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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뫼비우스(Möbius) - 1
게시물ID : panic_805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카스_네팔
추천 : 2
조회수 : 102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6/08 22:5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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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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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고 : 내용 전개상 충격적인 사망사건 관련 묘사 부분이 있습니다.

이점 감안하시고 취사선택 하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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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뫼비우스(Möbius) - 1

 

                                                                                  아카스_네팔

 

 

"이 문은 닫혀야만 지나갈 수 있다...그런데."

 

아버지는 휑하니 뚫린 석문 앞에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문을 닫을 수 있을까?”

아무도 아버지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닫혀야만 통과할 수 있는 문.

어머니와 나, 그리고 두 명의 남동생 모두 핏기 없는 얼굴로 허공을 응시한 채, 뚫려 있는 문 앞에서 한 발자국도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참으로 거대한 석굴(石窟)이었다.

한 조각 빛도 감히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사방은 칠흑같이 캄캄했지만, 우리는 그저 아버지가 들고 있는 횃불 하나를 통해 서로의 불안한 모습을 똑똑히 확인할 따름이었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석문은 대극장의 휘장처럼 석굴 천정에 흔적만 남긴 채 착 달라붙어 있었다. 저 문이 내려와 우리 앞을 완벽하게 가로막아야만 이곳을 통과할 수 있다고 아버지는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닫혀야만 하는데...저 문을...저 문을 닫을 방법이 없어...’

 

아버지는 계속 혼잣말처럼 우리들의 가슴속에 절망의 싹을 뿌리고 계셨다.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가 들고 계신 저 얼마 남지 않은 횃불이 다 타는 날엔 영락없이 이곳에서 죽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습한 기운이 역겹게 목구멍까지 치밀어 왔다.

"아버지! 뭐라도 해보세요! 어떤 암호 같은 것이라도 없어요? 아니면 어떤 글씨라도!”

그 순간, 나는 동굴 속을 탐험하는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던 것 같다. 나의 발은 나도 모르게 문턱을 넘고 있었다.

거대한 석문이 천정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그 문턱을 나는 마치 이렇게 건너가고 싶어 미치겠다'는 듯이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었다.

 

안 돼! 위험해! 멈추란 말이다!”

아버지가 혼비백산하며 나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나 나의 두발은 이미 문턱을 넘은 뒤였고, 그런 나를 잡기 위해 아버지 자신도 뒤따라 문턱을 넘은 뒤였다.

아버지! 아버지!”

어린 두 동생마저 서슴없이 문턱을 넘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결국, 문턱 저쪽에 남은 이는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서 계신 어머니뿐이었다.

...여보. 어떻게 건너 갈 생각을..? 석문이 떨어지면 어떡하려고..”

여보...”

어머니!”

아버지와 우리들은 어머니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지만, 아무 것도 해줄 말이 없었다. 우리 자신도 의도하지 않은 행동이었기에, 우리 중 아무도 아직 문턱을 넘지 않은 어머니에게, ‘아무렇지도 않다. 그냥 용기를 내서 건너오시라고 말할 수 없었다.

행여, 어마어마한 저 석문이 떨어지는 날엔!

그렇다.

우리가 문턱을 넘은 것은 기적적인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여보. ..어찌 할 말이 없소....”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아버지가 쥐어 짜내듯이 말을 내뱉고 계셨다.

동생들의 훌쩍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져 갔다.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

그래서 아무에게도 믿음을 줄 수 없는 상황.

한 뼘도 남지 않은 횃불이 아버지의 손에서 서서히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어머니! 건너세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용기를 내서 건너세요! 망설이지 말고!”

우울하고, 지독히도 습하고, 역겨운 동굴의 정적을 깨뜨린 것은 바로 나였다!

한 번에 건너세요! 두려워하지 말고 한 번에 건너보세요!”

장담할 수 없는 말을, 한 인간을 참혹한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는 말을 내가 왜 터뜨렸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눈물이 흘러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날 바라보는 어머니를 도저히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어머니의 눈은 마치, 독수리의 발톱아래 꼼짝없이 갇힌 토끼가 그것과 닮아 있었다.

그래도 될까? 이 문이 떨어지면 어떡하니? 얘들아....무섭다. 무서워..”

아니에요! 어머니! 힘을 내세요! 빨리! 빨리...”

어머니의 눈에선 쉴 새 없이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나는 거의 짐승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횃불이 꺼지고 나면 아무도 불을 밝혀 줄 사람이 없어요! 죽음보다 더 지독한 고통이 시작된다구요!”

사실이었다.

이제 손가락만 한 빛이 가물거리며 아버지 손끝에서 타고 있었고, 그 불꽃마저도 아버지의 눈물에 칙..칙 소리를 내며 꺼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알았다. 방법이 없구나. ..가야지... 너희들이 오라는데 내가 못 갈까보냐....손 좀 내밀어라. 손을 좀...”

어머니는 마치 송곳처럼 파고드는 공포를 떨쳐 버리려는 듯 계속 중얼거리셨고, 너무나 떨어 하얗게 질려버린 얼굴로 석문 문턱에 드디어 한발을 내딛고 계셨다.

 

그때였다!

과과과과광...!

어머니!”

여보!”

손을 잡아요! 빨리!”

, 하지만 어머니는 이미 독수리 앞에서 굳어버린 토끼처럼 나를 허망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 눈빛... 그 눈빛이란!

얘들아!...여보! 아아악!”

콰아아앙!

 

그것으로 끝이었다.

굳게 닫힌 석문사이로 선혈이 분수처럼 허공에 솟구쳤다가 바닥의 바위틈을 따라 도랑을 이루며 흘러 내렸고, 나의 손엔...흩뿌리는 어머니의 선혈을 온 몸으로 받아 낸 나의 손엔...죽어도 놓지 않겠다는 듯 꽉 움켜 쥔 어머니의 온전한 마지막 육신 한 조각이 매달려 있었다!

어머니이!!”

여보!!!”

엄마! 엄마아아아아아!!!”

음습한 동굴에 처절한 울부짖음이 허공을 갈랐지만, 굳게 닫힌 석문은 다 그런 거라는 듯이, 모든 게 다 그런 거란 듯이 아무런 말도 없었다.

 

<계속>

출처 * 출처 : 창작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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