 관용 아량 용사 이해 불보복 망각]의 미덕이 소리 높이 외쳐지고 있다.

 

민주화는 시작조차 되지 않았는데 그들은 마치 민주화가 이루어지기나 한듯이 정세를 호도하고 있음을 본다.

 

지식인의 기회주의!

 

풍향계보다도 더 재빠른 변신!

 

우리는 해방직후 신기의 친일파,반민족행위자들의 변신을 보았다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몰락 후 어용지식인들의 변신도 보았다.

 

지금은 축하할 때가 아니라 괴로와해야 할 때다지금은 준엄한 공리가 강조 돼야 할 때이지 얼버무릴 때가 아니다광주민주와운동(‘광주사태로 되어있어 수정)을 비롯해서 지난 7년간에 저질러진 모든 큼직한 사건들이 밝혀져야 할 때다그리고 그 책임이 추궁돼야 할 때다.

 

노신이 1929년에 쓴 글에[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라는 글이 있다그는 이 글의 제목에 관해서 본래[물에 빠진 개는 때려야 한다]라고 하려다가 [너무 모가 나서 고쳤다]고 말하고 있다당시 중국 군벌들의 학정과 포악을 [광용과 타협으로 용서하고 과거는 잊어버리자]라는 임어당의 글 [페어플레이를 하자]를 비판한 글이다.

 

여기에 노신의 그 글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기는 [아직 시기상조]인듯 하다.

그 글의 정신만을 노신의 말을 그대로 빌어 옮기자면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요약하면,[물에 빠진개]는 때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는 달리 오히려 실컷 때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건져준 사람에게 덤벼들어 물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신의 글은 원체 익살로 이름난 바 있어 말대로 들을 것은 아니다그렇기는 하지만 그의 말에는 오늘의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무조건 관용과 망각만을 미덕으로 섬기는 듯한 어설픈[민주주의론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오늘 우리는 사태의 민중의 힘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필리핀]과는 다르다구정권의 죄악과 과오가 민중의 힘과 뜻을 바탕으로 한 신정권에 의해서 단죄된[아르헨티나]와도 다르다 그러기에 현실정치의 문제로 타협과 화합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그것은 불행한 일이다.

 

설사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 나라의 지식인들은 오랜 잠에서 깨어난 민중을 무조건적 광용과 타협이라는 최면술로 다시 잠재우려해서는 안될 것이다학생과 민중이 독재의 나무를 흔들어 피의 대가로서 손에 넣은 고귀한 열매를 어느 누구도 가로챌 수는 없다국민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짐을 지는 것이 언론기관과 언론인들이다지난날 멀리는 유신체제와 지난 7년 동안에 걸쳐서 언론기관과 언론인들이 놓였던 고달픈 처지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그렇다고는 하더라도 민주주의의 목탁을 자처한 그들이 소임을 다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각 언론기관에서 민주주의적 자유언론을 위해서 싸우다가 쫓겨난 수많은 언론인들을 복권해 주는 일에서부터 언론기관이 그들의 민주적 번신을 전국민 앞에 입증해주면 좋겠다.

 

지금은 관용과 타협,화합과 망각에 못지 않게 옳고 그름을 가리는 준엄한 민주주의 정의가 확립돼야 할 때다

페어플레이는 페어플레이를 이해하는 상대에게 적용될 때 공정한 게임을 기대할 수 있다.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http://newslibrary.naver.com/search/searchByDate.nhn#%7B%22mode%22%3A3%2C%22trans%22%3A%221%22%2C%22pageSize%22%3A20%2C%22date%22%3A%221987-7-6%22%2C%22page%22%3A1%2C%22officeId%22%3A%2200020%22%2C%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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